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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28. 2021

지금 우리가 당장 감사해야 할 사람들.

도대체 카르타고는 어떤 나라였기에 로마에게 패했을까? 또 왜 그렇게 공화정 로마사에서 포에니 전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냐?라는 질문의 답이다. 아시아 쪽에는 페니키아 인들이 살아었는데, 그들 중 몇몇 사람들은 북아프리카로 뻗어져 나갔다. 그 사람들을 그리스인들은 카르케돈이라고 불렀다. 로마인들은 포에니라고 불렀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카르타고 전쟁이 아니라 포에니 전쟁인 이유는 승자인 로마인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1차 포에니 전쟁 이전에 카르타고는 엄청난 국가였다. 내부적으로는 농업국가로 자원이 풍부했으며, 외부적으로는 지중해를 통한 통상으로 부를 축적했다. 얼마나 돈이 많았으면, 1차 포에니 전쟁 강화 조약에서 로마가 제시한 금액을 한 번에 주고도 별 타격을 입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로마가 여기서 얼마나 아연실색했을까? 본인들에게는 큰돈이라 생각해서 부른 건데 말이다. 또한 문화, 예술적으로도 매우 발전된 국가였다고 한다. 당시에 층계 건물을 지었다고 하니. 그들의 건축기술도 얼마나 위대했는지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보면 '케르케돈인들의 제도 중에는 좋은 것이 많다. 그들의 제도가 좋다는 것은 민중이 끝까지 정체에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이 입증해준다. 카르케돈에서 이렇다 할 반란이 일어난 적이 없고 참주가 권력을 잡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라고 적혀 있다. 고대에는 신분제 사회였고 또 신분이 낮으면 낮아질수록 사회에 불만을 품기 쉽다. 그런 와중에도 반란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건, 꽤나 전 계층을 아우르는 정책을 펼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국가에도 문제가 있다. 국가를 지키는 국방에는 자국민이 아닌 용병을 썼다는 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용병이라는 단어는 왠지 생소하지만, 요즘도 스위스나 프랑스 용병이 있다. 하지만 용병은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포에니 전쟁을 돌아보면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진 후 한니발이 에스파냐에서 자체적으로 기른 군을 제외하면 카르타고 본국의 군은 거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돈이 많았고 또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붙이는 건 여러모로 정치인들에게는 골치 썩는 일 테니 말이다. 결국 돈으로 용병을 사는 행위는 자국민의 인기 몰이에는 큰 힘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애국심이 없는 용병은 질 것 같거나 죽을 거 같으면 대부분 전쟁 중에 도망갔다. 결국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던 카르타고의 멸망은 자국군을 두지 않은 자충수에서 시작되었다.


이중섭 - 소

자국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사실 멀리 카르타고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니, 잘 알아야 하는데 사실상 시험용 역사공부로 인해 우리 국력이 약했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앞서 '사비니의 여인들 납치 사건'에서도 다룬 병자호란도 우리 군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임진왜란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전국시대로 다이묘들끼리 전쟁을 펼치는 일본 내란 상황을 끝내고 통일된 상황이었다. 당연히 군사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던 시기이다. 반면 우리 조선은 건국이래 거진 150년간 평화시대 속에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일본군이 한양을 함락하는데 약 보름 정도 시간이 걸렸다 하니, 사실상 중간에 신립 장군과 싸운 것 이외에는 다이렉트로 행군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세가 아니라 근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세도정치로 나라의 정권을 거머쥔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 세력의 폐단은 군력까지 미쳤다. 서양인들이 우리 항구를 강제 개방하는데, 단순히 구식 무기였기 때문으로 치부해버리긴 어렵다.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었던 우리 내부의 문제도 인식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일본에게 을사조약이라는 치욕스러운 역사까지 이어지게 된다. 6.25 전쟁은 다를까? 북한 김일성은 남한을 무력 통일하기 위해 사병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도 우리 군이 있었지만, 전쟁에 대비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결국, 우리는 부산까지 피난 가서야 낙동강 전선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최선을 다해 북한군의 공세를 막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없어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건, 우리 국화가 대변해준다. 그 큰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는 한민족 정신이 가득 담긴 우리 국화 무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유나 평화는 절대 공짜로 얻을 수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 군사력 순위 10위권 내외에 있다. 매우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국가다. 우리가 휴전국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우리는 우리 조국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조금은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 결격사유가 없는 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군대를 다녀오는 입장이다 보니, 이래저래 군대에 대해서 사회에서도 많이 듣고 또 그런 군대식 문화가 사회에도 널리 퍼져있다. 그러다 보니 군대의 본분인 '국가를 수호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해버리곤 한다. '누구나 다 하는 국가 수호인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혹은 가기 싫은 군대 억지로 갔다 온 후유증으로 군대의 본질 자체도 욕하는 사람들도 간혹 만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르타고의 멸망과 우리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절대로 우리 군을 무시하거나 우리 군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군인들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가 편히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멋진 분들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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