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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28. 2021

인생은 가후처럼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 중에서 '딱 한 사람'만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가후를 꼽고 싶다. 물론 내 마음속의 1명은 수시로 바뀐다. 처음엔 유비였고 그다음엔 조조였다. 이어 관우, 조운, 주유, 손권 등등도 있었다. 그런데 하고많은 영웅 중에 왜 하필이면 삼국지에 큰 비중도 없는 '가후'일까?

 가후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무렵은 동탁이 죽고 서량에 발이 묶여 있던 시기부터이다. 이때 가후는 동탁을 모시던 사람에서 이각과 곽사를 모시는 책사로 전향한다. 이때 왕윤으로부터 투항이 거부당하자 서량에서 군사를 일으켜 낙양으로 전진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후에도 가후는 천하를 떠돌며 많은 주군을 모신다. 그중 가후라는 사람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지를 잘 대변해 주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완성'사건이다. 조조는 완성을 차지하기 위해 친히 군을 이끌고 장수에 입성한다. 이때 가후는 완성 태수인 장수를 모시고 있었다. 조조와 싸움을 해봤자 승산이 없기에 가후는 장수에게 투항을 권한다.  장사 태수는 가후의 의견을 전격 수렴하여 조조에게 투항한다. 이윽고 성문을 열고 조조를 맞아 드린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조조에겐 희한한 취미가 하나 있는데 '유부녀 킬러'였다. 2010년 제작된 중국 드라마 신삼국에서도 순욱은 조조의 이런 조조의 악취미를 심히 걱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장수의 형인 장제의 부인을 탐하였다. 물론 장제 사후이니, 큰 문제는 없지만 장수는 형수를 탐하는 조조에게 크게 뿔이 날대로 난 모양이다. 장수는 가후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책략을 내놓으라 한다. 가후의 책략을 통해 조조를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간다. 겨우 목숨만 붙어 달아난 조조는 사랑하는 큰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 근위 대장 전위를 잃는다. 심지어 전위는 주공을 지키기 위해 화살로 벌집이 된다.


 뭐 어찌 되었든 이후 조조는 결국 완성을 자기 손아귀에 넣는다. 이때 가후를 자신의 책사로 전격 기용하는 넓은 아량을 보여준다. 동탁에서부터 조조까지 주공을 몇 번씩 바꾸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끝까지 보호했던 가후.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가후의 모습을 보며 '인생은 가후처럼 살아야 한다'라며 칭송한다. 가후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충절을 지키지 못하고 박쥐처럼 여러 주공을 모시는 가후를 아버지만 세 명인 여포나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도 있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가후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박쥐'같이 '나'의 목숨을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모습뿐이 아니다. 난세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자기 객관화'의 모습에 감탄을 감출 수 없다. 조조의 아들을 죽이는 책략을 낸 가후이다. 그런데 어떻게 조조가 가후를 받아주겠는가? 심지어는 이때 잃은 전위에 대한 슬픔에 대성통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가후를 통해 가슴 아픈 일을 겪은 조조인데 어떻게 가후를 기용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조조의 또 다른 별명은 '인재 성애자'다. 인재라고 하면 가리지 않고 어떠한 사람이든 기용했다. 장사에서 큰아들과 전위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위를 잃은 일에 슬피 우는 모습이나 사마의를 데리고 오기 위해 '죽을래 내 밑에서 일할래?' 하여 끌고 온 모습, 유비의 갓난쟁이 아들 아두를 품에 안고 홀로 조조 진영을 격파하는 조자룡에게 '여포 이후의 최고의 명장이다'라며 절대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명하는 모습 등 말이다. 결국 조자룡은 홀로 적진을 뚫고 자신의 주공에게 아두를 구해 왔다 이야기한다. 일당만의 용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인재'라는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조가 인재를 아낀다는 명확한 판단력이 곧 그를 살렸다. 나는 그런 가후의 자기 객관화와 상황을 판단하는 판단력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가후처럼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러기에 더욱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가후'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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