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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Nov 03. 2021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를 빼앗기지 않기로 해요

하마터면 뺏길 뻔 했어

     

이 햇살! 이 타이밍! 

오늘은 날씨가 드라마틱하게 좋았다. 

적당히 찬 기운과 따사로운 햇살이 어우러지는 그 타이밍. 햇살이 온 세상을 비췄다.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점심을 먹고는 학교 앞 뒷산을 산책했다. 멀리 걸어가서 커피를 사 왔다. 전혀 수고스럽지 않았다.      

산책을 다녀와서, 평소 커피 취양이 비슷한 동료 선생님에게 커피를 좀 나눠줄지 물었는데 괜찮다고 했다. 그걸 듣고 있던 얌체 선생님이 옆에서 ‘그럼 나 줘.’ 하는 바람에 그에게 커피를 나눠 주었다. 


(어제는 내가 커피를 사러 나가는 타이밍에 '뭐 사러 가는데?'하고 물어봐서 '커피요. 사다 드릴까요?' '응. 나는 카라멜 마끼야또.'하는 바람에 커피를 사드렸었다.)  

   

그래. 커피는 얼마든지 나눠줄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남에게 뺏기지 않고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자아상이 부정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별로 좋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민폐를 끼치는 것 같고. 환영받을 수 없을 것 같다.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화요일 상담 때, 상담 선생님이 그 부정적인 자아상이 결국 나 자신이 되어 버린다고 얘기해 주셨다.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솜털처럼 가벼운 농담만 입에 올리는 새침한 남자 대리가 있었다.

자신은 늘 사람들을 짓궂게 놀리는데, 누군가 자신을 놀려 웃음거리로 만들면 금세 얼굴이 새빨개지며 당황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거북 씨는 왜 이렇게 어두워? 거북 씨랑 얘기하면 우울해져.’

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때 상처받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랜 경력을 포기하고 다른 직종에 신입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한 직후였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환경 속에서 나는 처음부터 하나 하나 배워가며 조금은 의기소침 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조직은 천박했다. 이런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말보다 정확한 말이 없다. 고르고 골라도 이 말 밖에 없다. 천박했다. (그들 중엔 물론 사려 깊고 좋은 성품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성마르고, 작은 가십거리에 몰려들어 이런 저런 말들을 정신없이 뱉어냈다. 무리지어 다니는 여자들 사이에서는 소란스럽고 못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아무튼 나는, 남자 대리의 그 말을 듣고 더 우울한 사람이 되어 갔다. 더욱 말수를 줄이고 사람들에게 속내를 들키지 않았다. 관계가 불편해서 혼자 다니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부정적인 말에,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판단에 나 자신을 뺏기지 말았어야 했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이 나를 평가하는 언어는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얘기를 잘 들어줘서 좋다’

‘같이 있으면 안정감이 든다’

‘목소리가 매력 있다’

‘따뜻한 사람이다’

‘사려깊다’

‘섬세하게 주변을 챙긴다’

이런 긍정의 언어들이 많다. 


이를 다 잊고 ‘우울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부정 언어에 내 마음을 빼앗겨 위축된 시간을 보냈던 것이 후회가 된다. 나도 말해줄 수 있어야 했다.


'저도 대리님이랑 얘기하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아서. 그래서 그런가봐요.'

      

그런 순간들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물론 나를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뜨끔한 말이라면

귀담아 듣고 나를 직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그 말에 

수시로 나를 빼앗기며,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을 내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얌체 선생님이 오전에는 내게

‘거북 쌤 어쩐지~ 약간 사기꾼 상이야. 그렇게 생겼어.’ 라고 했다.     


농담처럼 늘 ‘아무 말’을 가볍게 날리는 사람이라 이것 또한 별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아무 말이나 농담처럼 할 거면 듣는 사람도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좋겠는데, 

이 사람은 늘 이런 식이다. 웃으며 얘기하지만 텍스트 자체가 부정적이다.     

사기꾼 같이 생겼다니. 나는 그 말에 나를 뺏기기 싫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 말’이나 하듯이 가볍게 받아쳤다.      

‘쌤.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마상이에요.’

‘아 그래? 마상하지 말고.. 이거 먹어.’ (먹을 것을 건네줌)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 내 모습을 알아봐주고, 스스로를 긍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내 편이 되어 나를 지켜주는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내 마음은 너무 연약하고 모든 자극을 그대로 흡수하기에.          

때론 그것들이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버리기에. 



세상을 살며. 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두에게.

특히 마음이 연약하고 아파서 작은 지진에도 모든 게 무너지고 마는 사람들에게.

어제보다 오늘 더 강해졌기를 바라며. 당신의 내일을 응원한다.          

(사랑을 담아,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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