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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01. 2021

세상을 바꾼 위인들의 공통점

20장 스키피오의 등장

성공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어떻게 보면 빼어난 사람이 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성공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만인이 이 사람은 성공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빼어나고 특출 난 사람이다. 그럼 빼어난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걸까? 아니, 애초에 그들의 선생님들이 있지 않을까? 그들을 가르친 사람들보다 그들이 더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승보다 더 뛰어난 제자를 일컬어 우리는 청출어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은 한니발이 낳은 최고의 전술적 아들 스키피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파비우스의 지원을 끊는 전략으로 에스파냐로 향한 사람은 父 스키피오였다. 에스파냐는 한니발의 근원지인 신카르타고가 있다. 신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의 동생인 하스드루발과 마고가 있었다. 사실상 한니발의 주요 지원지가 바로 에스파냐였다. 약 2만 명의 병사로 에스파냐 8만의 대군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로마의 지원군이 오지 않자 점점 병력은 줄어들었고 결국, 에스파냐 전선은 무너져 버렸다. 여기서 부 스키피오와 집안사람들이 죽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20대 초반의 아들 스키피오. 우리가 잘 아는 스키피오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에스파냐로 보내달라고 원로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전쟁을 이끄는 장군이 되려면 원로원 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원로원 의원이 되려면 30세 이상만이 될 수 있다는 법도 있었다 한다. 그런데 약 10살이나 모자란 나이에 스키피오는 에스파냐행을 허락받는다. 대신 함께 가는 연륜 있는 장군과 함께 가는 조건이 달렸다. 그렇게 에스파냐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병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스키피오의 군 1만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싸우던 병사 8천 정도로 대략 2만 명의 병사가 고작이었다. 이런 부족한 상황에서 에스파냐의 발을 묶는 게 아닌 에스파냐를 정복해버리는 스키피오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여기에 쓰여야 한다. 스키피오와 한니발은 약 15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스키피오가 알프스를 건너와 로마군과 싸울 때, 스키피오는 10대 중후반이었다. 다시 말해, 스키피오의 전술로 로마군이 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자란 세대다. 심지어 초반에 패배했던 전투를 이끌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 스키피오였으니 말이다. 물론 아들 스키피오도 그 전투에 참여했다. 한니발을 보고 배운 세대가 한니발의 본거지를 점령한 셈이니. 따로 청출어람을 찾을 필요가 없다.


Raffaello Sanzio - The School of Athens

 역사 속에는 다양한 청출어람이 등장한다. 또 어떻게 보면 이렇게 청출어람한 사람이 국가를, 인류를, 세계를 바꾼 위인들이다. 또 그런 위인들의 스승이 위인일지라도 상관없다. 그 뛰어난 스승마저도 뛰어넘는 청출어람이 바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다. 익히 알고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었고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광장으로 나가 청년들과 대화했다. 즉, 행동하는 철학이 소크라테스였다면, 그의 제자 플라톤은 필기광이었다. 이번에 플라톤 전집이 영문 번역이 되어 나왔는데, 페이지 수가 무려 1800페이지라고 한다. 2000년 전을 기준으로 이런 방대한 양을 남겼다는 건, 플라톤의 지혜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또 플라톤의 철학은 관념론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별건 아니다. 볼 관(觀) 자에 생각할 념(念) 자이다. 즉, 머릿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론이 바로 관념론이다. 반대로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물론이다. 단어가 어려워 보이는데 별 거 없다. 오직 유(唯) 자에 물건 물(物) 자이다. 즉, 오직 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유물론이다. 현실주의자랑 비슷하다고 보면 쉽다. 그래서 플라톤은 완벽한 인간은 머릿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완벽한 인간상보다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스승에 뛰어난 제자다. 결국 이 유물론과 관념론은 철학을 대표하는 양갈래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승의 위대한 업적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을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찾았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미루어 안다.라는 뜻이다. 즉, 옛것을 배우고 익히는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익힌 옛것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새것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분야에서 특출 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온고지신을 떠올리며, 어떻게 나만의 새것을 만들어 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결국 지난 에피소드와 같은 결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갉고 닦아야 하는 그런 존재인 건 아닐까? 그게 꼭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 한니발이나 스피키오처럼 군인일 수도 더 나아가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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