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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Nov 03. 2019

존재감에 타격을 입을 때, 글취를 남겨

무용한 일상에서 유용한 글쓰기

한 남학생이 있다. 이 아이는 참 묘하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자꾸만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편안하고 거부감 없는 방법으로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어, 나는 형을 참 좋아해요!, 누나, 내가 누나 엄청 좋아하잖아요’ 하며 나이 불문하고 모두에게 친밀감을 표현한다. 이렇게 사랑이 넘쳐서일까. 이 남학생은 학원에 오면, 여기서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하고, 저기서 마주친 사람과 한동안 안부를 나누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개인 연습은 대체로...안 하는 편이다. 


말이 많은 아이로군.      

시끄러운 게 싫고 적막과 평화가 좋은 나에게 이 아이는 요주의 인물이다. 늘 사람을 몰고 다니니까. 그것도 시끌벅적 소란스럽게. (아니, 이런 내가 어떻게 음악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거지?) 연습실 사용 규칙은 한 연습실에 한 명만 들어가서 개인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이 남학생이 대여섯 명의 학생들과 한 연습실에 들어가 있는 현장을 나에게 걸렸다. 그런데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상태를 유지한다. 나는 괘심하다며 화를 냈다.     


사실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에게 크게 피해가 가는 일이 아니라면, 또는 내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화까지 날 필요는 없을 텐데, 나는 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애들을 보면 발끈 화가 나는 걸까.     


괘심하다 너!

선생님 죄송해요. 

실망이야!

죄송해요. 그래도 저는 쌤이 좋아요. 

.....(말문이 막힘) 뭐야 마음 약해지게.

죄송해요.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걸까. 내가 졌다. KO패. 

미워할 수 없는 그 남학생이 돌아가고 난 뒤, 나는 아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마다 내가 발끈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규칙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일까. 애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싫은 걸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무시당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나. 내가 화가 나는 포인트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내가 여기 버젓이 앉아 있는데 내 눈치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규칙을 어기고, 모른 척하는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      


여기서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누군가 학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고 또 지나가는 자리다. 그러나 나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은 없다. ‘용건’이 있을 경우 내게 말을 건다.     


결제해주세요.

저 오늘 레슨이 처음인데 어디로 가야 하죠?

저 내일 레슨실 좀 잡아주세요.     


심지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할 때조차, 그들은 핸드폰을 보면서, 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서 ‘안녕하세요’. 그러면 나는 덤덤한 척 그것을 받는다. ‘네, 안녕하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존재감에 타격을 입는다.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는 곳이지만 ‘만나는’ 사람은 없다. 

지나치는 무용한 풍경이 된 느낌이다.      

나는 그곳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으면서 조금씩 내가 지워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한 번씩 발끈한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내가 보이지 않느냐고, 왜 내 앞에서 규칙을 어기느냐고.     

그래서 오늘 내가 그 남학생에게 화를 낸 것은 정당하지 못했다.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떠맡긴 것이다. ‘너 때문에 그런 거야,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이렇게 뭔가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을 반복하며 혼란스러워질 때 내가 쓴 글들이 도움이 될까.  글에도 냄새가 있다. 그 사람이 자주 먹는 음식, 자주 가는 곳, 반복하는 행동 등이 그 사람만의 채취를 만들어 내듯이 한 사람이 조각조각 써 놓은 글을 모아 읽어보면 그 사람만의 글취(?)가 난다. 글을 쓰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얽혀 있는, 그 사람의 일부분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어떤 순간을, 어떤 감정을 기록하는 게 무슨 유용한 짓인가 싶지만 언젠가 이렇게 조각조각 모아 놓은 나의 글에서는 분명 어떤 글취가 풍길 테고, 그 글취를 통해 지금의 나, 서른한 살의 거북을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먼 훗날에 말이다. 


오늘 쓰는 글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마음이라도 기록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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