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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

by idle

원래 4월은 발리에 있을 줄 알았다. 발리 여행 취소를 고민하고 있을 때쯤 “제주도 한 달 살기는 어때?”라고 언니가 제안했다. 4월은 언니가 정든 집을 떠나 이사할 예정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인테리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언니네는 곱실거리는 검은 털을 가진 푸들 한 마리와 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인테리어 기간 동안 강아지를 데리고 잠시 머물 장소를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숙박비는 내가 줄게, 인테리어 하는 동안 엄마랑 너네 집에 좀 있어도 되나?”

“얼마나 줄 건데?”

“일단 숙소 한번 찾아보고 얼마나 들지 알려줘.”

“그래!”


솔깃했다. 어차피 백수이기 때문에 어디에 살든 상관없었고, 숙박비가 해결된다니 돈도 아낄 수 있다! 제주도를 안 간 지도 벌써 6년이 되어간다. 제주도는 남편과 내가 연애를 시작한 장소다. 여기저기 우리의 추억이 묻어있다. 4월의 제주는 특히나 아름답다. 섬 전체가 하얀 벚꽃으로 뒤덮이고, 유채꽃도 아직 피어 있을 시기다. 전농로와 제주대학교 앞 벚꽃터널을 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채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녹산로 드라이브도 그립다.


틈날 때마다 에어비앤비로 제주도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쏙 드는 숙소는 대체로 비쌌고, 단기 숙박만 가능했다. 적당한 가격에 한 달 살기가 가능한 숙소는 주로 시내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제주도에서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시내는 익숙했다. 그때도 바닷가나 한적한 전원주택 살이를 꿈꿨지만 출퇴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가 가까운 시내로 집을 구했었다.


낯선 경험을 하고 싶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바닷가 돌담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이사 날짜가 확정되지 않아서 예약은 하지 못하고 계속 구경만 하고 있었다. 좋은 숙소는 에어비앤비 예약이 벌써 마감인 곳도 보였다. 언니에게 언제 날짜가 확정되냐고 계속 채근했다.


“미안, 세입자가 이사 갈 집도 나가야 정할 수 있어.”

이사 날짜 맞추기란 거의 신의 영역이다. 몇 집의 이사 날짜가 물리고 물려있다. 드디어, 이사 날짜가 확정은 되었는데...


“어떡하지. 이사 날짜가 안 맞아. 2개월은 걸릴 거 같아.”

“엄마도 있고, 강아지도 있는데 어떡해, 우리가 2개월 동안 제주도 있을게.”

“미안해, 숙박비 2개월치 지원해줄게.”

어차피 백수인데 안될 게 없었다. 은퇴하면 원래 낯선 동네에서 오래 살아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숙박비까지 벌게 생겼으니 싫지 않았다.


두 달간 살 집을 알아보며 남편이 말했다.

“집을 빌려주는 거 괜찮은 거 같아.”

“그러게, 주변에 집 필요한 사람 있으면 말하라고 그래. 후훗.”


이렇게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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