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디오스 Dec 24. 2023

브런치 글쓰기, 교과서처럼? 참고서처럼?

죄송하지만, 유명 작가의 브런치 글쓰기 팁, 아닙니다.

※ 읽기 전에...

소제목에도 밝혔듯이 이 글은 브런치 글쓰기의 비법을 다룬 글이 아니라, 브런치 초보로서 고민을 적은 글이니 혹시 유명 작가의 필살기를 기대하고 클릭하셨으면 되돌아가시길 권합니다. 솔직한 제 마음을 제목으로 적었는데 혹시 낚시성으로 읽혔다면 아울러 죄송하단 말씀도 드립니다.


동시로 아르코 발표지원 기금을 받고 나서 브런치 작가로도 승인되어 동시 열 편으로 브런치북 한 권을 발행하곤 잊고 있었다. 연말이 되니 강의도 슬슬 마무리되어 여유가 생겨 브런치가 생각났다.  일상의 단상들을 짧은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워낙 게으르고 충동적이어서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는 일을 잘 못해서 시작하기 망설여진 점도 있었고...


브런치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략이나 비법 같은 건 하나도 읽어보지도 않고 참고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수필로 상을 몇 번 수상한 적이 있었던 터라 그런 글쓰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말대단치'라는 무성의한 이름의 매거진을 만들고 첫 글에는 '퇴고도 하지 않을 테다', '내 마음대로 쓸 테다!'라고 썼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삐뚤어질 테다!라는 외침처럼 말이다.


암튼 그렇게 몇 편의 글을 썼는데 라이킷이 10개 내외는 되었다. 점점 글을 올리다 보니 라이킷에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라이킷 수보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작가의 서랍이 아니면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런치 글쓰기가 어떻게 노출이 되나 싶어서 이런저런 글을 읽어봤는데 원래 초보의 글은 잘 노출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라이킷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어디서 내 글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가족은 물론 그 누구에도 알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직도 그 궁금함은 풀리지 않았다. 노출 알고리즘의 신비는 여전히 해결 못하고 대신 다른 수확을 얻었는데 그건 고수들의 글쓰기 형식이었다. 텍스트가 빡빡한 내 글과는 많이 달랐다. 알록달록 예쁘고 잘 읽혔다.


매거진을 만들고 처음 쓴 글들은 내가 요즘 빠져있는, AI로 생성한 이미지로 만든 짧은 컷의 웹툰이다. 차마 웹툰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것이다. 그러다 이후에는 예전에 수필 쓰던 방식으로 텍스트 위주의 글을 써서 올렸다. 한 가지 폰트와 색상, 크기로 썼는데  다른 작가분들은 가독성이 좋은, 독자를 배려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아, 물론 그게 좋은 글의 기준이 아닌 것쯤은 나도 안다. 매력적인 소재와 문체, 꾸준함, 열정 등이  핵심이란 것쯤은 말이다. 어쩌면 가독성은 좋은 글의 우선순위로 따지면 한참 아래일 것이다. (그저 내 글이 안 읽히는 원인을 찾은 걸로 잠시 착각하게, 기뻐하게 내버려 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가적인 요소라고 해도 브런치 글쓰기 형식에 대해 조금 고민하게 되었다. SNS나 소셜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웹상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라고 하면 원고지 20자 내외의 분량이라든지 폰트는 휴먼명조, 줄간격은 160으로 하라는 공모전 요구사항 정도만 알고 있었으니 한심할 지경이다. 글쓰기에서는 글 내용만 좋으면 되는 줄 았았다. 아, 제목의 중요성 정도는 안다.


웹의 글쓰기 형식은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과라고 말하고 싶은데 전과를 모르는 독자가 많을  것 같아서 참고서라고 고쳤다. 아쉽다!) 내 글은 교과서 같은 방식이었고.

교과서와 전과(못 참겠다. 전과라고 해야겠다. 혹시 모르는 독자는 부모님께 여쭤보면 아실 거다. ex. 동아전과)는 표지부터 속지까지 많이 다르다. 촌스러운 그림과 검정 텍스트가 빡빡한 교과서와 달리 전과는 표지부터 눈길을 끌고 속 내용도 중요한 부분은 강조 표시도 해놓고 돼지 꼬리도 달아놓고 알록달록 예쁘고 다채롭다. 중간중간 귀여운 캐릭터도 그려져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다.(아! 물론 전과도 지루하다. 교과서만큼은 아니지만)


생각이 이쯤 미치니 그럼 나도 전과처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왠지 그러기 싫어졌다. 이 무슨 심보일까? 교과서를 읽을 땐 중요한 부분, 기억하고 싶은 부분,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 시험에 잘 나올 것 같은 부분을 내가 찾아서, 내가 판단해서 예쁜 삼색 볼펜과 형광펜으로 내 손으로 줄도 긋도 반짝반짝 별도 그리고 돼지꼬리도 달아둔다. 내 글도 독자들이 그렇게 읽어주길 바랐다. 그렇게 읽히고 싶었다. 밋밋한 2차원의 텍스트를 3차원의 글 읽기로 만들어가시라고 말이다.


공들여 쓰지 않은 글이라 읽어주시는 분께 감사드리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 죄송한 마음과는 별개로 아니, 그 죄송한 마음 때문에라도 그냥 시커먼 검은색으로만 된 텍스트를 독자에게 내밀고 싶다. 필통에서 예쁜 필기구 꺼내서 맘껏 꾸미시라고 말이다. 교과서는 오탈자는 거의 없지만, 내 글은 있을지도 모른다. 틀린 부분은 뻘건 줄 좍좍 그어버리고 어쩌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형광펜으로 줄 그어가면서 말이다.


교과서도 나중에는 전과 비슷하게 되어간다. 처음엔 똑같은 교과서를 받아 들었지만 나중엔 나만의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전과처럼 일률적이지 않은 나만의 교과서처럼 나의 허접한 글이 독자 개개인 고유의 글 읽기가 되면 좋겠다. (혹시 이 지점에서 이런 교과서 방식의 글쓰기를 고수하는 것이 나의 게으름이란 걸 눈치채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마음도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라이킷이 줄어들거나 정체되면 알록달록을 넘어서 유치 찬란한 글의 형식을 취할지도 모른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난 나의 변덕이 좋으니까 말이다(나의 변덕에 대해서도 글을 써야겠다.)


PS. '퇴고하지 않는 글은 쓰레기'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찔렸다. 아픔은 잠시, 딱 한번 퇴고하고 다시 발행을 클릭하는 나는 작가의 자격이 없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유일한 추억 이야기 (feat. 변진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