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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17. 2021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5장 툴루스와 메티우스

경영이란 단어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마치 정주영 회장이나 스티브 잡스같은 위대한 경영인만의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경영을 만나 볼 수 있다. 또 가장 가까운곳에도 '경영'을 찾아볼 수 있다. 경영 앞에 '자기'라는 말을 넣어보자. '자기 경영'. 그렇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스스로 경영해야한다. 나를 잘 경영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을 경영하게 된다. 가족, 친구, 더 나아가서는 소규모의 모임도 그러하다. 우리말에서는 이런 사람을 '장'이라고 부른다. 학교에선 반장, 학생회장이라 부르고 회사에선 팀장, 부장등으로 불리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경영이라는 단어에 묶여 있다. 더 나아가 경영진은 혁신을 만들어내자!라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오늘은 로마 역사 속의 재밌는 경영 전략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누마도 죽고 3대왕으로 툴루스라는 사람이 왕이된다. 이 양반은 전쟁광이었다. 주변 국가와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그중 알바롱가와의 전투가 유명하다. 알바롱가는 로마와 마주보고 있는 국가이다. 이 경계지역에서 소떼도둑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서로 사절단을 보내 원상복구하라고 한다. 재밌는 건 소는 잃은 사람만 있다는 것일까? 어쨌든 두 국가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알바롱가는 이전 아이네아스의 아들이 만든 국가이니 사실상 조상이 같은 두 국가의 전쟁이었다. 우리로치면 고구려와 백제같은 개념인가 보다. 어찌되었든 알바롱가의 장군인 메티우스가 로마의 왕에게 제안을 한다. '이보시오. 툴루스왕, 우리 두 국가 주변엔 에투르리아가 있습니다. 우리 두 국가가 싸워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입혀봤자. 우리는 우리보다 강한 에투르리아에게 도움을 주는 꼴 밖에 되지 않소. 어차피 한쪽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되는데 그 손실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봅시다!' 이렇게해서 그 유명한 전투인 호라티우스 형제와 쿠리아티우스 형제의 3대3 전투가 시작되게 되었다. 국가의 운명을 건 전투였다. 또 재밌는건 두 형제 모두 세쌍둥이였다나? 뭐, 로마의 호라티우스 형제 셋 중 둘이 먼저 죽었다. 1:3의 완전 뒤집기 힘든 상황에 호라티우스는 재치를 발휘한다. 무작정 꽁무늬를 빼는 36계 줄행랑을 선보였다. 이윽고 180도 턴을 해서 보니 쿠리아티우스 형제가 병렬로 달려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렇다. 누구는 좀 덜 다치고 누구는 많이 다쳤으니 달려오는 속도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제 1:1 상황이 된 호라티우스는 한 명씩 제끼기 시작했다. 결국 역전승한 호라티우스는 로마의 영웅이되어 복귀한다.


로마와의 전투에서 진 메티우스는 어찌보면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로마를 이기기위해 다른 꾀를 짜낸다. 다른 주변국가들에게 '우리가 로마의 동맹국인척하고 로마를 칠테니 우리와 동맹을 맺고 로마를 칩시다.'라고 말이다. 정말 잔머리 하나는 대단하다 느껴진다. 어쨌든 그렇게 주변국들이 로마를 침략했다. 로마는 메티우스에게 적을 공격하라고 했다. 그런데 메티우스는 이도저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언덕 뒤에 숨어서 어디가 이기든 거기에 붙어서 축하해주고 말려고나 했었나 보다. 그와중에 로마는 또 주변국을 이기고 승전해버린다. 나중에 이 문제를 질책하여 툴루스는 메티우스를 거열형으로 죽인다. 그리고 알바롱가를 모두 불태워버리고 모든 주민은 로마로 이주시킨다.


St Hippolyte Triptych - Dieric Bouts

전쟁만 했다하면 승전보만 울리는 로마를 볼 때마다 요즘 자주 떠도는 말인 '될놈될'이 떠오른다. 될놈을 무엇을 해도 된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의 고사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메티우스의 전략에 더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다. 로마사를 쓴 리비우스는 마지막 전쟁 장면에서 '메티우스를 비겁자'라고 썼다. 하지만 어느쪽에도 편을 들지 않는 신중함에 나는 메티우스의 전략을 더 크게 본다. 물론 당시에 메티우스가 백성을 소중히 생각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로마와 크게 싸워도 우리가 질 가능성이있다면, 3대3으로 져봐야 3명 죽는 것을 선택하는게 더 현명한 방법이며, 또 이이제이 전술로 적과 적을 싸우게 하는 모습도 괭장한 전략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언덕으로 도망쳐서 누가누가 이기나 관전하는 모습은 정말로 자신의 군대를 아낀다고 본다. 결국 자신은 거열형으로 죽게되었지만 알바롱가인들은 집과 고향은 잃었지만 목숨은 부지 할 수 있었지 않는가? 만약 어느쪽이던 선택했다면? 자신은 살았지만 자신의 몇몇 군사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역사에도 비슷한 전략을 시행했던 왕이있다. 바로 광해군이다. 광해군이 집권하던 시기는 정말 재밌는 시기다. 아버지 선조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이미 조선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이번엔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였다. 지금 우리야 명나라다음 청나라 라고 알고 있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조선인들 그리고 중국인들도 누가 이길지 어찌 알았겠는가? 결국, 명나라에서 조선에게 도와달라. 또 청나라에서 조선에게 도와달라고 하자. 서로서로 싸우는 척만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즉, 어디가 이길지 모르는데 한쪽편만 들어서 어찌하겠는가? 라는 광해의 신중함이 낳은 전략이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다른 인물로 비슷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원나라에서 명나라 교체기에 이인임이 원나라편을 들며, 최영을 설득했다. 그 설득이 정말 소름끼치는 수준이다.

수시간동안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 긁어왔습니다. 출처 : https://www.instiz.net/pt/2620697

'역사를 보세요'하는 이인임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본 한국 사극중에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어찌되었든 고사야 고사고 나라야 나라지만 '나'라는 사람에게 이 고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또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이든 큰 규모이든 '경영' 자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더러운 오명'을 쓸 때도 있다. 마치 메티우스를 후대의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가 '비겁자'라고 욕했던 것처럼 말이다. 광해군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왕의 이름은 보통 '조'나 '종'으로 끝나는데 오로지 연산군과 광해군만 '군'으로 끝났다. 차마 왕이라고 부를 수 없어 '군'이라고 불렀다나. 어쨌든 조선 시대의 광해군도 그리 좋은 평은 아니었던 거 같다. 이인임의 대한 평가는 아직 내리기 성급하다고 본다. 일단 이 인물에 대한 드라마적인 평가 부분만 봐주셨으면 한다. 저울추라는 대사가 이 고사를 잘 설명해준다 생각하여 가져 왔다.


오늘은 말이 길어졌지만 '지금 우리가 옳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후대에는 '뭘 그런걸 가지고 명예니 신념이니 하며 운운해?'라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반대로 목숨까지 잃어가며 지키려했던 신념이 후대에는 '어떻게 저시대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될지도 모른다.


현대의 이르기 전까지의 모든 역사에서는 이런 획기적인 변혁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했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변화를 이끌기 위한 위대한 생각엔 언제나 열려있으며, 오히려 그런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리더를 더 선호한다.


혹 여러분이 어떠한 집단의 리더이던 아니면, 어떠한 집단에 속해있다면, 지금 이 시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나의 신념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보면 어떨까?


배우 차재호가 직접 들려주는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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