구매파 vs 대여파
10년 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며,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매월 10~20만 원어치의 책을 구매했다. 월급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엔 약 5~10권가량의 책이 배달되었다. 구매한 책을 다 읽어, 추가로 구매했던 적도 있었고, 다 읽지 못해 쌓아 놓기만 한 적도 있었다.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의무적으로 매월 책을 구매했기 때문에 독서 내공이 낮았던 시기여서 그런지 책은 쌓여만 갔다. 쌓여있는 책을 보면 죄책감이 들었고, 그럴 땐 밀린 업무를 쳐내듯 주말에 몰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하고 싶어 읽기 시작했던 게, 타의에 의해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왜 이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땐 인생 책이 찾아와 독서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줬다.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하며, 어느덧 독서는 내 습관이 되었다.
책 사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 거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했던가, 책에 빠지니 구매하는 책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족 행사 등 목돈이 필요한 달에는 책 구매가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책 사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 거야...'라고 자위를 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책 보관이었다. 가성비가 훌륭해 구매했던 이케아 나무 책장은 1열의 책을 보관하는 데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2열로 빼곡하게 책으로 꼽아두니, 점점 휘어지기 시작했다. 선반이 휘어져 변형되긴 했지만,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다.
책 구매 금액이 부담스러워지고, 보관 장소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독서에 중독된 상태였기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 책을 포기할 순 없었다. 책 구매 부담을 덜으면서, 보관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 해결책은 바로 도서관이었다. 학창 시절 이후 도서관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도서관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idh1008/25
매일 수백, 수천 권의 새 책들이 쏟아진다. 서점은 그야말로 치열한 마케팅의 각축장이다. 각종 마케팅 기술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타깃 광고의 총알을 피하며, 양질의 책을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화려한 마케팅 기술을 구사할 수 없는 도서관에서는 모든 책이 공평하다. 모두 자신만의 고유번호를 부여받고 분야별로 나뉜 구획에 번호 순서대로 진열된다. 마케팅이 진입할 구석이라곤 없다. 관심 있는 분야에 가서 다양한 책을 비교하며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서의 기법 중, '관련 분야의 책 몰아 보기'가 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5권~20권 정도를 몰아서 연속적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이 기법의 장점은 그 분야의 지식이 없더라도, 5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을 갖추게 되고, 10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점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말 또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관련 분야의 책을 2~3권 만 읽다 보면 정말 너무 비슷해 보이고, 나도 이제 전문가가 된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이제 어느 정도 아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쯤, 책은 지루해진다. 그래서 멈추게 된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더 높은 수준으로 진입할 수 있다.
10년 전 화장품 산업으로 이직했을 때, 이전 직장에서는 자동차 부품의 수출입 관련 업무만 해봤기 때문에 '화장품 영업, B2B 영업, 개척 영업'은 문외한이었다. 그저 영어 몇 마디 할 줄 아는 것과 수출입 지식만 있었다. B2B 영업의 특성상 생산되어 있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제품 만드는 과정 전체'를 판매해야 했기에 더욱 어려웠다. B2B 영업에 대해 정확히 이해를 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비롯한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기에,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도서관을 갔다.
도서관에서 '영업, 세일즈, B2B, 마케팅 등' 관련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책들은 다양한 분야의 판매왕들이 쓴 책이었다. 보험, 자동차 등의 분야가 많았다. '보험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도 아닌 데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능하면 들어보는 것이 좋다. 그들의 노하우를 캐치해 내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했던 것 같다.
20권 정도의 책들을 읽다 보니, 영업과 마케팅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고, 3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나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견한 패턴들은 노트에 모두 적었다. 패턴을 분석하여 행동 단위로 세분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을 사서 읽는 것과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은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수는 없는 문제이며, 개인의 취향과 당시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나는 밑줄을 치고, 여백에 메모를 하며 읽는 편이다. 구매한 책은 마음껏 메모할 수 있는데, 대여한 책에는 밑줄을 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밑줄을 치고 싶고, 메모를 하고 싶어 대여한 책을 읽을 땐 항상 옆에 노트와 펜을 준비한다. 하지만 항상 노트와 펜을 준비해놓으며 독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고민 끝에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https://brunch.co.kr/@idh1008/28
책을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땐, 소장하고 싶은 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소장하고 있으니...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어보니, 소장하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책을 내 곁에 두고 특정 상황이 다시 닥쳤을 때, 지혜 주머니가 필요할 때 등 내가 필요할 때 꺼내, 읽어보고 다시 음미하고 싶은 책, 그 책이 바로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먼저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본 뒤, 책 내용이 좋아 곁에 두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때, 책을 구매한다.
그렇다고 서점을 아예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을 한 번이라도 쓴 적이 있는 사람은 책 한 권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안다. 자신을 거의 갈아 넣어야 책 한 권이 탄생한다. 그런 작가의 마음을 알기에 책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더욱이 마케팅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있는 책들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것이다. 지금 꼭 당장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면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넣어둔다. 그런 다음 그 책과 인연이 닿을 때 읽는다. 인연이라면 언젠간 만나겠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결론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처한 상황과 개인의 성향에 맞게 취사선택하자! 다만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우리의 삶을 보다 주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독서를 자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