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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by idle

언니의 이사 날짜가 확정되었다. 에어비앤비에서 본격적으로 제주도 숙소를 알아보았다. 시내에 위치한 원룸 오피스텔은 한 달에 80만 원 정도 했고, 단독주택은 거의 200만 원 가까이했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단독주택이 있어 위치를 찾아보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동네였다. 가격이나 편의성을 생각하면 시내 오피스텔로 가야 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단독주택 로망을 이뤄보고 싶었다.


“작은 단독주택을 구하면 오피스텔보다 두배 정도 비싸네.”

“숙박비 지원도 받으니 우리 돈 좀 보태서 구해도 되지 않을까?”

남편의 동의를 받았다! 그동안 저장해둔 숙소 중 주택만 남겨두고, 한 달로 설정되어 있던 날짜를 두 달로 바꿔서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엇, 그런데 이상했다. 한 달이나 두 달이나 가격이 비슷했던 것이다. ‘장기 숙박 할인인가?’ 신기해하며 몇 개를 골라서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한 달이나, 두 달이나 가격이 비슷하네, 생각보다 안 비싸!”

“숙소 다 괜찮네. 이 중에서 위치가 괜찮은 곳으로 정하자.”


우리가 숙소를 찾는 몇 가지의 기준이 있다.

1.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과 식당 몇 개쯤 있는 곳
2. 널찍한 테이블 하나 정도 있는 여유 있는 공간
3.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주방

집이 아무리 좋아도 나홀로 서있는 전원주택은 선호하지 않는다. 짧은 여행이면 상관없겠지만, 오래 머물다 보면 필요한 것들이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적당히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걸어갈만한 거리에 편의점과 식당 몇 개쯤은 있는 곳이어야 살기에 불편하지 않다. 여행이 아니라 살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오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집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려면 테이블 하나쯤은 있어야 편하다. 부산에서 2주간 있을 때는 테이블이 없는 좁은 원룸을 구했었다. 며칠 지나니 답답해서 집에 머물기보다는 밖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매 끼니를 사 먹을 수는 없으니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주방도 필요했다.


내가 저장했던 숙소 중 중산간에 위치한 전원주택 몇 개를 리스트에서 추가로 삭제했다. 제주도는 오래전부터 바닷가 위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중산간은 제주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한적하다. 숲이 울창하고 좀 더 습했다. 제주의 자연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위치였지만 우리는 편의를 택했다.


바닷가 마을 중에서 애월, 조천, 함덕, 세화, 대정에 있는 숙소로 몇 개를 추렸다. 숙소 후보 중에서 세화에 있는 단독주택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도로 위치를 보니 걸어갈만한 거리에 편의점과 식당들이 몇 개 보였다. 바다도 가까워서 아침에 바닷가 러닝도 가능할 것이다. 세화로 숙소를 정하고,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 이상하다 왜 결제 가격이 두배가 되지?”

다시 살펴보니 내가 장기할인이라고 생각했던 가격은 한 달 가격이었고, 그 아래에 조그맣게 두 달 숙박 시 가격이 나와 있었다. 내가 이러고도 IT업계에서 오래 일한 기획자라고 할 수 있을까? 가격을 착각하고서는 싸다고 생각하고 예약하려 했던 것이다.


“너 의도하고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착각할 리가 없잖아?”

“아 어쩌지, 고른 숙소가 다 너무 비싸.”

하지만.. 이미 좋은 숙소로 눈이 높아져 있었다. 다른 숙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에어비앤비 말고 장기 숙소를 찾을 만한 곳이 없을지 찾아보았다. 그때 인스타그램에서 제주도 숙소 추천이라는 광고글을 하나 보았는데, 한눈에 그 숙소에 반해버렸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돌집을 리모델링한 아담한 숙소였다. 작은 마당에는 화산송이가 깔려 있었고, 실내는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였다. 조천 바다 근처에 있는 숙소라 주변에 갈만한 곳이 많아 보였다. 한 달 살기 비용은 190만 원이었다. 역시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했지만, 내 실수 때문에 눈이 높아져 있어서인지, 그 정도 가격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로 따지면 6만 3천 원 정도다. 그 정도면 여행 숙소 치고는 합리적인 가격 아닌가.

제주 두달살이 집의 마당


“그냥 이 집으로 해. 언제 이런 데서 살아보겠어. 숙박비 지원도 받잖아.”

은퇴 후 아껴 살아야 하는데 결국 질러버렸다. 다른 데서 아끼면 우리 예산에서 크게 오버하지는 않을 거라 속으로 위안했다. 그 숙소는 인스타그램 DM으로만 예약을 받았다.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다행히 우리가 원하는 기간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문자로 필요한 내용을 주고받고 예약을 확정했다.


마음에 드는 속소를 구하고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이사날짜가 또 변경된 것이다.

“부동산이랑 일이 꼬였어, 3개월 정도 걸릴 거 같아. 난 어떻게든 숙소 구해볼게 엄마랑 강아지만 좀 데리고 있어 줄래?”

“그냥, 3개월 동안 우리 집에 있어, 우리가 여행 더 길게 하지 뭐.”


한 달 살기 숙소를 또 구해야 했다. 제주도에서 한 달 더 머물지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볼지 고민이 필요했다.

“제주도 숙소는 너무 비싸잖아. 다른 곳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바다에 오래 있으니 이번에는 산 쪽으로 가볼까? 강원도는 어때?


에어비앤비에서는 마음에 드는 강원도 숙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 달 살기 숙소’를 검색 후, 카페에서 숙소 홍보하는 글 하나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난 사진에 반해버렸다. 속초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숙소로 한 달 이상 머물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오래된 빌라를 리모델링한 곳이었는데,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감성을 가진 인테리어였다. 게다가, 이곳은 가격도 저렴했다. 제주도의 반값도 하지 않았다! 글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집주인에게 메시를 보냈다. 예약금을 보내고 속초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다.


에어비앤비에 있는 국내 숙소 중 장기 숙박이 가능한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가격도 비쌌다. 미스터 멘션 같은 장기 숙박 검색 서비스도 있었지만 그곳도 가격이 비싸긴 마찬가지다. 한 달 살기 관련 카페에도 숙소가 많이 있었는데 직거래라 그런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꽤 큰돈을 지불해야 해서 온라인에서 이런 식으로 직거래하는 게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주인과 대화를 하다 보니 믿음이 생겼다.


속초 숙소를 생각보다 저렴하게 예약해서, 언니가 지원하는 금액으로 숙소 예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세 달간 살아가기 위한 짐을 어떻게 챙길 것인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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