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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2. 2024

11 나를 잊어버린 나의 룸메이트 (3)


재이는 희수와 함께 악수를 한 주변 인물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변화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시간강사의 수업을 재이가 여전히 듣고 있었으므로. 그의 수업을 아주 열심히 듣지 않는 학생이라도 시간강사의 변화를 감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말 고사 전, 중간 평과 과제가 끝난 탓이었다.  


“교수님.”  


맨 앞자리에 앉은 양 갈래 머리를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막 시간강사가 칠판에 무엇을 쓰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이번엔 평가지 안 나눠주시나요?” 


시간강사가 학생을 지긋이 바라보며 눈을 끔뻑끔뻑 움직였다. 학생이 시간강사를 바라보다가 민망함에 천천히 손을 내렸다. 시간강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천천히 학생들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강의실을 한 바퀴 둘러보던 시간강사는 재이와 눈을 마주치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런 시간낭비는 하지 않도록 하지.” 


그는 다시 뒤를 돌아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질문을 한 학생이 슬쩍 뒤를 돌아 다른 학생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재이의 눈에 보였다. 재이도 강의실을 둘러보며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다. 몇몇의 학생들이 의아한 듯 똑같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시간강사는 수업을 할 때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쉬는시간을 할애해가며 질문을 받던 강사는 언젠가부터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삐 강의실 바깥으로 사라져버리기 시작했다. 다른 전공 수업과 달리 이례적으로 학생들에게 철학적 논쟁 지점을 가지고 토론을 시켰던 강사의 수업에는 어느 순간부터 토론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과거 그가 그랬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갑작스럽게.  


희수와 악수를 한 슬이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할 만큼 슬이는 점점 박학다식해졌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웠을 것 같지 않은 우주 과학에 대해 술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독일어를 조금 쓸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쯤 희수가 갑자기 똑똑해진 연유에 대해 캐 물었으나, 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나버렸다. 그 모든 것은 하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둘은 모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보였다.  


재이와 희수는 이 모든 일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비극적인 일이 생긴다는 것 외에도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 뻔했다. 개인정보 도용,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그런 문제를 지칭할만한 단어들은 세상에 차고 넘칠 만큼 이미 많았다.       


[지금 당장 막아야 합니다. 타인과의 악수를 삼가고, 소중하거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기록해두십시오. 한 순간의 악수로 기억을 도둑맞을 수 있습니다.]      


희수와 재이는 X에 익명 계정을 개설하여 이 문제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했다. 능력의 법칙과 능력이 초래할 비극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대학생 두 명이 만든 X 익명 계정 따위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들은 수개월 동안 이 능력이 초래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X에 경고했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몇몇의 사람들만이 X에서 그들을 “초능력 좌”로 불리며 놀림거리로 만들 뿐이었다.  


그 사이 시간강사는 꽤나 유명한 논문을 써서 학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스터디원은 대학원 스카우트 제의를 교수들에게 받는 우수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희수와 재이는 각자가 악수를 한 인물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변화를 느끼긴 어려웠다. 슬이도, 시간강사도 여전히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이제 충분히 해볼 것은 다 해본 것 같아.” 


수개월이 지난 후에 희수가 재이에게 말을 꺼냈다. X를 운영하고, 악수를 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여러 번 글을 쓴 후의 이야기였다. 재이도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그들의 망상일지도 몰랐다. 수개월 동안 세상은 평소와 같이 잘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강사가 좀 더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는 점과, 슬이가 더 이상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정도가 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관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은 아니었다. 세상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항상 세상을 아주 시끄럽게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사고를 친 후 아무도 모르게 그 일을 덮어버리는 것에 종종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처럼. 능력의 발현과 사용도 그렇게 몰래 덮어버릴 수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희수가 예전의 희수로 돌아왔으니까. 재이는 침대에 누우며 생각을 곱씹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의 헤프닝 정도로만 끝날 것이다. 재이는 더 이상 이 능력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진 않았다. 희수도 마찬가지이겠지.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히어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괜찮을 거야. 갑작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온 희수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재이는 그 이야기를 믿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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