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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29. 2021

생각?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18장 한니발과 칸나에 전투

역사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두 배로 사는 것이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속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이 말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온전히 다 헤아리지는 못 할 것 같다. 대신 조금 더 이후에 역사가인 E. H 카는 이런 말을 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내가 지금 이 로마사를 시작하게 된 원인인 로렌스 세계사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결국, 내가 지금 로마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21세기 대한민국의 30대 청년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 즉, 어느 시대에 로마사를 보느냐에 따라 로마사는 다르게 비추어진다는 의미다. 마키아벨리도 로마사 평전을 썼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마키아벨리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으로 로마사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생각보다 큰 일을 하는 역사 속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생을 두 배로 산다는 말이나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을까? 오늘은 카르타고가 낳은 희대의 명장 한니발의 최고의 전투 칸나에 전투 이야기로 현재와 대화해보고자 한다.


전쟁의 천재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를 휘젓고 다니니 로마인들은 당연히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단단한 라틴동맹을 하나하나 찢어 놓기 시작하자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두 파로 나뉘어 언쟁이 시작되었다. 로마인답게 피하지 말고 정면 승부를 보자는 파와 정면승부로는 저 불세출의 천재를 이길 방도가 전혀 없다며, 지구전으로 한니발의 발을 묶어 두어야 한다는 파였다.


원로원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다 결국 각 파에서 한 명씩 착출 하여 집정관으로 세운 뒤 한니발과의 전투를 치르러 출발했다. 하지만 정면승 부파 쪽에 있던 집정관이 군을 담당하는 날에 일이 터졌다. 집정관 두 명이 함께 있을 때는 서로 하루씩 번갈아가며 군을 통솔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정면승부파 집정관은 한니발과의 전면전을 하게 되었다. 이는 한니발도 원하던 바였다. 여태껏 전투라기보다는 전술을 잘 활용하여 로마군을 물리쳤고 또 로마군도 제대로 된 대규모 전투를 한니발과 승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라틴동맹국들이 로마를 등지게 만들기 위해선 제대로 된 큰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게 양군은 맞붙었다. 당시만 해도 군사 대형은 좌 중 우로 쭉 넓게 서는 진형이었다. 그중 가운데는 보병이 양측 날개는 기병이 있는 게 통 상례였다. 그렇게 두 군이 같은 진형으로 맞붙었다.


여기서도 한니발은 대단했다. 그런 여태까지 있던 관례와 전통을 깨부수는 진형을 짜냈다. 양측 기병이 상대 기병을 후진할 정도로 밀어붙이고 또 중앙에 있는 보병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양상을 보였다. 그렇게 되면 보병의 좌우가 비게 된다. 이때, 후진에 있던 보병들이 적군 보병의 옆구리를 공략했다. 로마의 기병대를 소강상태로 만든 한니발의 기병대가 이때 뒤로 돌아 보병의 뒤쪽을 공격했다. 로마군은 그렇게 고립이 되었다. 지난 트라시메노 전투와 칸나에 전투뿐 아니라 한니발의 장기는 가둬두고 패기이다. 아마 그래서 라틴동맹을 모두 무너뜨리고 마지막에 로마를 치려고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니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한니발 하면 떠오르는 최고의 전투 칸나에 전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윽고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심지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손이 통치하는 마케도니아도 한니발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John Trumbull -   The Death of Paulus Aemilius at the Battle of Cannae

정면승부파와 지구 전파. 왠지 단어는 생소하지만 우리도 뭔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생김새다. 온건파와 급진파. 동인과 서인, 남인, 북인 등등. 조선의 역사를 일컬어 당쟁사라고 할 정도이다. 사실 나도 이 당쟁에 대해서는 워낙 길고 복잡하다 보니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 외우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그저 이런 당쟁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뉴스에서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옆에 할아버지께서 항상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나라는 당쟁이 문제야!' 라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나중에 내가 다 커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쟁'을 비하하는 건 식민사 관중 하나였다고 한다. 즉,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폄훼하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역사에서 당쟁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고도화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좋은 예이다. 고대 로마가 그러했으며, 그리스가 그러했고 또 지금까지도 많은 국가들은 '당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보면 이런 설전(舌戰)이 있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개인주의자이자 국가주의 자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라는 건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역사가 되어 훗날에 보아야만 역사 속 선택의 시시비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절대로 이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를 알 수 없다. 그저 자손들에게 그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 맡겨야 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더욱 편리하고 합리적인 이상을 요구할 권리가 누구에게 주어진다. 그게 바로 인권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런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가 손해를 보아야 할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그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이를 있는 그대로 두고 보겠는가? 그 사람도 자신만의 합리적인 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 둘은 충돌한다. 마치 로마의 정면승부파와 지구전파가 대립하듯이. 온건파와 급진파라 대립하듯이. 그리고 그 둘 중 옳은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후대에서만 알게 된다. 물론 둘 중 한쪽만이 정답이지는 않다. 영국의 장미 전쟁처럼 장미 전쟁에서 튜더가 승리한다거나. 삼국지를 통일한 사람이 유, 손, 조가 아니라 사마씨였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이었다. 이에 칸트는 "경험론도 합리론도 맞아. 다만 내가 재창조해낼 거야"라며 자신만의 철학인 인식론을 만들어 낸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를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고 미래의 후손에게 보이기 민망하다는 사람도 있다. 혹은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의 황금기라며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칸트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황금기, 암흑기. 양극단에서 서로의 말이 맞다며 으르렁거리는 저 사람들 속에서 둘 다 어느 정도는 맞아. 하지만 내 생각은 이런 것이야!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이지성 작가가 이야기하는 '씽크'란, 남을 쫓아다니며,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줄서기 하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씽크이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씽크는 무엇인가? 남의 말을 온전히 쫓는 씽크인가? 그 말들 속에서 나만의 씽크를 만들어 내는 씽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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