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막걸리
“웬 강화도 인삼 막걸리?”
“팀 사람이 여러 병 샀다고 나눠줬어.”
몇 년 전, 아직 회사에 다니던 시절. 퇴근한 그가 가방을 뒤적뒤적 헤치더니 ‘인삼 막걸리’ 한 병을 꺼냈다. 우리는 먹는 것에 기본을 선호하는 편이다. 퓨전보다는 기본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식당에 가면 메뉴 가장 위에 있는 음식을 주문한다. 막걸리 역시 쌀로 만든 막걸리가 아닌 다른 재료가 섞여 있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인삼이 들어있는 막걸리를 가져온 것이다. 그날 저녁, 그는 인삼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며 김치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 막걸리를 마시며 볼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신중히 골랐다. 그리고 주방으로 돌아가서 쟁반에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김치전을 담을 접시와 젓가락 그리고 술잔. 그러고 보니 술잔이 좀 애매하다. 맥주잔에 막걸리를 따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밥그릇 두 개를 꺼냈다. 김치전을 완성한 그는 쟁반에 놓인 밥그릇을 힐끗 보더니 별다른 말이 없다. 그 역시 맥주잔에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치전을 담은 쟁반을 놀이방(TV가 있는 방)으로 옮겼다. 인삼 막걸리도 흔들어서 술잔(아니 밥그릇)에 따랐다. 하얀 액체와 함께 인삼으로 추정되는 알갱이들이 딸려 나온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응 인삼향이 살짝 나는데, 그게 또 막걸리랑 어울려!”
역시 오리지널이지!라는 우리의 편견 하나를 깨부순 막걸리였다(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 직접 가서 먹어야 한다며, 그에게 강화도에 가자 노래를 불렀지만 썩 내켜하지 않았다. “강화도는 너무 멀어. 나중에.” 그렇게 미루고 또 미루었다. 강화도와 비슷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충청도와 강원도는 자주 가면서 강화도는 왜 가지 않으려 하는가 물었더니. “강화도 가는 길은 너무 좁아. 항상 막힌단 말이야.”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시간 부자인 은퇴자다. 주말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평일 강화도 가는 길은 막히지 않을 것이다.
‘전국 막걸리 기행’을 쓰겠다 선언하고 얼마 후 그가 드디어 “오늘은 강화도 갈까?”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평일에 강화도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길에 지나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먼저 전등사로 향했다. 전등사 성인 한 명의 입장료는 4,000원, 주차비는 2,000원. 성인 두 명이 차를 가지고 갔으니 10,000원을 결제했다. 생각보다 비싼 돈을 지불했으니, 전등사를 천천히 둘러보며 역사의 흔적을 충분히 느끼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날은 7월 14일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듯했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금세 배가 고파졌다. 그는 예전에 강화도에 왔을 때 마니산 근처에 식당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며, 마니산 입구로 가자 했다.
그렇게 도착한 마니산 입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이 더운 여름날에 산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식당도 몇 군데 없었는데, 그나마 대부분 문을 닫았다. “분명 식당이 많았던 기억인데, 이상하다.” 강화도에 대한 기억이 조작되었나, 그와 나 둘 다 아~주 오래전에 다녀온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강화군 향토 특색음식 발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단골 식당’으로 들어갔다. 강화도에서는 젓국갈비를 먹어야 한다는데… 그는 대상을 받은 음식을 먹어보자 했다. 이번에도 그의 의견을 따라 ‘약쑥 시래기밥’을 시켰다. 시래기밥은 쑥의 향과 잘 어울렸고, 같이 나온 버섯 된장찌개도 구수한 것이 맛있었다. 이곳에서는 ‘강화 생막걸리 이화’를 주문했다. 균형 잡힌 막걸리의 맛이었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청량감이 있는. 약쑥 시래기밥과 같이 먹기 좋았다.
강화도에 가고 싶었던 것은 막걸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화도는 선사 시대 고인돌부터 고조선 유적인 참성단, 삼국시대 유적인 전등사, 보문사와 고려 궁궐터, 조선시대 외적 침입의 흔적까지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가 남아있는 섬이다. 서울 근처의 크지 않은 섬에 그 모든 유적이 있다. 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이날 우리는 몇 개의 성과 궁궐터를 둘러보았지만, 다시 찾고 싶을 만큼 뚜렷한 기억을 남긴 곳은 없었다. 강화도의 유적은 대부분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복원을 해두긴 했지만 완전하지 않았고, 유적지 안내도 부족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온전치 않은 흔적만 보고서 그 시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연미정에서 보이는 북한의 지금 풍경만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여름, 너무 한낮의 나들이에 조금 예민해졌다. 아픈 역사와 그 희미한 흔적은 볼수록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더 이상 둘러볼 의욕을 잃은 우리는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강화도 막걸리 몇 병을 사들고는 집으로 향했다.
강화도에서 사들고 온 막걸리를 마시기로 하고, 그는 다시 김치전을 만들었다. 난 막걸리 잔으로 다시 밥그릇을 꺼냈다. 밥그릇이 막걸리잔으로 최선일까 고민하며 꺼내는데, 싱크대 한 구석에 있는 ‘로열 셀랑고 맥주잔’이 보였다. 주석으로 만들어진 이 잔에 맥주를 마시면 끝까지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 애정 하는 잔이다. 그리고 이 잔은 우리의 결혼예물이었다.
그와의 결혼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둘이 가진 돈 전부에 대출을 더해서 전세를 구했고, 신혼집의 가구와 가전은 각자 쓰던 것을 가져왔다. 결혼식장은 몇 년 전에 친구가 했던 결혼식장이 떠올라 그곳의 빈 시간으로 정했고, 스튜디오 촬영은 따로 하지 않았다. 드레스, 메이크업, 결혼식 당일 촬영은 고민 없이 예식장 패키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예단도 양가에 얼마씩 드리기로 하고 따로 주고받은 것이 없었으니 결혼식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결혼을 기념할 물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얘기를 꺼냈다.
“결혼 기념품 하나는 있어야지. 결혼반지를 할까?”
“그래, 한번 보러 가지 뭐.”
“근데… 결혼반지 하면, 당신 끼고 다닐 건가?”
“나 걸리적거려서 반지나 시계 안 하고 다니는 것 알잖아.”
“에이, 혼자만 하고 다니는 게 무슨 의미야. 둘 다 좋아할 만한 걸로 고민해보자.”
자주 쓰면서도, 오래 둘 수 있는 기념품을 사고 싶었다. 그가 몸에 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쉽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옷이나 가방처럼 시간이 지나면 낡아서 쓰지 않게 될 물건이 아닌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것을 갖고 싶었다. 그러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갔을 때 살까 말까 고민하다 비싼 가격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온 ‘로열 셀랑고 주석잔’이 떠올랐다. 영국 왕실에 납품하기 때문에 앞에 ‘로열’이 붙은 이 브랜드의 잔은 디자인이 남달랐다. 그리고 가격도. 맥주잔 하나에 20만 원을 훌쩍 넘었던 것이다.
“우리 결혼 예물로 로열 셀랑고 맥주잔을 사자!.”
“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데. 우리한테 딱이네.”
그래서 나에게는 반짝이는 작고 예쁜 결혼반지 대신, 반짝이고 묵직한 맥주잔이 생겼다. 우리에게는 늘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했다. 소유만 하고 사용하지 않을 물건보다는, 우리의 경험을 즐겁게 해 줄 물건을 샀다. 그 기준을 정하는데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가방은 아이패드와 책 한 권 들어갈 크기의 가벼운 것이어야 하고, 옷이나 신발은 가볍고, 편해야 한다.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돌아다니면 딱 맞는 물건을 찾기가 어렵다. 백화점은 다양한 구성을 갖추기보다는 당시에 유행하는 물건을 판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유행하는 디자인이 아니면 구하기가 어려워서, 난 아직도 내가 원하는 소재와 크기의 가방을 사지 못했다.
백화점에서도 우리 사회가 다양성보다는 대세를 중요하게 생각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대세에 따라 소비를 하고, 그에 속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으니 생산되지 않는다. 소수의 취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환경이다. 이는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사회는 다수가 선이고, 소수를 악으로 여긴다. 다수의 선택이 정답은 아닐 텐데 나라의 정책마저도 여론에 흔들린다. 대중의 인기만을 의식하는 처사다. 하지만 길게 보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대중은 오랫동안 지지를 보낸다.
적당한 막걸리 잔을 고민하다 너무 멀리 갔다. 요즘, 잡다한 생각이 많아졌다.
제조 : 강화탁주
원재료 : 쌀, 입국, 올리고당,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종국, 정제 효소, 효모
알코올 : 6%
유통기한 : 20일
특징 : 균형 잡힌 맛의 막걸리다. 막걸리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맛.
제조: 찬우물
원재료 : 쌀, 입국, 올리고당, 아스파탐, 효모, 정제 효소, 종국
알코올 : 6%
유통기한 : 20일
특징 : 가벼운 느낌의 막걸리. 목 넘김이 부드럽다.
제조 : 찬우물
원재료 : 쌀, 팽화미, 입국, 누룩, 올리고당, 아스파탐, 효모, 종균
알코올 : 6%
유통기한 : 20일
특징 : 달달하고 청량한 막걸리. 밀키스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