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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25. 2021

주유의 그릇

 주유는 조인에게 욕을 얻어먹자 말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를 본 조인은 '동오의 대도독이라는 자가 욕 한 마디 했다고 쓰러지다니. 속이 좁구나!'라고 한다. 먼 훗날 제갈량이 위나라 북벌을 감행할 때의 이야기를 잠깐 집고 넘어가자. 이때 위나라의 도독은 사마의였다. 누구든 먼저 공격하면 패배하는 상황. 어떻게든 상대가 먼저 싸우러 나오게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제갈량은 꾀를 내어 사마의에게 여자 옷을 보낸다. 몰래 숨어있지 말고 대장부답게 나와서 싸우라는 의미를 담은 편지와 함께 말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준 선물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여인의 옷을 손수 입었다. 치욕에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무릇 대군을 이끄는 대장부라면 이처럼 넓은 그릇이 필요하다. 물론 주유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이유도 조인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주유는 연의에서 ' 속이 좁은 사람의 대명사'로 나온다. '하늘은 왜 나를 낳으시고 제갈량을 보내셨나이까?'라는 말로 드라마 신삼국에서 주유는 생을 마감한다. 뭐 이게 실제로도 그랬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말이다. 어쨌든 주유의 꿈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그런데 그 위에 누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마음에 걸렸을까?

 이는 비단 주유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세상에는 오히려 주유 같은 사람이 더욱 많다. 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원한다. 그런데 더 좋은 내 인생의 길을 가기 위해선 좋은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즉, 천상천하 유아독존해야지만 살아남는 사회이다. 문제는 그 자리가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현대의 '제갈량 들'의 몫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밑에는 수많은 주유들이 바글거린다. 서울대에 가지 못해 다른 대학에 진학해서는 '내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한다던가 말이다. 나도 포천에 대진대에 진학했다. 당시 서울에 몇몇 유명 대학의 턱 끝에서 떨어져서 경기도까지 가게 되었다. 학교에 가서도 속으로는 '너희들이랑 같이 있을 내가 아닌데...'며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학교에 온 선후배부터 동기까지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그릇은 그런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저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한 사람은 절대 그릇이 커질 수가 없다. 주유도 마찬가지다. 그의 뛰어난 능력 뒤에는 항상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어야 한다.'라는 옹졸한 마음이 있었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돈 많이 벌 거야'라고 말하지만 실상 보면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내가 돈을 버는 이유가 내 사리사욕을 위해서인지?' 잘 모르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사리사욕을 채우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쁘다고 생각하는 점은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면 그만인데, 대부분 '사리사욕 채우려는 건 아니고요...'라며 말을 흐린다. 본인이 선택해놓고도 본인이 뭘 선택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면 위선자다.

 군 시절에 읽었던 황석영 삼국지를 읽으며, 당시의 나는 주유를 엄청 좋아했다. 일종의 동질감이다. 세상에 수많은 제갈량에 치여 주유는 자존심을 내세우다 죽음을 맞게 된다. 내 지난 인생 30년을 돌아보면 항상 그랬다. 제갈량보다 내가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열심히 누군가에게 나를 어필했다. 그런데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누가 몇 시간 내내 나에게 한다고 생각해 보라. 누가 그걸 듣고 싶겠는가? 또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점이 그렇게 중요할까? 내가 정말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남들이 꼭 '넌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해주어야만 내가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을 누군가에게 '어필'해야 할까?

 그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간다면?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 시나브로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수많은 삼국지의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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