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상인 Nov 18. 2021

왕과 부자의 공통점

6장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역사를 보면 왕이 되기 위해 별수단을 다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만 해도 왕이 되기 위해 조카를 살해하기도 하고 형제끼리 전쟁을 일삼는 일도 있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왕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에서도 당연히 그런 일이 있었다. 도대체 왕이란 무엇이며, 권력이란 무엇이길래? 우리는 이토록 왕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걸까?


지난 글에서는 3대 왕 툴루스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뒤로는 또 그렇게 하드파워, 소프트파워를 이어가는 다양한 군주들이 나왔다. 그렇게 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티쿠스가 6대 왕인 세르비우스를 선정하면서부터 재미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르비우스는 프리티쿠스의 사위였다. 아들들을 모두 제치고 바로 사위를 왕으로 물려줄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어쨌든, 아들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그러면 자신의 두 딸과 결혼을 시켜야겠다는 다소 왕건적인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런데, 두 형제의 성격과 두 딸의 성격이 희한하게 서로 달랐다. 형제 중 타르퀴니우스는 야망가였고 다른 형제 아룬스는 정반대로 심약한 성격이었다 한다. 자매도 마찬가지로 야심가와 심약한 자매였다고 한다. 세르비우스는 여러 고민 끝에 서로 교차되게 결혼 시켰다고 한다. 야망가 남편에겐 심약한 부인을, 야망가 부인에게는 심약한 남편을 말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야망을 품은 두 남녀가 서로의 반려자에게 만족할리는 만무했다. 결국, 대놓고 자신의 반려자를 욕하고 심지어는 야망가 부인과 야망가 남편의 불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심약한 남편과 부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야망가 남녀가 재혼을 하게 되었다. 세르비우스왕은 이 모습을 보며,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한다.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야망가 남녀가 부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왕위를 가지고 싶었겠는가? 야망가 부인은 남편에게 '당신은 선대 왕의 아들이니, 당신이 왕이 되는 게 맞다. 우리 아버지는 왕위를 뺏은 자다'라고 하며, 남편을 종용했고 또 야망가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야망가 남편은 원로원 회의 중에 세르비우스 왕을 들쳐 엎어 문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그렇게 밖으로 굴러떨어진 왕을 대기 중이던 자객들이 세르비우스왕을 죽여버렸다. 심지어는 길거리에 있는 시체를 야망가 부인이 마차로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얼마나 야망 덩어리였으면 자신의 아버지를 마차로 확인 사살까지 할까... 그렇게 야망가 남편은 로마의 7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 되었다.


도대체 왕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아버지까지 죽이면서 남편을 왕으로 세우려 할까? 싶다. 아무리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하지만, 어떻게 부모님까지 죽이면서 왕이 되고 싶을까? 왕이라는 건 무엇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왕'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 번 돌아보자.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을 하나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중 한 부분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보고자 한다. 왕이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즉,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를 현대로 가져와 보자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부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대와는 달리 현대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부자'이든 '왕'이든 문제점이 있다. 왕은 단 한 사람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부자도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현대에는 '왕'이 되기 위해 저렇게 몹쓸 짓을 한다는 게 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반대로 '돈' 때문에 가족들과 등지는 일을 많이 볼 수 있다.


Leonardo da Vinci - Mona Lisa

하지만 언제나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까 언급한 대로 '왕'과 '부자'의 공통점은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왕'이자 '부자'가 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현대 사회는 '그 질문에 답하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


수많은 성공학 서적이 나오고 있다. 내가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모든 성공학 책에는 짧은 한 줄로 스쳐지나 가듯이 한 문장이 쓰여 있다. '결국 성공이란, 가족과 사랑이었다.'라는 문장이다. 어느 정도 작가의 성향에 따라 워딩이 바뀌긴 하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한 번도 퇴색된 적이 없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에서 '성공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 나의 가족에게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보면 어떨까?


배우 차재호가 직접 들려주는 독서노트
작가의 이전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