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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15. 2021

로마왕이 수많은
여자를 납치했다고?!

3장 사비니의 여인들

남 탓하지 말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중용이 중요하다던 부처님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너무 내 탓만 해도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특히나 현대에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반대로 너무 남 탓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남 탓할 시간에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게 더 빛나는 나의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늘은 로마의 건국 신화의 주인공 로물루스의 이야기를 통해 남 탓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로물루스가 왕이 되고 보니 로마엔 큰 문제가 있었다. 여자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즉, 국가를 세웠지만 이 국가에 새로이 태어날 아이들이 없다는 소리였다. 로물루스는 바로 계책을 냈다. 주변 국가들에게 여인들과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은 모두 거절했다. 이에 속이 상한 로물루스는 다른 계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곧 로물루스는 실행으로 옮겼다. 큰 축제를 연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이윽고 새로운 국가에 큰 축제를 보기 위해 주변 여러 나라의 여인들이 로마로 몰렸다. 흥을 돋우고 모두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하자, 로물루스는 호루라기를 세차게 불었다. 그러자, 로마의 남자들이 일제히 여인들을 잡아가버렸다. 


졸지에 주변국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 누이를 잃어버린 신세가 되어 버렸다. 많은 주변국이 로마에 자신의 여인들을 되찾기 위해 로마로 진군했지만 번번이 패해버렸다. 하지만 관대한(?) 로물루스는 오히려, 로마에 투항하고 여인들이 로마인임을 인정하면 로마에서 평화롭게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런 온화책이 먹혔는지. 꽤 많은 여인들의 가족들이 로마에 투항하고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은 여인들을 빼앗긴 사비니인 만은 달랐다. 로마에 빼앗긴 가족들을 찾기 위해 칼을 갈고 철저히 준비해서 로마로 쳐들어갔다. 이제껏 쉽게 이기던 전투들과는 사뭇 다른 상대의 전투력에 로마도 꽤나 놀랐던 모양이다. 어쨌든 싸움이 더 거칠어 가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로마에 잡혀간 사비니 여인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싸움을 말렸다. 자신의 아버지와 남자형제에게는 '여기서 당신들이 로마인을 죽이면, 나는 과부가 되오'라고 이야기하고 로마인들에게는 '여기서 당신들이 내 가족을 죽인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남편을 증오해야 합니다.' 즉,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이 되었다며, 양측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결국 전쟁은 막을 내렸고 사비니 인과 로마인은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장 루이 다비드 - 사비니의 여인들


로마의 사비니 여인들 납치 사건을 듣고 있자면, 한국인으로서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가지 배경 상황이나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들이  우리 여인들을 붙잡아간 일화이다. 물론 우리는 청나라에 대항할 수 없는 군력이라 사비니인들처럼 그렇게 청나라에 쳐들어 가지 못했다.(물론 나중에 효종이 복수하고자 열심히 북벌을 준비했지만 북벌 직전에 서거하셨긴 했다.) 뭐 여기까지는 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청나라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이 있었다. 이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다. 돌아올 환, 고향 향. 즉,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이 여인들을 사람들은 곱게 보지 못했나 보다. 이들을 화냥년이라 조롱하며 없수이 대했다.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며, 여인들을 조롱했다. 심지어는 그들의 아들을 호로자식(胡奴子息)이라고 욕했다. 오랑캐 호, 종 노. 즉, 오랑캐 종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요즘도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가끔씩 쓰이는 걸 보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한 국가의 국방력이 없을 때, 얼마나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거기에 정절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은 없으면서, 정절을 왜 지키지 못했냐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째로는 국방력이 강해야 하며, 둘째로는 밖으로 향해야 할 손가락을 안으로 치켜드는 일이다. 하지만 후자는 생각보다 한국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된다. 아니, 꼭 나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 탓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하게는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 남 탓하지 말고 명확한 원인을 찾아서 그 부분을 스스로 개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만큼 나의 잘못을 시인한다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배우 차재호가 직접 읽어주는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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