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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5. 2024

14 용의자가 된 대학생


이건 우연일 수 없어. 일주일 동안 세 번, 똑같은 디자인의 검은 벤이 골목 어귀에 웅크려 있는 것을 목격한 재이가 생각했다. 재이는 서둘러 마스크를 끼고, 코트를 여민 채 종종걸음을 걸었다. 서서히 벤이 재이를 따라 앞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숨으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검은 자동차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한 달 째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기억 교환 능력이 수면에 올라올 때쯤부터. 차는 명확하게 재이를 노리고 있었다.  


“나도 그 차를 봤어.” 


희수는 재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끄러지듯 재이의 침대 아래에 앉았다. 재이는 어쩐지 무서운 마음이 들어 침대 위에 쪼그려서 두 팔로 다리를 감쌌다. 왜지? 왜 나를 따라오는 거지? 우연이라 하기에는 항상 똑같은 차가 재이의 뒤에 따라붙었다. 맨 마지막 번호 0922. 항상 아니길 기도했지만, 검은 벤은 늘 그 번호가 적힌 번호판을 가지고 등장했다.  


“일단, X 계정을 폐쇄해야겠어.” 


재이가 마침내 손을 다리에서 떼며 희수에게 말했다. 희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 고개를 돌려 재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아깝긴 하다.” 

“그렇지. 팔로워도 많이 늘었는데.” 

“그게 아니고선 우리를 감시할 이유가 없긴 해.” 


희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꾸물꾸물 재이가 희수를 따라 침대 아래로 내려와 희수에게 머리를 기댔다. 희수가 어깨에 닿은 재이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주었다. 재이는 희수의 손가락을 느끼며 X에 너무 자주 정부와 경찰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있잖아.” 


희수의 손가락이 뚝 하고 멈추었다. 재이는 희수의 어깨에 기댄 채 희수의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희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니까, 또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희수는 말을 고르려는 듯 음-하는 소리를 연신 뱉어냈다.  


“이 모든 일이 재이 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누군가 알게 된 게 아닐까?” 


재이가 희수의 어깨에 기댔던 머리를 들어올렸다. 불길한 감각이 재이의 머리속에도 피어올랐다. X 때문에 벤이 자신을 쫓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보다 더 심각하고 더 커다란 일이라면? 대통령 하야라는 초유의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누군가 결론을 낸 상태라면? 재이는 그 질문을 천천히 곱씹었다.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기억 도난 사건 피해자들을 조사하여 근원으로 돌아간다면 그 곳에 재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재이는 누군가에게 그 능력을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만든다는 오래된 말이 선명한 사실이 되어 재이의 눈앞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단지 악수를 했을 뿐인데, 모두가 재이를 이 모든 혼란의 주동자로 지목하게 된다면? 재이는 다시 웅크려 두 손으로 자기 자신을 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지만, 억울한 마음보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불안감이 더 크게 재이의 몸을 삼키고 있었다.       


*       


희수는 낯선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재이를 방문 틈 사이로 보고 있었다. 그들과 재이가 몇 마디 말을 나누는 것을 보고 희수가 몸을 비스듬히 일으켰다. 누구지? 이 밤에. 그들의 사이에 음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재이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던 남자들이 저벅 저벅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거실로 들어왔다. 그건 좋지 않은 사인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희수는 총알같이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나와 재이의 팔을 잡았다. 재이가 떨고 있었다.  


“희수야 나” 


재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당탕 하는 소리가 재이의 방 안에서 났다. 희수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고개를 돌린 쪽에 남자들이 재이의 방의 책장을 뒤엎은 것이 보였다. 재이의 책들과 공책들이 방 안에 나뒹굴었다. 남자들은 무심하게 그 책과 공책들의 사진을 촬영하더니 발끝으로 책을 치웠다. 여전히 그들은 신발을 벗지 않은 상태였다. 한 명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숙이더니 공책 한 권을 집었다.  


“보지 마세요.” 


재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겨우 옆에 서 있는 희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남자는 그 말을 듣지 못했는지 공책을 펴고 공책에 쓰인 낱말들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재이는 그 공책에 많은 말들을 적어 넣었다. 그건 재이의 일기장이었으니까. 남자는 공책을 조금 읽더니 그대로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재이는 그렇게 사라졌다. 대통령이 하야한지 30일만의 일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희수는 날이 밝자마자 뉴스 속보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온통 한 가지 소식만이 방영되었다. 희수는 잠시간 그 소식들을 듣고 있다가 지난밤의 일을 곱씹었다.  


“괜찮을 거야.” 


재이가 수갑을 찬 채로 고개를 돌려 희수를 바라봤다. 희수의 시야 속 재이가 울렁거리며 흐려졌다. 뭐가 괜찮다는 걸까. 희수는 재이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희수가 재이의 손이라도 마지막으로 잡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남자들이 희수의 손을 막고 고개를 저었다.


“재이를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남자들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끼이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어둠이 방 안의 희수를 가두었다.  


“어제 밤 서울의 한 빌라 건물에서 기억 절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긴급체포 되었습니다. 용의자는 서울 소재의 대학에 다닌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드러났습니다.” 


켜져 있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가 희수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껐다.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추어 있던 희수는 그 다음으로 모든 창문에 달린 커텐이 잘 닫혀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까부터 바깥에 취재진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음으로. 희수는 다시 식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을 거야. 희수는 재이가 이야기했던 마지막 말을 믿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희수는 괜찮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불현듯 자리에 앉아있던 희수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간강사! 재이와 악수를 한 사람 중에는 시간강사도 있었다. 재이가 악수한 사람이 희수와 시간강사가 유일했다. 남자들은 왜 재이를 잡아간 것일까. 만약 그들이 재이가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누군가 그 사실을 불었을 수밖에 없었다. 희수는 재이와 자신이 악수를 한 일에 대해 남에게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시간강사뿐이었다. 시간강사가 경찰에 재이에 대해 불었을 것이 뻔했다. 불법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의 수장을 잡는 것처럼 경찰은 그저 덫을 놓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 덫에 시간강사가 빠져버린 것이겠지. 덕분에 재이는 고작 세 번밖에 능력을 쓰지 않았음에도 주동자가 되었다.  


희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한 숨도 자지 못했음에도 희수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말끔했다. 마침 수요일이었다. 재이가 듣는 계절학기 <근대철학사>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오전 9시 50분. 곧 1교시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그 강의를 진행하는 시간강사를 만나야했다. 무엇을 요청할 것인지는 희수 자신에게도 확실치 않았다. 그저 시간강사에게 이 모든 사실을 추궁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 희수는 재이를 돌려받아야 했다.  


희수는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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