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딘가 어긋났을 때.
10월22일의 대화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지금 뭔가 내 안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자기도 모르게 취하는 행동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그게 발성 연습이고, 너는 그게 독서인거지."
내 안에 뭔가가 어긋났다고 느끼는 것. 지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
"물론 그런 일이 자꾸 생기면 안되겠지만."
"난 오히려 주기적으로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무리 정교하고 잘 만든 악기라도 주기별로 조율을 해주잖아? 사람도 오래 어떤 일을 하다보면 한번씩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 오는 거야.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거지. 어라, 지금 소리가 좀 이상한데? 하고."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조금 어긋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발성도 함께 틀어진다고 했다. 10여년 가까이 음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전혀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발성 연습을 하고,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좋은 상태의 소리를 내기 위해 예민하게 자신의 몸에, 그리고 소리에 집중한다.
나는 책을 읽는다. 책 속으로 파고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다.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다 읽는 것은 아니고, 그 시기마다 본능적으로 끌어당기는 류의 책들을 찿아 끊임없이 읽는다. 나의 무너진 부분을 채워주고 삶의 텐션감을 줄 수 있는 책들을 마음에 따라 선택한다. 마음은 안다. 내게 어떤 책들이 필요한지. 그래서 마음의 선택을 따른다.
그러다보면 어딘가로 치우쳤던 마음이 다시 균형을 잡기 시작하고 안정기가 찾아온다.
다시 내 음을 내며 살아간다. 가장 듣기 좋은, 가장 나다운.
요즘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것에 대한 책들에 마음이 끌린다.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보다,
거칠고 고통스러운 삶의 맨모습을 들여다보는 책들이 좋다.
그 중 하나로 '인간의 굴레에서' 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의 '달과 6펜스'라는 책을 감명깊게 읽어서 특히 기대되었던 책이고, 역시나. 오랜만에 책을 참 맛있게 읽었다. 1,2권으로 되어 있고 꽤 두껍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날의 언어와, 상스럽다고도 할 수 있을 표현방법이 그대로 담겨 있다. 글에서도 세월이 느껴지고 시간감이 느껴진다. 좋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온다. 꾸밈없이 추하고 고상하고 나약한 모습 그대로. 나는 책을 통해 사람을 이해한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필립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 것이 분명한 한 여성(밀드레드)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부분이다. 한 쪽에는 필립을 온전하게 만들어줄 따뜻하고 멋진 또 다른 여성(노라)이 있다. 필립은 그녀와 있으면 행복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 필립을 사랑하는 노라
"그녀는 필립이 좋았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온갖 재미있는 인생사를 놓고 필립이 함께 웃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립은 필립이었기 때문에 좋았다. 그녀는 다른 식으로도 그를 다루었다. 그가 난폭하게 구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그가 화를 내면 웃었다. 그녀는 그를 더 세련된 사람으로 만들었다."
# 필립이 사랑하는 밀드레드
"분별이 있는 남자라면 마땅히 노라를 택하리라. 밀드레드와 함께 있는 것보다 노라가 그를 훨씬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라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음에 비해, 밀드레드에게는 그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 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지고 싶은 것이다"
불행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당신이어야 해. 라는 필립의 단호한 열정.
결국 밀드레드로 인해 필립의 삶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어느 정도 파괴된다.
시간이 지나 필립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힘써 삶을 재건한다.
그 모든 선택과 경험을 통해 사람은 빚어진다. 그렇게 지금의 모습이 된다.
조율하는 시간. 내게 필요한 책이었다. 맛있게 잘 읽었다.
#독서 #조율 #인간의굴레에서 #서머싯몸 #방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