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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0. 2024

09 나를 잊어버린 나의 룸메이트 (1)


재이는 처음 능력을 발휘한 후 단 두 번 더 능력을 사용했다. 한 번은 시간강사의 지식을 훔쳤던 것처럼 우연한 것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한 대상은 룸메이트 희수였다. 같은 과 동기로 처음 만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살게 되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비슷한 지역에서 상경한 사이였기에 그 모든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한 가지 희수와 재이가 크게 다른 지점이 있다면, 룸메이트인 희수는 재이와 다르게 공부를 아주 잘했다는 점이었다. 중간고사 성적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은 평소처럼 저녁을 먹으러 자취방을 나왔고, 평소처럼 팔짱을 끼고 걷다가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의도치 않게 재이는 희수의 기억을 훔치게 되었다. 기억이 바뀌는 순간, 희수는 아주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재이를 바라보다가 손을 놓았다.  


“누구시죠?”


그가 그렇게 물었다. 희수의 질문이 백 그라운드 사운드처럼 들리는 동안, 재이의 머릿속에는 아주 생경한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익숙했지만, 아주 낯선 기억이었다. 개강 총회 때 박희수의 시점으로 김재이를 보던 순간, 같이 먹었던 저녁, 같이 보았던 영화 등. 심지어 재이가 잠에 들었을 때 희수가 재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얼굴을 만지작거렸던 순간까지 머릿속에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재이가 가질 수 없는 자신에 대한 기억이었다. 재이는 화들짝 놀라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시간강사와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똑같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재이는 대번에 그 일의 정체를 파악했다. 희수는 멍하게 하늘을 보고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마치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기억이 물밀듯이 머리에 퍼져나가는 사람처럼. 천천히 희수가 고개를 숙여 재이를 바라보았다. 눈썹 사이가 산 모양으로 솟아 울 듯한 표정이었다. 다급하게 재이가 희수의 손을 잡았다. 희수가 깜짝 놀란 듯 몸을 움찔거리며 바로 손을 뿌리쳤다. 재이는 처음으로 보는 희수의 겁먹고 두려운 표정을 보며 따라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차려야 해. 재이가 마음속에서 말을 되뇌었다. 


“지금, 무슨 생각이 떠올라!” 

“네?” 

“지금 무슨 생각이 떠오르냐고!”


재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희수의 입에서 어-어-하는 당황스러운 감탄사가 튀어 올랐다. 재이의 미간에도 덩달아 주름이 잡혔다. 재이의 표정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어-어-하는 소리를 내던 희수가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아감벤…. 로마법… 추방된 자… 호모 사케르….” 


희수의 말이 공기 중에 흩뿌려져 끝이 잘 들리지 않았다. 아감벤이라고? 재이는 아감벤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조차 믿어지지도 않았다. 전공시간에 배웠던 지식일까? 희수가 한 번 더 웅얼거렸다. 희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분명히 한국어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불어인가? 독어인가?  


“이탈리아 철학자…” 


희수가 웅얼거렸다. 재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알파벳을 쓰는지 아니면 고유한 문자를 쓰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희수가 중얼거렸던 말은 이탈리아어였던 모양이었다. 아감벤 따위, 이탈리아어 따위 재이가 원래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허경일 교수.” 


희수가 재이의 웅얼거림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재이는 아감벤에 대한 지식을 원래 가지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현대철학입문. 그 수업을 진행하는 허경일 교수의 것이었다. 허경일과 악수를 할 때 아감벤에 대한 기억이 재이의 머리에 들어왔겠지. 그리고 그 기억이 희수에게 흘러 들어갔겠지. 재이는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희수에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했다.  


“잘 들어.” 


재이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일단 우리는 같은 과 동기이고. 룸메이트야. 같이 산다는 뜻이야. 같이 산지 1년이 넘었어.” 

“…….” 

“아까 잠깐 우리가 손을 잡았을 때 서로의 기억이 바뀐거야. 그래서 넌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거고.” 

“거짓말.” 

“진짜야.” 

“반말하지 마시죠?” 


재이가 하!하고 웃었다. 희수가 입술을 삐쭉 내민 채 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불만이 있거나 못마땅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재이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믿고 있지 않았다. 가르쳐줄 것이 많겠네. 재이는 얼굴을 두 손으로 쓸었다.  


“일단 집으로 가자.” 


재이는 희수의 팔목을 다시 잡았다. 희수는 입을 삐쭉거리면서도 다시 재이를 뿌리치지 않았다.  


그들의 시야에 그들이 사는 낡은 벽돌 건물이 보이자 희수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생각할 것이 아주 많은 사람처럼 희수는 반 쯤 턱을 벌리고 있었다. 재이는 그의 팔을 다시 가볍게 흔들었다. 그에게 증명해야할 것이 많았으므로.  


“여기 내 집인데.” 


익숙하게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재이를 보며 희수가 웅얼거렸다. 이상하네. 이럴리 없는데. 재이는 곁눈질로 희수의 표정을 살폈다. 희수는 좀 더 심각해져서 이번에는 잔뜩 인상을 쓴 채 도어락 덮개를 내리는 재이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희수는 무엇인가를 따지려는 듯 입을 열고 숨을 흡 들이쉬었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콧구멍 사이에서 가벼운 숨이 새어나왔다.  


“자 봐.” 


재이는 현관 문 앞에 붙어있는 브로마이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타를 손에 든 채 막 가사를 읊으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싱어송 라이터 김형제의 사진으로 만든 브로마이드였다.  


“작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특집 공연. 홀링롤 셋째 줄 자리. 여기서 너 맥주를 세 잔이나 마셨잖아.” 

“거기 갔었어요?” 

“아니. 같이 갔잖아.” 

“거짓말.” 

“못 믿겠으면 이걸 봐.” 


재이는 성큼성큼 현관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는 희수와 찍은 인생네컷 사진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재이는 서둘러 한 장을 떼서 희수 눈 앞에 들이밀었다.  


“이런 사진이 열 장도 넘는다고.” 


희수는 인생네컷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몹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재이는 초조하게 희수가 고민을 끝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지. 우리 기억이 바뀌었으니까.” 

“그런 게 가능할리 없잖아. 합성한 거 아니야?” 


재이가 하!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희수는 아까보다 조금 더 의기소침해진 듯 두 팔을 축 내린 채 재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이는 희수의 표정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조금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난 2년간의 시간을 증명해야 하다니. 단지 한 번 악수를 했을 뿐인데. 악수를 할 때 중간고사 시험을 잘 본 희수를 조금 부러워했었던 것 같기는 했다. 어쩌면 그 부러움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일지도 몰랐다.  


“희수야 너는. 운동화를 구겨 신는 버릇이 있어.” 

“…….”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초콜렛 한 알과 물 한 잔을 먹는 습관이 있고.” 

“…….”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방 안에서 가끔 전자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린넨 소재의 옷을 가장 좋아하고, 손톱 깎기와 발톱 깎기를 항상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믿고, 2년 전 부터 지금까지 총 다섯 번 머리를 기르려 했지만 실패해서 머리가 항상 짧아.” 


재이는 어쩐지 목이 메이는 것 같아서 말을 멈추었다.  


희수는 액션 영화를 가장 좋아했다. 할리우드에서 나온 히어로물 시리즈 영화는 거의 광적으로 좋아했다. 재이는 할리우드 영화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늘 그 시리즈 영화가 개봉할 때에는 희수와 영화를 보러갔다. 희수는 시험기간에 늘 밤을 새는 버릇이 있었다. 하루도, 이틀도, 삼일도. 그 문제 때문에 희수와 재이는 자주 다투었다. 희수가 시험기간 때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에 재이는 희수가 밤을 새는 걸 싫어했다.


희수와 재이는 같은 가수를 좋아했다. 가수의 팬카페에 새로운 소식이 올라올 때면 급히 서로에게 연락하여 정보를 공유했다. 희수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했다. 그들이 사는 자취방은 동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수는 대신 작은 고양이 피규어를 모았다. 피규어는 희수의 방 안,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빼곡하게 놓여있었다. 희수는 작년부터 바리깡을 사서 집에서 가끔 머리를 밀었다. 언젠가는 바리깡을 잘못 휘둘러 빡빡이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희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자신이 빡빡 머리가 될 뻔했다고 열심히 재이에게 설명했었다. 그래도 희수는 누구보다도 숏컷이 잘 어울렸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재이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모든 것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희수가 잊어버렸음으로. 그 기억들은 재이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눈앞의 희수는 끝도 없이 자신과의 시간을 부정했다. 다 재이의 잘못이었다. 자신이 희수의 기억을 훔쳐버렸으므로. 재이의 시야 건너편 희수가 울렁거렸다.


“야 울지 마.” 


희수가 천천히 다가와서 손을 뻗었다. 희수의 손가락이 재이의 뺨을 지났다. 희수의 엄지손가락이 스친 재이의 눈 아랫부분이 살짝 반짝였다. 그건 재이가 울 때마다 희수가 하는 습관이었다. 재이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엉엉 거리는 소리가 손바닥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희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마도 입을 살짝 벌리고 눈썹을 조금 치켜떴을 것이었다. 희수는 늘 눈앞에 사람이 울면 그런 표정을 지어보였으니까.


얼굴을 가린 재이의 등에 따뜻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희수의 손이었다. 희수의 손이 재이의 등을 지나 아래로 이동하고 있었다.


“믿을게. 잘 안 믿기지만.”


희수가 천천히 재이의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재이의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희수는 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재이의 코를 닦아주었다. 손수건이 부드럽게 재이의 코를 훔쳤다. 재이는 그 손수건을 느끼며 희수가 기억을 잃기 전과 똑같은 희수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똑같은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재이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좀 더 자세히 말해줘.”


재이는 천천히 희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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