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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12. 2021

복수? 아직 그런
뜻뜻 미지근한 것을 믿어?

2장 로물루스 신화

영화 타짜에서 아귀는 자신의 절친인 곽철용의 장례식에 간다. 곽철용의 부하가 복수를 할 거냐 묻자, '복수? 아직도 그런 뜻뜻 미지근한 것을 믿어? 뭐 자본주의적으로다가 잡아서 고기를 떼서 판다던가 하는 자본주의적 생각으로 접근해야지?'라고 이야기한다. 요즘 세상에 복수라고 한다면 피를 피로서 갚을 일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없는 편에 속한다. 대신 마음에 받은 상처를 대갚음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의 생채기를 내며 다툰다. 얼마 전 나도 나에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 덕에 아주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설루션으로 아는 누나가 알려주신 꿀팁이 바로 '용서'이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용서에 대한 로마 건국 신화를 한 편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아이네아스의 후손이 대대로 알바 롱가 왕국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은 두 아들에게 반반씩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참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형에게는 왕권을 주었고 동생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었다. 재산을 물려받은 동생은 열심히 힘을 키워 왕위를 찬탈했다. 형의 아들들은 모두 죽여버렸고 하나 남은 딸은 '신녀'로 만들어 버렸다. 신녀는 결혼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예 형의 자손의 씨를 말리고자 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 언제나 그렇듯 뜻대로 될까? 선왕의 딸 신녀는 전쟁의 신과 동침하여 쌍둥이를 낳았다. 당연히 쌍둥이를 죽이려 했지만 이를 미리 알아채고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에 강에 흘려보냈다. 어느덧 바구니가 흘러 흘러 다른 육지에 다다랐고 거기서 두 쌍둥이를 지켜보던 늑대 한 마리가 쌍둥이에게 젖을 물렸다. 지나가던 목동이 이를 보고는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아이들을 데려가 키웠다.


늑대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동상

목동은 형제들에게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 이름이 로물루스와 레무스였다. 두 형제가 장성한 어느 무렵, 목동은 사실 너희는 내 아이가 아니었다는 막장 드라마의 명대사들을 뿜어댔다. 두 형제는 유레카를 외치며, 왕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주변 목동들을 이끌고 왕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엄마인 신녀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여기서 참으로 독특한 건 대부분 이 정도까지 스토리가 오면 왕을 죽이고 자기네들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데,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왕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왕으로 두고 앞으로도 잘 운영하라고 이야기하고는 다른 언덕으로 가서 자기들끼리 나라를 만든다. 나라를 만들기 위해 떠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언덕에서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다툼이 생겼다. 여기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홀로 왕이 된다. 로물루스의 이름에서 이 나라의 이름이 '로마'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어디서 많이 본듯한 여러 이야기들이 혼재되어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버려진 자식이 다시 돌아와 자신의 권력을 되찾는 이야기는 마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 어린 조카들을 죽여서까지 왕이 되려는 모습은 조선의 세조와 단종을 떠올리게 한다. 뭐 어찌 되었든 역사라는 건 이렇게 묘하게 닮은 매력에 재미가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이 신화의 재밌는 점은 '복수'의 마지막 선택이 '용서'라는 점이다. 나의 조부와 어머님을 살해한 사람을 살려두었다는 점. 게다가 그 왕국에서 계속 살게 해주었다는 점은 정말 재밌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또 상처받은 마음에 나중엔 내가 똑같이 대갚음해 주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렇게 복수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서로 상처를 조금씩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또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나를 상처 준 사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건 역시 용서가 아닐까 싶다. 로물루스,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나라를 세우는데 큰 지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또한 그렇게 왕을 죽이고 거기에 스스로 왕이 되면 모두가 쌍둥이 형제를 따랐을까? 갑자기 우리 왕을 죽인 또 다른 원수가 될 뿐이지 않는가? 결국 용서라는 건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더욱 길게 보면 나 자신을 위한 길이라 생각이 든다. 용서를 해준 다음 그 사람을 계속 보든 말든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도 용서해 주고 떠나버렸으니... 꼭 용서하고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사람은 용서했는데, 다른 언덕에 나라를 짓자던 쌍둥이 형제만은 서로 용서하지 못했나 보다. 아니 이건 배려의 문제일라나?


배우 차재호가 직접 들려주는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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