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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3. 2024

12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대통령이 좁은 시장 골목을 걸어갔다. 새해의 찬바람이 날카롭게 대통령이 입고 있는 코트를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수많은 인파와 카메라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서민 대통령’ ‘자수성가형 대통령’ ‘불굴의 용사’ 대통령은 자신의 타이틀 앞에 자주 붙는 말들을 잘 알고 있었다.  


가진 것 없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모험을 한지도 수십 년. 드디어 대통령의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해였다. 익숙한 시장의 풍경을 보는데 대통령의 코끝이 조금 아려왔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도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이었다. 시장은 그에게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를 먹이고, 살리고, 교육시켰던 것이 축축하면서도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시장이었으므로. 새해 첫 날 시장을 방문하는 정치인들은 많았으나, 그의 삶의 궤적은 카메라 속에 잡힌 모습과 함께 새해 첫 날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그 사실을 곱씹으며 다시 카메라를 보고 웃어보였다.  


“아이고! 대통령님. 어서 오세요!” 


그의 귀에 앙칼진 목소리 하나가 잡혔다. 떡볶이를 파는 상점이었다. 뿌연 김이 떡볶이와 어묵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통령은 잠시 자신을 큰 소리로 부른 상인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감사합니다. 요새 장사는 좀 어떠신가요?” 

“재료값이 너무 올라서 죽겠어요. 관광객도 많이 줄고.” 

“이번에 희망지원금이 지급된 후에 좀 나아질 겁니다. 건강하셔야죠.” 

“대통령님 보니 싹 낫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하는 웃음과 박수가 대통령 주변으로 터져 나왔다. 지지자들이었다. 대통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상인에게 손을 뻗었다. 시장 상인도 웃으며 허리를 떡볶이 좌판 바깥으로 빼며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 어린 시절, 시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지역 출마 예정인 정치인과 악수를 했던 기억을 들려줬었다. 마치 매우 대단한 일이라도 된 듯 그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저 권력을 잡는 정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정치. 유세장에서 그런 말을 외치며 대통령은 늘 어머니를 생각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의심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대통령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항상 좋은 정치를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 단속반 때문에 두 눈이 부어 귀가하던 어머니를 보던 기억, 무료 급식신청을 하기 위해 쭈뼛거리며 선생님 앞에 섰던 기억, 재료비 때문에 매일 걱정하는 나날. 그런 걸 줄여나가는 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볶이를 파는 상인의 눈가 주름을 보며 대통령은 한 번 더 웃어보였다. 아주 낭만적인 일이군. 수많은 세월동안의 정치 인생이 대통령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윽고 대통령은 시장 상인을 지나 이동하기 위해 한 발자국을 뗐다. 한 발자국을 떼자마자 대통령이 갑자기 시장 먼 곳을 바라봤다. 여전히 날씨는 추웠고, 사람은 많았고, 떡볶이는 김을 뿜고 있던 와중이었다. 대통령 옆 보좌관이 서둘러 대통령의 귀에 속삭였다. 이동하셔야죠. 그럼에도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대통령이 그대로 자리에 선 채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인파와 카메라를 돌아보았다.  


“당신들, 나를 왜 찍고 있는 겁니까?” 

“예?” 

“누구세요, 다들?” 


보좌관은 대통령의 팔을 이끌었다. 그는 유능했고, 대통령과 정치적 순간을 함께 헤쳐갔던 동료였다. 동물적인 육감으로 보좌관은 무엇인가가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캐치했다. 여태껏 대통령이 그런 표정과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므로. 대통령이 발을 끌며 보좌관을 뒤쫓았다. 갑작스럽게 대통령의 일정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날 저녁 모든 뉴스와 sns는 대통령의 소식으로 도배되었다. [오리무중 - 대통령은 어디로?], [돌발영상 - “누구세요, 다들”], [야당 대변인, “국민에게 누구세요? 대통령은 예의를 지켜라”] 곧이어 “대통령 치매”라는 키워드가 댓글판을 점령했다. 누군가는 즐거워했고,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심란해했다. 그럼에도 대통령도, 대통령 실도 어떠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어떤 의혹이나 음모에도 굴하지 않고 솔직한 입장을 밝혔던 대통령의 모습을 사랑했던 이들이 하루, 이틀이 지나며 두문불출하는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시장에 섰던 바로 다음 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긍정 지지율은 처음으로 60% 선을 넘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대통령은 잘못이 없습니다.” 


처음 중고차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희수와 재이가 올린 X의 글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을 둘러싼 온통 해괴한 음모론보다도 더욱 음모론같은 옹호가 그 글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작성한 이는 자신도 대통령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악수를 한 후 상대방에게 기억을 빼앗겼다는 그런 이상한 이야기였다.  


“악수를 한 다음에 저도 하던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 해고될 뻔 했습니다.” 


비슷한 글이 동일한 커뮤니티에 여러 건 올라오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점점 그 음모론이 진지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음모론이라고 하기에는 동일한 현상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겪은 탓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매우 구체적인 증언들이었다. 서서히 이 모든 것이 음모론에서 사실일지 모르는 일로 변모했다. 빠르게 글들은 증권가 찌라시가 되었고, 몇몇 언론사들은 취재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사건의 관련자 모두는 ‘피해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언론사보다 먼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건 유튜버들이었다. 그들은 ‘피해자’를 찾아가 대담하게 동영상을 촬영했다. 피해자들은 때로 흥분하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분노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증언했다. 한 ‘피해자’가 사이비 종교를 열심히 신봉했던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덕분에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증언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덩달아 X에 올린 재이와 희수의 글은 수많은 사람들의 ‘성지’가 되어 인터넷 ‘성지순례’의 공간이 되었다. 어느 새 그들은 대통령의 트위터 팔로워 수보다 더 많은 팔로워를 X에서 거느리게 되었다.  


쐐기를 박은 것은 이 모든 혼란을 만들어낸 - 혹은 세상에 드러낸 -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두문불출한지 2주만에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에 나선다는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모든 프로그램을 연기한 채 방송사들은 일제히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생방송으로 틀었다. 수많은 카메라가 대통령 실 브리핑 룸에 배치되었다. 그 사이로 대통령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멀끔한 복장에 멀끔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나타났지만, 어쩐지 쭈뼛거리는 발걸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는 단상 앞에 오르기까지 끊임없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카메라와 기자들의 눈치를 보았다. 마침내 그가 단상 마이크 앞까지 기어올랐다.  


“저는 오늘.” 


그가 플래시 세례가 눈이 부신 모양인지 얼굴을 찌푸렸다.  


“대통령을 사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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