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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26. 2021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언제나 마지막 결정은 나의 생각과 결단으로 내려야 한다. 남들의 이야기는 모두 '조언'일 뿐이다. 지난 2020년 3월, 온라인에서 돈을 벌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전부터 봐오던 '자청'의 유튜브를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해보니 정말 막막했다. 블로그 키우는 방법에 대한 서적과 다양한 지식을 공부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이윽고 아름아름 알게 된 블로그 키워주는 분에게 의탁하여 돈을 주고 블로그 키우는 방법도 배워 보았다. 그렇게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적용해보며 나에게 억지로 맞추어 갔다. 몇 달 후, 글쓰기를 하는데 눈앞이 몽롱해지며 현기증이 났다. 아마 조금만 더 그렇게 글을 썼다면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렇게 해야만 성공합니다.'라는 글을 좇아서 썼기에 그렇게 힘들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데 억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맹신한 채 한동안 그렇게만 글을 썼다. 나중에는 내가 직접 마케팅을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케팅을 공부했다. 지금도 나는 마케팅 전문가도 아니고 마케팅을 잘 모른다. 하지만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마케팅도 어차피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이다.'라는 점이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사람'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일뿐이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사람, 즉 인생에 정답이 있는가?' 인생에 정답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하는 블로그에 정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뒤로 내 글은 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지. 돈을 벌기 위해 사랑하는 일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처럼 스스로 인생의 방향성과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쉬이 남들의 말에 흔들리게 된다.

 삼국지에서 동탁이 죽자. 미오 성에 남아 있던 몇 장수가 본고장인 '서량'으로 도망을 쳤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 가고자 하자. 모사 가후가 뛰어와 '넷이서 힘을 합치면 한 왕실을 뒤집을 수 있다.'라고 하여 생각이 바뀐 네 사람은 한 왕실에 짓 쳐들어 갔다. 가후의 말대로 손쉽게 조정을 쥐락펴락하게 되었다. 넷 중에서도 이각과 곽사는 문경지우라고 하여,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또한 두 사람은 동탁의 뒤를 이어 한 황실을 쥐락펴락했다. 호랑이가 사라지니 이리 두 마리가 그 자리를 꿰찼다. 마음 졸이는 헌제에게 양표는 두 사람을 서로 싸우게 하는 이간계를 쓰기로 한다. 추후 두 사람의 힘이 빠지면 조조에게 의탁하여 두 사람을 거꾸러뜨리겠다는 계략이었다.

 황제의 허락을 받고 문경지우인 두 사람을 떼어낼 계책을 강구했다. 바로 집에 돌아와 양표는 자신의 아내에게 귀띔한다. "곽사의 부인이 질투심이 강하니, 가서 두 사람을 이간질시켜달라." 양표의 아내는 바로 곽사의 와이프에게 가서 이간질을 한다. "부군이 이각의 부인이랑 놀아난대요~" 아주 쉽게 속아버린 곽사의 부인이다. 남편을 이각의 부인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다양한 계략을 펼쳐 보였다. 결국 이각과 곽사는 사이가 멀어졌다. 이윽고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되었다.

 그렇게 와이프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곽사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반대쪽인 이각도 마찬가지였다. 이각과 곽사가 대립하자, 이각은 무녀에 빠졌다. 무녀와의 동침 문제가 아니었다. 무녀의 점을 맹신했다. 모든 공치사도 무녀에게 돌아갔다. 가후는 이런 이각이 무녀에 빠진 점을 간파하여 헌제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공을 치하하지 말고 이각에게만 하라'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공을 받은 이각은 바로 모든 공치사를 목숨 걸고 싸운 장수들이 아닌 무녀에게 돌렸다. 자연스럽게 장수들은 이각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처럼 '남'의 말에 쉬이 흔들리게 된다면 자신의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한다. 심지어는 자신과 문경지우인 친구와도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 되어도 안된다. 간언과 충언을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분별력 없음이 이각과 곽사의 문경지우의 친분도 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블로그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각과 곽사처럼 주변의 말에 쉬이 흔들리는 사람이 된다. 결국 '나'를 위한 블로그가 아니라 '블로그'를 위한 '나'만이 남는 건 아닐까? 자연스레 블로그를 위해서 '나'는 안중에도 없고 블로그를 더 좋은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 주변의 이야기에 귀가 얇아진다. 하지만 내가 어떤 블로그를 만들지 명확하다면 어떨까? 나에게 필요한 블로그 정보를 통해 지금 보다 더 나은 블로그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물론 내가 원하는 방향성으로 말이다.

 이 이야기는 비단 블로그뿐 아니라 나의 인생에도 적용된다.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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