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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05. 2021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

한 사람의 업적과 행동은 다르다. 꼭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행실이 올바를 수 없다는 의미다. 반대로 아무런 업적이 없는 사람의 행실이 대단할 수도 있다. 삼국지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나온다. 그중 업적과 행실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왕윤'이다. 왕윤은 누구인가? 삼국지는 몰라도 절세 미녀라고 소문난 '초선'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바로 초선의 양아버지가 왕윤이다. 왕윤은 한나라 조정 대신이다. 하지만 동탁이 국권을 찬탈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것을 휘두르니 이에 큰 반감을 가졌다.

 왕윤은 동탁 밑에서 고통받지만 자신 스스로는 동탁을 어찌할 바를 몰라 노심초사한다. 스스로 난을 일으킬 힘도 없으며, 그렇다고 대놓고 동탁에게 '그건 아니올시다.'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 도 없는 처지였다. 잠시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18명의 제후가 동맹을 맺고 한 왕실을 구하고자 낙양으로 쳐들어 왔다. 신이 난 왕윤은 '드디어 동탁의 마지막이 오는구나'했지만... 막강한 서량군과 여포의 철통같은 수비 그리고 18명 제후들의 내부 혼란으로 인해 동탁을 처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한 건 아니다. 제후들의 공격에 똥줄이 탄 동탁은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왕윤은 동탁을 처치하기 위해 엄청난 계략을 세웠다. 미인계. 자신의 딸 초선을 동탁과 여포에게 각자 보여준 후, 동탁에게 초선을 시집보내 버렸다. 여포에게는 '동승상이 떼를 쓰고 달라 하는데 어찌 안주 오리까?'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순순히 동승상에게 초선을 보냈다. 초선도 양부의 뜻에 따라 동탁에게는 '동승상만이 나의 지아비요'하고 여포에게는 '여장군만이 나의 사랑이오'라고 한다. 결국 여포와 동탁 사이에 균열이 일어났다. 동탁은 자신이 황제에 즉위하겠다고 한 날에 자신이 아끼던 장군 여포에게 목이 달아났다.

 이제 실세가 된 왕윤은 조정의 큰 어른으로 자리 잡는다. 당시 황제인 헌제의 나이가 어렸기에 자연스럽게 왕윤의 모든 결정이 곧 한 황실의 결정이었다. 이렇게 실세가 되자 왕윤의 태도가 싹 바뀐다. 강자 앞에선 약자로 허리를 숙이며 고통받던 왕윤이 이젠 강자가 되어 약자를 찍어 누르는 '강경책'을 쓴다. 동탁의 최측근인 이각과 곽사가 동탁이 죽을 때, 서량에 있었다. 두 사람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을 때, 가후가 항복을 권한다. 문제는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인 왕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는 점이다. 왕윤은 단호하게 '동탁의 사람들'이었으니, 절대로 받아주면 안 된다 하였다.

 주변에서 '동탁이 죽은 마당에 저들까지 등지면 서량군을 이끌고 이곳을 치러 올지도 모른다.'라고 간청하지만 왕윤은 귀를 닫아 버린다. 언제나 대사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과 직결된다. 결국 왕윤의 이러한 강경책으로 인해 서량군은 장안으로 쳐들어 왔다. 동탁군이 18명의 제후들과 맞서서 싸울 수 있던 힘은 한 왕실에 있지 않았다. 동탁역시 서량군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수비를 한건 한 왕실이 아니라 서량군 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한 왕실에 무슨 군사와 힘이 있어 서량군을 막겠는가? 결국 서량군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던 한 왕실은 이각과 곽사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왕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결한다.

 동탁을 죽인 왕윤의 업적은 위대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딸까지 팔아서 성공 시킨 계략인데, 자신과 한 왕실이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직시하지 못했다. 왕윤은 아마도 현실적인 힘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권력'이라는 허울 속에 갇혀 자신이 강자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엔 조금이라도 뭔가를 해내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더러 착각을 했다. 연기를 배운 지 3주 만에 대학을 합격했다든지. 두 번째 대학에 입학할 때, 수시 전형으로 합격했다든지 등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입학을 했던 나는 그냥 '그 학교의 학생'일뿐이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러한 허울뿐인 권력에 갇혀 콧대를 높이고 다니지 않았나 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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