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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몬 Oct 16. 2024

15 이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미안합니다.”


희수가 재이의 친구라는 사실을 밝히자마자 시간강사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수업이 끝나 강의실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던 학생들 무리 중 몇 명이 걸음을 멈춘 채 희수와 시간강사를 바라보았다. 시간강사의 팔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눈치를 살필 수 없을 만큼 지친 사람처럼 시간강사가 축 늘어진 팔을 흔들었다. 시간강사에게 따져 묻고 싶은 것이 많았던 희수는 갑작스러운 그의 반응에 말문이 막혀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했다.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이윽고 시간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르지 않은 수염이 삐죽삐죽 얼굴에 솟아 있었다. 희수가 미쳐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시간강사는 서둘러 허리를 틀어 걷기 시작했다. 희수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시간강사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듬지 않아 덥수룩한 시간강사의 뒷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곧 인문관 카페에 자리 잡았다. 시간강사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일 것 같은 기둥 뒤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음료를 시키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희수는 그에게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시간강사는 의자에 주저앉은 채 초조한지 다리를 떨었다. 시간강사의 다리가 책상에 마주 닫히면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희수의 귀를 울렸다. 희수가 책상이 흔들리지 않게 힘을 주어 책상을 붙잡자, 시간강사는 손깍지를 풀고 고개를 들어 희수의 얼굴을 살폈다. 천천히, 책상의 떨림이 멎었다.  


“능력이요.”


희수가 침을 삼켰다.  


“5번 이상 쓴 것 맞죠?” 

“…….” 

“총 몇 번 쓰셨어요?” 

“…….” 

“이 일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 


시간강사는 다시 희수에게서 눈을 돌려 책상 한 가운데에 시선을 고정했다. 희수는 마음이 끓는 것 같았다. 몹시 유치한 일이었다. 자신의 책임에서 눈을 돌린 채 책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어른이라니. 필히 곤욕을 치르고 있을 재이의 얼굴이 둥그렇게 희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재이는 도통 잘 울지 않는 애였지만, 지금쯤 울고있을 것 같기도 했다. 괜찮을 거야. 그런 하나도 진실일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희수가 기억을 잃어버렸던 그 때처럼 그렇게 소리도 내지 않고 울고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다 저 교수 때문이다.  


어느 새 희수의 생각은 점프에 점프를 거듭하여 하나의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희수의 마음에 파도가 쳤다. 당장 시간강사의 어깨를 붙잡고 경찰에 신고했는지, 도대체 몇 명에게나 능력을 썼는지 다그치고 싶었다.  


“기억을 잃어버렸어요.” 


그 순간 시간강사가 입을 뗐다. 희수가 멈칫하며 시간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툭 하고 건드리면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학생이 예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썼어요. 그 덕에 논문도 많이 쓰고 예전보다는 유명해지게 되었죠. 그러다가 사고가 났어요. 그 사고 때문에 저에게 아주 소중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춘 채 다시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제 아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강사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꿈지락 거렸다. 손가락은 꿈지락 거리다가 어느새 반대편 다른 손을 새게 꼬집고 있었다. 희수는 고개를 숙인 시간강사의 얼굴을 살폈다. 어느새 그는 한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세월의 풍파에 패배 선언을 해버린 노인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니요?” 

“아이와 함께한 2년 남짓의 기억이 제 머릿속에 없습니다.” 

“…….” 

“경찰이 연락이 왔습니다. 나를 찾아내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겠죠. 한두 명에게 악수를 한 것도 아니니까요. 가장 처음 능력을 얻을 때 악수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더군요. 말해주면 이때까지 지식을 훔친 죄를 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기억을 돌려주겠다면서요.” 

“아직 아무도 기억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잖아요.” 

“그렇죠.” 


책상 위로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시간강사는 이제 거의 땅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 바보 같은 거짓말을 믿고 싶었나봅니다. 나는.” 


희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다그치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지만, 전의를 상실한 대상을 탓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강사는 희수 앞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희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말없이 시간강사에게 건넸다. 시간강사는 손수건을 들고 눈물을 닦은 후 코를 팽 하는 소리가 나도록 세게 풀었다.  


“아이 일은 안 되었어요. 그렇지만.” 


팽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크게 시간강사 코에서 났다.  


“재이가 덕분에 잡혀갔어요. 어제 밤에요.” 


시간강사가 멈칫 하더니 눅눅하게 젖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안경이 한 쪽으로 기울어져 우스꽝스럽게 씌워져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한 그대로에요. 라디오를 들어보니 이 모든 일의 주동자로 몰린 모양이에요. 어제 밤에 모르는 아저씨들이 왔어요. 그 사람들이 재이 손에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갔어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라뇨. 이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으려고 여기에 왔어요.” 

“…….” 

“재이는 딱 세 번밖에 능력을 안 썼어요. 그마저도 한 번은 저에게 기억을 돌려주기 위해 쓴 거였고요.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교수님도 책임이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쓴 사람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면, 교수님이 재이보다는 책임이 큰 게 당연하잖아요. 심지어 재이를 경찰에 불어버렸으면서.” 

희수가 팔짱을 끼고 시간강사를 바라봤다. 시간강사는 아직까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듯 입을 살짝 벌리고 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수는 그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하면 좋겠습니까.” 

“교수님 대신 재이가 처벌받고, 신상 공개가 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건 좀 부당해요.” 

“…….” 

“그간 있었던 일을 밝혀줘요. 솔직하게요. 몇 명한테 능력을 썼는지 밝히고, 재이가 잘못이 없다고 변호를 해줘요.” 


시간강사는 고민에 빠진 듯 눈을 감았다. 그들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희수는 참을성 있게 시간강사의 답변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시간을 조금 주시겠습니까?” 


이윽고 시간강사가 입을 열었다. 희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37시간 남았어요.” 

“무엇이요?”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그게 심의될 거예요. 긴급체포 후 48시간 내에 그 절차가 진행된다고 해요. 저도 오면서 인터넷으로 봤어요. 재이에겐 정말 시간이 별로 안 남았어요.” 


희수가 고개를 숙였다.  


“재이는 교수님의 학생이잖아요.” 


시간강사는 그 말에 대답하기 곤란한지, 아니면 희수가 울 것 같아서인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강사는 힘없이 일어나 축 처진 팔을 끌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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