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주어라.라는 말이 있다. 링컨이 한 말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 때문에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권력은 그저 이용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이렇게 권력을 좋은 일에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많은 성군들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성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권력을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사용하지 않은 인물이 바로 술라다.
술라는 로마를 다시금 무력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로마는 집정관 2명이 이끄는 방식의 정치가 정착되어있지만 비상시국에는 독재관이라고 하여 6개월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비상시 제도도 있다. 술라는 이 독재관이 되는데, 문제는 6개월이 아니라 무기한 집권으로 이 자리에 앉게 된다. 그렇게 술라는 로마를 다시 뜯어고치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동맹시 전쟁 이전 상태로 모두 복원하는 건 아니었다. 동맹시들의 니즈에 따라 시민권은 로마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반에 걸쳐 늘려 놓은 술피키우스 법을 그대로 계승하기로 했다. 물론 100% 모두 계승한 건 아니었다. 로마의 적대적인 동맹시였던 남부 지역 몇 부족에게는 시민권을 나누지 않았다. 그렇게 술라는 민중파였던 마리우스와 킨나가 만들어 놓은 민중파 성격의 제도도 일부 차용하면서 다시 원로원파의 힘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정책을 펼쳤다. 술라는 어느정도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 시국이 왔다고 생각했는지. 독재관에서 사임하고 자신의 별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술라의 일대기를 쭉 돌아보면 '인내심'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물론 그가 했던 모든 행실이 옳다 그르다로 판가름하려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터이다. 언제나 정치란 제로섬 게임과 같다. 특정 집단이 이득을 보면 특정 집단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 물론 전 국민이 모두 좋은 결과를 얻는 좋은 정책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책이 훗날에 재평가되어 욕을 먹을 때도 있고 반대로 당시에는 초악수라며 손가락질하던 정책이 훗날에 재평가되어 잘한 일이라고 평가받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술라의 정치적 득실을 지금에서 따지는 건 그저 더욱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서 보기에 어떻다 일뿐 사실 개인이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부분은 크게 없게 느껴진다. 그러나 술라는 자신이 당시에 판단하기에 좋은 세상. 좋은 로마를 만든다라는 신념에 따라 움직였고 그 신념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인내했다.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성군이었으나 차차 권력의 단맛에 빠져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정치꾼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자군을 이용하여 내전을 통해 독재관이 된 술라는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웬만한 자제력이 없으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자제력이 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혹시 술라와는 다르게 권력에 욕심이 있어서는 아닐까? 권력은 그저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필요 수단에 불과한데 필수 수단으로 오해하여 권력의 맛을 보면 거기서 내려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결국 권력보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건인가?이다.
십수 년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놓친 디카프리오가 드디어 레버넌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다. 그는 그 엄청난 공석에서 드디어 받게 되어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해 레버넌트 촬영을 위해 머나먼 남미 끝까지 가서 촬영을 한 이야기를 했다. 즉, 상을 원했던 게 아니라. 상을 주는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가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다.
권력을 쥐어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혹은 그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 위에 올라서있다는 정신적 쾌감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야 권력의 단맛에 빠지지 않고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건 아닐까?
지금 여러분은 인생의 권력을 얻고 싶다면 왜 그 권력을 원하는지? 그 권력을 통해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지? 한 번 스스로 물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