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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Jan 06. 2024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지난겨울, 부산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우리는 겨울이면 남쪽 어딘가로 떠났다. 피난처는 포털에서 날씨를 검색해 낮기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골랐다. 그렇게 고른 부산의 바닷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광안리 해변을 지나 민락포구 변에 신축 오피스텔이 들어선 것이 보였다. 나는 늘 그렇듯 부동산앱을 꺼내 시세를 확인했다. (여행을 가서도 길을 걷다 부동산이 보이면 멈추어 서서 시세를 확인한다. 난 피렌체 부동산 시세도 알고 있다.) 정면 바다뷰라 당연히 비쌀 줄 알았는데. 월세 시세가 생각보다 저렴한 게 아닌가. 신축이라 매물이 많아 그런가. 교통편이 좋은 곳은 아니라 그런가. 난 “우리 겨울마다 부산 오는데. 아예 부산에서 한 번 살아볼까.”라고 말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그래”라고 말했다. 아침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것처럼, 사는 지역을 바꾸는 것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우리의 부산살이가 결정되었다.


 살고 있던 집을 정리하고, 집 없이 유럽으로 삼 개월 동안 긴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언니 집에 잠시 얹혀살면서 부산집을 구하기로 했다. 미리 찜해둔 집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나 세상일이란 내 뜻대로 그리 쉽게 돌아가지 않는 법. 방 하나, 거실 하나에 작은 드레스룸까지 있다는 그 오피스텔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공인중개사님이 어두운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두 분이 살기에는 조금 좁죠?”

  “네, 그러네요. 생각 좀 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집을 보고 나서 우린 침울해졌다. 그러다 혼자 살기에는 딱 좋은 사이즈네. 집을 두 개 구해서 각방을 쓰면 딱이겠네 하는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우리는 초초 미니멀 라이프로 살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 건데 이참에 짐을 확 줄일까. 그래 그러자, 다 버리지 뭐.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부동산이었다. 광안리 조금 안쪽에 있는 매물 몇 개를 찾았으니, 내일 함께 보러 가자는 연락이었다.


 중개사님은 다른 부동산에 연락해 세 개의 매물을 더 보여주었다. 집 크기와 위치는 딱 좋은데 북향이라 어두운 집 하나와 저층이지만 밝고 깨끗한 집.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가 보이는 이쁜 집 하나 보고 가라며 덤으로 보여준 집. 거실 창밖으로 광안대교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말 그대로 이쁜 집.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이런 데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덤으로 보여준 그 집은 우리 예산 밖에 있었다.


 그와 마주 앉아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끌리기야 바다가 보이는 집이지만, 현실을 생각해야 했다. 바다야 집에서 안 보이면 어때. 걸어서 5분 안에 갈 수 있잖아. 그래 그게 어디야. 우리는 저층이지만 밝고 깨끗한 집을 계약하기로 결심하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바다뷰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비싸서요. 그 저층집으로 계약할게요.”

 “내가 혹시나 하고 그 바다뷰 집주인이랑 얘기해 봤는데. 전세를 깎아준데요. “

 아니 이 분들. 처음 보는 우리한테 왜 이렇게 친절한 거야. 자기 매물도 아닌 걸 찾아주고, 부탁하지 않은 전세가도 깎아주고. 덕분에 우리는 광안대교가 보이는 그 집을 무사히 계약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이사 와서 2주쯤 살아보니 집을 구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여기는 너무 관광지라는 거. 약국이라던가. 은행이라던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우리 집을 기준으로 둥글게 원을 그린 바깥쪽에 존재했다. 마치 섬처럼. 그리고 어마어마한 주말 교통체증. 여행과 삶은 이렇게 다른 거지. 그래도 거실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부산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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