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인권 : 혐오발언 논쟁 (2018)

Human Rights Class debate, 1 Feb 2018

by 빙구

영국 고등법원 판례가 두 개 있다. 우선 각각의 판례를 읽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읽기 편하도록 번역한 텍스트이다.)



1. Munim Abdul 외 vs. 검사장 (2011 영국고등법원) EWHC 247


당 사건의 피고인들은 영국군의 퍼레이드 행사에 저항시위를 목적으로 접근하여 병사들에게 “지옥에서 썩어라”, “영아살해범”, “강간범”, “테러리스트”, “겁쟁이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맹비난한 혐의를 받아 재판정에 섰다. 1차 판결에서 유죄를 받은 피고들이 표현의 자유 이슈를 동원해 항소하였고, 고등법원에서는 이 항소를 기각하였다. 재판에서 근거로 사용된 법조문은 <인권에 관한 유럽 합의문 제 10조 표현의 자유>, <1986년 영국 공공질서법령 파트 5 언어를 사용한 폭력> 이었으며,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되었던 영국 군인들의 복귀 행진에 저항의식(반전 이데올로기)을 가지고 행사장에 진입하였다. 당시 행사장에 참석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그룹은 병사들 각각의 친척과 지인들이었다. 저항시위 주최측(대표단)은 사전에 경찰과 만나 시위를 예고한 바 있으나, “합법적 저항시위”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관해서는 논의한 바가 없었다. 시위 참여자 중 몇몇이, 병사들이 행진을 위해 진행하던 경로에서 과격한 표현을 외치며 병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자료출처 구글 이미지, http://markhumphrys.com/modern.leftists.html)


1심 판사는 이들 시위대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였다. 1심 당시에도 검사장은 <인권에 관한 유럽 합의문 제 10조 표현의 자유>의 내용을 받아들였으나, 이들이 외친 구호는 ‘이성적이고 합법적인 저항시위’의 선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행진하던 병사들은 명백하게 이러한 표현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입었으며, 이 저항시위가 심각한 무력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사장의 진술에 따르면, 이러한 요소들은 기소가 정당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인권에 관한 유럽 합의문 제 10조 표현의 자유>에는 예외조항이 있다. 10조 2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의 행사는 의무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므로, 특정한 형식, 조건, 제한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한 규정은 범죄 예방, 명예훼손 방지, 기밀로 주고받은 정보가 공개되는 상황을 포함한 타인의 권리침해 방지, 사법절차의 공평함과 권한 유지 및 안보 향상 등을 위한 목적인 경우 민주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된다.”


이러한 기소건에 대하여 판사는 이러한 문제적 표현들에 대해 합법적 저항시위의 경계를 정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공공질서에 대한 매우 명백한 위협” 이 실존했다고 밝혔다. 시위대의 언어 사용은 “잠재적으로 명예를 훼손시키며, 의심의 여지 없이 공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또한 기소가 정당한 대처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시위자들이 현장에서 즉시 체포 및 연행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사전에 경찰과 협의를 거쳤다는 사실은 기소 자체를 뒤집을 수 없었다.


Davis 재판관은 덧붙이기를, 유럽 합의문 제 10조와 제 11조(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있어 의무와 책임을 반드시 수반한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의 행동은 “근처에서 행진하던 병사들을 특정”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사용된 표현들은 “그 병사들에게 있어 사적으로 폭력적이며, 잠재적으로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고 판결을 마무리했다.




2. 지방법원: May LJ, Harrison J, 2004년 1월


피고인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자 목회자로서, 2001년 여름 공공장소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였다. 피켓의 내용은 ‘부도덕한 행위를 멈추라’, ‘동성애를 멈추라’, ‘레즈비언을 그만두라’ 였다. 그는 본머스 광장에서 그의 시위가 마찰을 빚은 결과로 연행되었다. 그는 <1986년 공공질서법 파트 5 언어를 사용한 폭력> 의 내용에 의해 기소되었고 기소내용에는 “위협적이거나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내용을 담은 기호나 문구를 제작 및 전시하여 모욕감, 위기감, 압박감을 유발” 했다는 죄목이 명시되었다. 치안 판사는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하여 많은 탄원서가 제출되었는데,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의 행동은 폭력적이지 않았고, 그는 <인권에 관한 유럽 합의> 제 9조와 제 10조에 입각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해당 법령은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각각 설명하고 있다)


(자료출처 구글 이미지, https://underthesaltireflag.com/2014/07/01/homophobia-towards-a-definition/)


이 사건은 추후에 논쟁이 되었는데, 쟁점은 피켓에 쓰인 문구가 <1986년 공공질서법 파트 5>에 정의된 폭력적 언어사용의 기준에 부합하느냐였다. 모욕적 표현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해당 문구는 피고인의 종교적/도덕적 신념에 입각한 입장표명이라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타인을 교정(Converting)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한 퍼포먼스이고 모욕 및 폭력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소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체포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충분히 지켜졌고 공권력의 부당한 위압이 없었다는 점은 피고도 인정하였다.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하여 판결하면서, 동성애와 레즈비어니즘을 부도덕함과 연결시킨 부분에서 모욕이 발생한다고 선고하였다. 나아가, 피고인의 변호 근거인 <인권에 관한 유럽 합의문> 제 9조 및 제 10조는 선고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었으며, <1986년 공공질서법 파트 5>에 규정된 폭력적 언어사용 처벌법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으나 후자에 무게를 두어 유죄를 선고함이 옳다고 판결하여 항소는 기각되었다.





<생각해 볼 문제>


1과 2의 판결은 많은 논쟁을 낳았고, 비교하며 살펴보기에 적절한 논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우선, 1의 표현에 비해 2의 표현이 덜 모욕적이라는 의견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의 사례와 2의 사례는 둘 다 언어를 사용한 폭력-혐오표현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그 판결의 의미와 양상은 크게 다르다. (1986년 공공질서법 파트 5는 ‘언어를 사용한 폭력’이라는 이름하에 규정된 것이지만 혐오표현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토론에서 필자가 제기한 포인트 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a) 어떠한 사건 및 추세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지고 진행된 움직임이라는 요소는 둘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의 밑바탕이 되는 아이디어는 항상 눈여겨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케이스 1의 아이디어는 반전(Anti-war)이며, 케이스 2의 아이디어는 동성애혐오(Homophobia)이다.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많은 시민들은 이 두 가지 아이디어에 대해 각각 다르게 반응한다. 과거사에 가정만큼 의미없는 것도 없지만, 아마 케이스 1에서 사용된 표현의 수위가 케이스 2의 수위와 같았다면, 케이스 1에서는 유죄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보편적인 시민사회의 상식으로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b) 케이스 2의 아이디어는 단순한 동성애혐오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케이스 2의 피고인은 ‘동성애’와 ‘레즈비어니즘’을 분리해서 구호로 사용했다. 즉 피고인의 생각에 여성의 동성애인 ‘레즈비어니즘’은 포괄적 ‘동성애’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성애혐오 뿐만이 아니라 여성혐오를 동시에 아우르는 구호이며, 개인적으로는 왜 재판부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다.


c) 한국에서도 이에 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고 이른바 ‘뜨거운 감자’인데, 과연 “혐오표현”의 대상은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지 하는 질문은 여기에서도 등장하였다. 어떠한 표현을 “혐오표현”이라고 부르기 위해 필요한 구성요건에 ‘취약자 집단(vulnerable groups)을 향한’이라는 방향성이 개입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디까지 개입되어야 하는가는 토론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케이스 1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시위대’에 비해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에 시위대에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인가? 소위 (상대적) 취약자 집단이란 구체적 사례 속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정해질 수 있는가? 혐오표현에 관해 규정한 많은 법령들 가운데에는 ‘취약자 집단’이라는 단서조항이 없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 법학자 및 인권 연구자들 역시 이에 관해 여러 갈래의 입장들을 내놓고 있다.


d) 케이스 1의 시위대는 공격의 대상을 잘못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병사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직업의 일종으로 군입대를 선택한 것이며,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규정할 만한 미사일 폭격이나 섬멸작전을 직접 고안해 행동한 바 없다. 시위대가 만약 국회의사당이나 수상 관저에 찾아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 소리쳤다면 어떤 조치가 취해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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