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까지 계속 신문을 구독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한 면을 차지하는 긴 글을 다 읽지 않고 요약본만 읽고 본문을 읽지 않고 넘어가는 나 자신을 봤다. 마치 내용을 다 아는 것처럼, 이해한 것처럼, 읽은 것처럼 말이다.
깜짝 놀랐다.
내가 요약에 익숙해있구나...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AI는 더 많은 것들을 요약해 준다.
AI는 책 재목도 요약해주고, PDF도 요약해 주고, 내가 지금 열어놓은 웹페이지 내용도 요약해 주고, 영상내용도 요약해 준다, 얼마 전 카카오톡에서는 긴 대화내용을 요약해 주는 서비스를 업데이트했다.
굳이 예전처럼 시간을 들여서 다 읽고, 다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아낀 시간들로 뭘 하는지는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누군가 내 인생을 요약한다면 출생, 학창 시절, 직장생활, 취업, 퇴사 등 몇 가지 굵직한 일들로 요약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 인생은 저런 굵직한 사건이 아닌, 일상을 아무 일 없이 살아내고 버텨 낸 시간들이 만들어준 것 아닐까? 지면이 모자라서 미처 싣지 못한 그 자잘한 순간들 말이다.
누군가 저렇게 굵직한 사안들로만 내 인생을 요약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큰 일도 아니고 아무 알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들, 하지만 내 마음을 울렸던,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감정이 요동친 시간들은 기록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제2의 사춘기에 가곡을 배웠다. 처음 향상발표회 때 부른 곡이나 순간들, 말수가 적은 남편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제이슨 므라즈를 알고 오디오를 사고 새벽까지 듣던 순간...
너무 많다.
이런 건 내 인생 문고판엔 들어갈 수 없겠지만 어떤 굵직한 순간 둘보다 내 인생을 값지게 만든 일들이다.
굵직한 사건들의 틈새를 메꿔준 저런 순간들과 사건들이 진짜 내 인생의 요약판에 들어가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내 인생을 요약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내 인생을 함부로 요약하도록 두면 안될 것 같다,
내 인생의 요약할 순간이 온다면 내가 직접 해야겠다.
요약에 익숙해진 나 자신의 봤을 때의 그 충격을 되새기며 읽을거리든 볼거리든 모든 콘텐츠는 가급적 누군가 요약하지 않은 원문을 보도록 조금의 애를 써야겠다.
[P.S]
하지만 이 글에서도, 나는 이 글을 읽는 분이 직접 요약할 권리를 빼앗고, 볼드체와 색상으로 요약의 횡포를 부리고 말았다. 브런치 글을 쓰면서 언젠가부터 빠지게 된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