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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4. 2024

13 그럼 제가 대통령을 하겠습니다.


순간 죽음과 같은 정적이 브리핑 룸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채 카메라를 들어 올리는 것도 잊은 채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은 고역인 것처럼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입술로 천천히 아랫입술을 쓸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몇몇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동시에 보좌관들도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그들도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할 줄 꿈에도 모른 표정이었다.  


“제가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촬영 기자들의 플래시가 대통령의 얼굴 앞에서 터지자 대통령은 진짜 한 순간 정치와 너무도 먼 인생을 살아왔던 일반인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비를 쫄딱 맞아 온 몸이 젖어버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기자회견장에 동행했던 보좌관이 황급히 대통령에게 귓속말을 했지만, 그는 단상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큼은 선택하지 않았다.  


“솔직히. 대통령이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보좌관 한 명이 참을성 없이 한 손을 이마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몇 몇 기자들은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브리핑 룸 뒤편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그럼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노트북 너머 안경을 쓴 젊은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은 후 질문했다. 대통령은 눈을 끔뻑거리며 기자를 바라봤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떡볶이 장사를 할까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마지막 기자회견의 마지막 대사가 되었다. 곧이어 수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의 기회를 청했으나 대통령은 그들의 손바닥을 외면한 채 그대로 단상에서 내려와 바쁜 걸음으로 브리핑 룸에서 도망쳤다. 백 브리핑도 없었다. 몇몇 보좌관들이 사색에 질린 채 떠나가는 대통령을 따라갔다.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꽁무니만이 카메라에 잡혔다.  


생방송을 보고 있던 수많은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요 며칠 세상을 뒤흔들던 기억 절도 사건과 수많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거대한 음모론이나 사이비 종교의 음해 같은 것으로 여기던 사람들도 마침내 이 모든 일들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집단 기억 도난 사건이라는 우스운 이름의 사건은 불행히도 모두 사실이었다. 떡볶이 만드는 법이 대통령의 정치 인생과 정치적 야망, 정치적 신념 모두와 함께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목청을 높여 대통령의 책임과 잘못을 지적하던 사람들까지도 대통령의 떨리는 몸과 음성, 질끈 감은 눈동자 앞에서 숙연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 선언을 해버린 직후, 자연스럽게 그와 마지막으로 악수했던 시장 상인에게 관심이 쏠렸다. 지금 이 모든 일들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님 떡볶이를 팔던 시장 상인이었기에. 상인만이 기억 절도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빠르게 움직였던 이들은 또 다시 유튜버였다. 대통령의 하야선언 직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소를 찾아낸 유튜버들로 인해 시장 상인의 집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인터넷 세상 속 가장 자극적인 뉴스를 찾아 헤메는 하이에나 유튜버들이 [어제는 떡볶이 파는 상인이었던 내가, 오늘은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합동 라이브 방송 공지를 올렸다. 시장 상인의 집 앞에서 함께 모이자는 내용의 공지였다.  


대통령이 하야해버린 바로 다음날 오전부터 유튜버와 동네 주민과 대통령의 지지자들, 경찰과 안티들이 상인의 집 앞에 모두 모였다. 물론 그 곳에는 그저 심심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은 파를 이루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영 관심 없었던 동네 주민들까지 항의하기 위해 몰려들 때쯤, 태연하게 떡볶이를 파는 상인이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마치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멀끔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꽃무늬 상의와 앞치마를 입고 떡볶이를 팔았던 시기가 마치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사람처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몇몇의 사람들이 기쁨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저 심심했던 사람들이 서 있던 쪽이었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함성을 지른 사람들을 하나 하나 기억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째려보았다. 상인은 작은 소란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대신, 마치 수많은 청중 속에 둘러 쌓인 것에 너무도 익숙한 사람인 것처럼 가슴을 펴고 꼿꼿하게 섰다. 야유와 함성이 다시 한 번 동시에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멀리서 유튜버 한 명이 마이크와 엠프를 들고 나와 상인에게 건넸다. 상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후 능숙하게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지자 여러분. 대통령님의 기억을 갑작스럽게 가지게 된 일에 대해 제 자신도 얼마나 비통한 시간을 견뎠는지 모릅니다. 그저 악수를 했을 뿐인데, 대통령님의 기억이 제 자신에게 넘어올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기억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는 것, 그 일을 우리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대통령님이 겪었다는 것에 큰 유감과 슬픔을 표합니다. 그리고 저 최영자의 인생을 걸고, 대통령님의 명예를 걸고 이 일에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오랜 지지자로서, 그리고 이제 그의 뜻을 이어갈 유일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다시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그 빈자리를 제가 채우고자 합니다.”


그가 청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느닷없이 시작된 그의 연설에 압도된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정치적 자산이 없었던 대통령이 일락의 스타가 된 이유가 그의 유려한 말 빨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사람도 있었다. 어느새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이들이 빨려들 듯이 고개를 내밀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 일의 정확한 해결을 위해 법 개정을 추진을 요청합니다. 국무총리가 아니라 제가 대통령님의 남은 임기를 해나가는 것이 대통령님의 뜻이자, 국민의 선택입니다. 지금 현재 대통령님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 최영자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국민을 위해!”


국민을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 구호를 외쳤다. 대통령이 언제나 연설 끝에 외치던 구호였던 탓이었다. 상인을 비난하러 그 곳에 간 몇 사람들까지도 어느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상인의 뿌듯한 표정이 대통령이 자주 짓던 표정과 오버랩 되었다. 대통령이 남겨놓은 과제와 뜻을 이어받는 것은 대통령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게 정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공중에 피어올랐다. 설령 그 사람이 우연히 대통령의 기억을 훔친 사람일지라도. 대통령, 아니 시장 상인은 뿌듯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가슴을 넓게 폈다. 대통령과 시장 상인이 유일하게 달랐던 점은 연설이 끝난 후 지지자 및 시민들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대통령 하야와 시장 상인의 명연설이 톱뉴스가 되어 여러 차례 방영된 후, 경찰은 상인을 즉각 체포하였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남의 기억을 훔친 죄를 묻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금방 상인을 풀어주고 말았다. 시장 상인의 바람대로 법 개정이 추진된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한 초유의 사건이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국회에서는 대통령의 하야 자체를 승인해야 하는지, 승인하지 않아야 하는지 긴 논쟁을 했다. 심지어 범죄-비록 그것이 범죄로 법적으로 규정된 적은 없었지만-로 기억을 잃어 대통령의 직무를 다하지 못하게 된 대통령의 하야가 자발적인 것인지, 자발적이지 않은 것인지 철학적 논쟁까지 더해졌다.


상인은 아쉽게도 대통령의 권한 대행이 되지는 못했다. 이 모든 논쟁에서 대통령 권한 대행과 관련된 법까지 손보기엔 국회도 여력이 없었다. 대통령이 두문불출했기에 대통령 하야가 승인된 것도, 승인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법대로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맡게 되었다. 한편, 여당은 상인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하는 것을 논의하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야당에 우호적인 신문은 바로 이에 반박하며 “어제는 도둑, 오늘은 국회의원 후보?”라는 표제의 기사를 특집 기사로 실었다.


세상은 느리게 흘러갔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빠른 변화가 일었다. 국회는 빠르게 “악수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악수를 “한 손바닥을 상대의 손바닥과 완전히 맞붙인 후 두어 번 위 아래로 흔들었다가 떼는 행위”로 명명했다. 공식 석상이든, 공식 석상이 아니든 이제 한국에서는 악수가 금지되었다. 몇몇 정치인들이 그것을 망각하고 시민들과 악수를 해대는 통에 벌금형을 선고받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겨났다. 전염병 시대 때 유행했던 주먹 인사가 이제 보편의 악수로 바뀌었다.  


빠르게 움직인 것은 국회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연대체가 발족한 사실도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기억을 빼앗긴 사람들이 피해자 연대를 꾸렸던 것이다. 공식 명칭은 “기억도난 진상조사를 위한 피해자 연대”였으나 발족 기자회견 소식을 담은 기사에 달린 댓글이 화제가 되며 곧 정식 명칭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누군가 피해자연대 발족 기사 아래 “진짜 인생이 네 것이 되었네…….”라는 댓글을 달았던 까닭이었다. 인생네것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밈이 되어 히트를 쳤고, 모든 사람들은 “기억도난 진상조사를 위한 피해자 연대”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인생네것 피해자 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명칭이 밈화 된 것은 기자회견의 주최자들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모임의 이름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구체적인 사연들이 조명되었던 까닭이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지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기보다 추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처음으로 피해자 연대 발족을 제안했다고 알려진 4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한 교수는 연신 기자회견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제가 일평생 가장 사랑했던 사람인 아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5년간의 추억은 누군가의 수중에 들어가 무가치한 것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박영미. 박영미에 대한 2019년부터 2024년까지의 기억을 가지게 된 사람은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억입니다.”


교수는 마지막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흐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온갖 기구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했다. 그래도 아내에 대한 기억을 일부만 잃어버린 교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교수와 달리 몇몇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전부를 잃어버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당사자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새로운 피해자로 그 자리에 등장하기도 했다. 곧 신문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신의 기억을 찾아달라는 사람들의 사연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The Mysterious Phenomenon Happening in South Korea: Thief of Memories”라는 기사로 외신에 보도 되었다. 발빠르게 대한민국을 입국 금지 국가로 지정한 나라들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격과 국민들의 삶의 행복과 여러가지 것들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기억을 잃은 사람이 아웅다웅 하고, 무역에 장애가 생기고, 대면 출근과 대면 회의 대신 재택근무와 비대면 회의를 대기업들이 선택한 후에도 대한민국은 파산하지는 않았다. 어느새 새학기가 코앞에 다가온 2월이 되었다. 점차 모든 혼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기억을 훔친 죄에 대해 새롭게 규정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었다. 덩달아 학계의 그림자 속에 은신하고 있던 철학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활약했다. 지식의 절도가 인간의 어떤 권리를 침해하는지 규정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인지부터 규정해야했던 탓이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지식과 기억을 담은 뇌가 중심인지, 아니면 그 외의 것들인지 지루한 논쟁들이 이어졌다.


물론, 이 모든 혼란을 크게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갑 공장들이 유래없는 호황을 맞이한 까닭이었다. 유명인들은 하나같이 모든 공영방송에 장갑을 차고 등장했기에, 장갑은 패션의 트랜드를 보여주는 하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 해 겨울에는 긱시크 모드에 맞는 네이비 색 장갑이 품절 사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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