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본 게이커뮤니티의 성폭력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by 빙구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8/mar/07/gay-community-metoo-moment-conversation-consent-sexual-assault


2018년 3월 7일자 가디언에 실린 기사를 읽고 쓴다.


1. 게이집단 내에 성폭력, 나아가 성폭행 실태는 솔직히 이성애자 집단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것을 폭력이라고 느끼느냐, 또는 그로 인해서 얼마나 피해를 입느냐가 이성애 집단에서의 피해자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것뿐이다. 실제로 게이들은 술자리 섹드립도 매우 자주 치고, 묵시적인 최소한의 동의조차 받지 않은 사람에게 스킨십을 하거나 성적으로 자극적인 농담을 한다. 간혹 보면 이성애자들 이상이다. 누구는 더 하고 누구는 안하고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굉장히 보편적으로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술자리 몇 번이라도 나가본 사람 중에 이걸 부정할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러나 게이들은 이걸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수치심/모멸감/불쾌감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그래서 문제제기하는 사람도 적고, 다들 하는데 내가 불쾌했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아 따돌림당할까봐 문제를 느낀 사람들도 입을 닫는다. 폐쇄적인 커뮤니티인만큼 이러한 사회적 배제는 다른 곳에서보다 더 치명적으로 작용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방해한다.

2. 성폭행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디언지에서는 클럽의 다크룸이나 사우나 같은 곳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술번개 이야기도 좀 해보고 싶다. 솔직히 술번개 나가서 반쯤 억지로 꽐라를 만들어 모텔에 데려가 실컷 섹스를 하고, 아침에 먼저 일어나 나와버리거나 나중에 얼굴 마주쳐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성폭행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아프면 말하라고 해서 아프길래 말해도 중단하지 않는 것은 대표적인 클리셰이고, 더 말하자면 끝도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너무 흔하다. 내가 느끼기엔 안 일어나는 날이 없을 것 같다.

3. 이런 일들이 모두 형사처벌받아 마땅한, 더럽고 폭력적인 악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위의 행동들은 성폭력과 성희롱, 성폭행이 맞는데,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거리껴지는 부분이 있다. 1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쾌감을 느끼는 기준과 정도가 다르고, 피해의 정도와 양상도 다르기 때문이다.

4. 왜 다른가?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논의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우선, 게이들에게는 순결 관념이나 임신 걱정이 없다. 여성과의 차이점이다. 성적으로 활발한 여성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서 구설수에 올라 안 좋은 시선을 받게 되지만, 성적으로 활발한 게이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거의 없다. (‘걸레’라는 비속어 욕설에 대한 여성과 게이들의 반응은 천양지차이다.) 게이에게 있어서의 섹스와 여성(이성애자)에게 있어서의 섹스는 그 양상과 의미가 매우 다르다. 좋게 말하면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자유로운 게이 문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맥락에서는 폭력에 대한 인식을 둔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자유로운 섹스 생활의 일부라고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상처를 입었더라도, 나중에 할지도 모를 더 좋은 섹스로 회복할 수 있다고 자위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개방적이고 쿨한 게이들이니까. 또한, 게이들은 섹스에 두는 무게가 이성애자들에 비해 한참 가볍다. 익명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한 달쯤만 지나도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론화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성폭행 사건을 해결’ 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4-1. 더하여, 많은 게이들은 타인과의 스킨십 그 자체에 갈증을 느낀다. 스킨십에는 분명 좋은 스킨십과 나쁜 스킨십이 있고, 좋은 섹스 경험과 나쁜 섹스 경험 역시 있다. 하지만 스킨십이나 섹스라는 것 자체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의 좋고 나쁨을 선별하여 좋은 것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또한, 나쁜 섹스와 성폭행 사이에는 겹치는 것이 많다. 모든 나쁜 섹스가 곧 성폭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게이들은 성폭행을 단순히 나쁜 섹스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성 간 성폭행 뉴스를 보고 자랐기에, 내가 성폭행처럼 무섭고 빡센 것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4에서 말했듯 어차피 대처할 수 있는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다.) ‘강간 플레이 판타지’ 같은 것도 존재하는 만큼, 그냥 좀 거친 섹스를 하는 사람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 더 좋기도 하다. 농담 삼아 게이들 사이에서 곧잘 나오는 ‘성희롱 좀 당했으면 좋겠다. 그런 것도 이쁜 애들이나 당하잖아’ 같은 말들은 <좋고 나쁨을 따질 여유없이 섹스 자체에 목말라 있는> 게이들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4-2. 폭력 이후의 삶의 모습도 이성애자들과 게이들은 전혀 다르다. 직장이나 소속된 집단이 같아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이성애자들의 경우, 그 사람과 마주할 때마다 기억들이 떠올라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한다고 한다. 게이들은 보통 성폭행을 가한 사람과 다시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피하면 된다. 집단의 크기가 1/100에도 한참 못 미치는데도 이게 가능한 이유는 역시 익명성에 크게 의존한다. 또한 게이 사회 밖에서까지 연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독립적인 집단이라는 것도 이에 한몫한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의 경험이 사회인으로서의 나에게 실질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으니 ‘그냥 술이나 먹고 잊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5. 그러나 3에도 불구하고, 이런 폭력들이 언제까지나 존속해도 좋은 것은 분명 아니다. 소위 ‘성소수자 선진국’으로 불리는 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동성 간에도 성폭행이 성립하고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고 있으며, 설령 피해자가 그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해도 계속 피해를 당하는 것을 원할 리는 없다. 게이 집단에 널리 퍼져 있는 폭력적 문화는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런 행동은 하지 말자’고 계속 상기함으로써 개선될 여지가 있다. 미투 운동처럼은 아니더라도, 게이 사회 내부에서 성찰의 목소리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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