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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29. 202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가 되는 3원칙

1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부터 3차 포에니 전쟁 끝까지 약 1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포에니 전쟁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지중해의 패권이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넘어갔다는 부분이다. 어찌보면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라는 별명이 시작한 시기가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지중해의 패권을 거머진 국가로 성장한 로마. 문제는 겉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로마는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평민이 전시에 군인이 되는데, 평민은 대부분 자신의 경작지를 운영하는 자영농이었다. 군에 나가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전쟁이 끝나면 농작물이 없어 고통받기 일수였던 시기에서 생겨난 직책이 바로 호민관이었던 점을 기억한다면, 로마가 자영농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로 끝나면서 카르타고의 라티푼디움이 로마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라티푼디움은 우리말로 대농장이라는 뜻이다. 자영농은 스스로 자신의 땅을 경작해서 살아간다면, 대농장은 소유주가 노예를 부리는 농장이었다. 즉, 스스로 일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라티푼디움이다. 당연히 돈 많은 사람에게 유리한 이런 좋은 제도가 로마에 안들어 올리 없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땅을 경작하고 노예를 싼값에 굴릴 수 있으니 당연히 부가 부를 낳는 시절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로마의 자영농민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2차 포에니 전쟁 직후의 로마가 전쟁 기계였다고 하면, 이 시기의 로마는 당나라 군대였다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평민들이 군에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평민들이 또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마는 무산자계급이라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군에 입대하지 못하게 하는 법도 있었으니. 군의 기강이 헤이해질대로 헤이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요 시기에 에스파냐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진압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시대상황 속에서 평민을 위한 귀족이 나타났으니 그들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였다. 물론 평민이라고 해서 다같은 평민은 아니었다. 한니발 전쟁이 워낙 큰 국가의 대사였기 때문에, 계급에 상관없이 한니발과 맞섰기 때문에, 평민 중에서도 집정관을 지낸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귀족과 평민의 선이 모호해졌던 시대상황이기도 했다. 귀족같은 평민도 있지만 여전히 평민같은 평민도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빈부격차가 극심해지자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호민관을 지내며 여러가지 법안을 가결 시켰다. 귀족 및 명문집안의 농지를 몰수하고 이를 평민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평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순 있지만 갑자기 돈 잘 벌던 자기 땅을 빼았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깝게 보일리가 없다. 결국 호민관 투표날에 사건이 터져올랐다. 이야기가 복잡하지만 결국 티베리우스는 여기서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이어 동생이 호민관이 되면서 형의 못 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이우스는 형 티베리우스보다는 경제의 힘을 믿었다. 단순히 평민들에게 땅만 지급하는게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뉴딜정책까지도 고려했다. 가교를 만든다던지, 도로를 만든다던지 하는 식이다. 거기다 신도시 건설 정책까지 들고나왔다. 가이우스의 정책은 정말이지 수천년을 앞선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시기상조였는지. 동생 가이우스도 결국엔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개혁이 완벽히 수포로 돌아간 것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부분들은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이슈가 안된 정책들은 모두 파기해버린 로마의 원로원이었다.

 

그라쿠스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며, 21세기에도 이런 형제들처럼 부익부 빈익빈을 막기 위해 부자로부터 돈을 뜯어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와 지금은 완벽하게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대 로마와 현재 대한민국은 아에 다른 나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 계급사회이지도 않다. 누구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나라이다. (대통령에 당선 되는지 여부는 별개이지만) 그렇다면 부익부 빈익빈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경제학자들에게 맡겨야지 역사 속 인물인 그라쿠스 형제로부터 배우기에는 사실상 거리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대 로마와 현재 대한민국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누구나 오를 수 있는가?하는 논제이다. 고대 로마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 할 수 없었다.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도 디테일 하게 들어가면 로마도 마냥 불가능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부자를 꿈꾸면 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누구나 쉽사리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레 '나는 저 사다리를 오를 수 없어'라며 포기하기도 한다. 아니 애초에 그런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오를 수 없는 신분으로 태어난 것과 집안 환경을 떠나 그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 사회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라쿠스 형제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가 되는 방법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할 일을 내가하지 않고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이다. 고대 로마에는 노예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아주 저렴한 인권비로 대농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즉, 내가 직접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남을 시켜서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현대에 이렇게 저렴한 인권비로 사람을 고용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도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누군가'라는 건 꼭 사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AI라던지, 컴퓨터 프로그램등 현대에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결국 부자가 되기 위해선 자본력(비단 돈뿐만이 아니라 전문가 타이틀도 자본력이 될 수 있다.), 상품화가 될 콘텐츠(고대 로마에서는 농작물), 콘텐츠 제작자(고대 로마에는 노예들)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지금 내가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 세가지를 한 번 돌아보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세가지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 부자가 되고 싶다면, 한 번 지금 내가 저 세가지 중에 어떤 부분에 가장 시간을 쏟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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