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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27. 2021

관용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만남은 우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라는 명언도 있다. 우리네 삶에서도 관계가 틀어질 때를 돌아보면 혼자만의 잘못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관계는 노력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노력해야 관계가 좋게 이어질까? 나는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 개념이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못해도 80%는 돌려받아야지?'라는 식이다. 그냥 줬으면 준 것뿐 그다음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내가 무언가를 받았을 때도 '감사한 마음'은 잊지 않아야 하지만, 그에 대해서 너무 강박적으로 '내가 받은 만큼 꼭 돌려줘야 해!'라고 할 필요도 없다. 또 내가 여유가 생겨 보답할 일이 있을 때, 보답하면 그만이다. 오늘은 이런 관계에 대한 고대 로마 이야기를 드려다 보고자 한다.


그렇게 스피키오가 사라졌지만 스피키오가 남긴 것마저도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겉으로는 지중해 패권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속으로는 타국에 대한 온건정책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로마는 타국의 자치권을 존중하는 국가였다. 이겼다고 해서 상대를 절멸시키지 않고 강화조약을 맺어 그들의 자치권을 주고 군사 보호를 약속하며, 그들로부터 돈이나 곡식을 받는 식이었다.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 정신이 이 로마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어쨌든, 로마는 타국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하지만 한쪽이 아무런 대가 없이 관용을 베푼다는 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나 가능하다. 혹은 그만큼 유대관계가 끈끈해야 한다. 즉, 로마와 타국의 관계가 꾸준히 좋은 쪽으로 이어지려면, 로마만 노력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로마와 카르타고, 로마와 마케도니아, 로마와 그리스, 로마와 시리아. 양국이 모두 뜻을 함께 해야 이루어진다. 결국, 로마의 온건주의 정책이 스피키오를 필두로 후대에 전해졌다고 해도 타국에서 안 좋은 시선으로 이를 해석하게 되면 두 국가의 관계는 깨지기 마련이다. 앞서 이야기한 반스피키오파는 이런 온건주의도 비판했다. 결국 내부에는 타국에 대한 온건정책과 강경책에 대한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지내오다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첫 사건은 마케도니아였다. 마케도니아는 2차 포에니 전쟁 직후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가 뼈 아픈 패배를 당했다. 로마에게 패배한 왕은 다시는 로마에 반기를 들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은 달랐다. 선대왕이 못 이룬 로마 함락을 다시 실행에 옮겼다 패배를 하고 말았다. 두 번째 사건은 그리스였다. 다시 재기한 후대 왕이 죽은 뒤, 그의 아들이라고 사칭하는 사람이 그리스에서 선전선동행위를 벌였다. 그렇게 그리스 전역에서 모은 병력으로 로마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로마는 이들을 손쉽게 진압한 뒤, 잠시 코린트에 방문했다. 문제는 여기서 코린트인들이 로마군을 좀 무시했다고 한다. 이에 참고 참던 로마인들의 온건주의적 마인드가 박살이 나버렸다. 결국 코린트를 무참히 짓밟았다. 아예 지도에서 코린트를 지워버린 셈이다. 이전에 마케도니아를 멸망시킬 때도 사실상 왕조만 무너뜨렸지. 자치권은 남겨두었던 로마였지만 이제는 마케도니아도 속주로 삼아버렸다. 세 번째가 바로 카르타고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카르타고에 문제가 생겼다. 2차 포에니 전쟁 강화조약 당시, 로마의 허락 없이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약조를 깨고 옆 국가 누미디아를 공격했다. 어찌 보면 카르타고가 억울할 수도 있는데, 누미디아는 원래 유목국가였는데, 2차 포에니 전쟁 중에 스피키오와 동맹으로 싸운 마시니사가 왕이 된 후부터 농경국가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곤 카르타고와 영토문제로 서로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로마는 카르타고로 군을 보냈다. 이때 카르타고가 결사항쟁을 했는데, 3년을 버텼다한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사실상 최고의 전쟁 기계가 다름없었던 상황이다. 여태 이야기한 다양한 전투들은 아무리 로마가 불리해도 정말 손쉽게 이겼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로마를 상대로 3년이나 농성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전과다. 하지만 결국 그런 카르타고도 더 이상 힘이 빠졌는지. 결국 로마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때 로마의 선택은 '더 이상의 관용이란 없다'였다. 도시를 불태우고 그들의 도시를 파괴하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렸다고 한다. 이 지역에 사람이 다시 살게 된 건 100년이나 지난 후에 일이었다 하니. 얼마나 잔인하게 카르타고를 함락시켰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찬란하게 지중해의 패권을 자랑하던 아름다운 도시 카르타고는 역사에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또한 로마의 타국에 대한 관용도 함께 사라졌다.


Eugène Delacroix - Liberty Leading the People

관계에서 틀어질 때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해준 게 얼만데?'이다. 즉, 로마 같은 마음인 셈이다. 내가 얼마나 관용을 베풀었는데, 네가 이럴 수 있냐?라는 의미다. 반대로 이럴 때도 있다.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줘놓고 왜 생색이야!' 그리스와 같은 마음이다. 어찌 보면 받아놓고 오리발이냐?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국가 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는 다소 복잡하다. 누군가 나에게 선물로 스노보드를 줬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스노 보드는커녕 썰매도 안타는 사람인데, 이런 선물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중고로 판매한다거나 혹 지인 중에 보드를 원하는 사람에게 양도하게 된다. 물론 이는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선물을 준 사람이 나에게 와서 무리한 부탁을 한다면? 보드의 행방은 중요하지 않지만 네가 내 선물을 받았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은 해야지? 하는 '계산적인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그리스식 답변이 나올 수 있다.


관용이라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피드백을 바라지 않는 선행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관용을 받은 입장에서는 관용에 대한 보답을 지금 당장 할 수 없더라도 그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동양 철학의 공동체주의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그래 내가 받은 게 있으니 돌려줘야 해. 그가 준 만큼 나도 그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해'라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버릴 때도 있다.


나는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관용은 그저 여유의 표시다. 그 여유의 표시에 대해서 이래저래 누군가를 컨트롤한다는 건 절대 관용이 아니라 '가스라이팅'의 시작이다. 결국 관용과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미끼를 던지는 행위를 구별하는 선구안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또 지금 내가 누군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 무언가를 위해 미끼를 던지는 건지. 그저 내가 여유로워서 돕는 건지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관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관용과 이용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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