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를 닮은 남자의 외로움에 대하여
내가 다니던 드럼 연습실은 조금 특이한 분위기가 있었다.
드럼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여 드럼도 치고,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날씨 좋은 날엔 카페에 가기도 한다. ‘학원’이라기보다는 ‘동호회’에 가깝달까. 우리는 이곳을 신촌클럽이라고 부른다. 신촌클럽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어르신으로 대해야 할 대상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 이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모든 관계가 수평적이다. 드럼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묶여 각자의 개성이 존중된다.
회원 중에는 옆얼굴이 이문세를 닮은,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회색빛 풍성한 머리칼과, 서글서글한 웃음이 걸려 있는 눈매를 가진 그는 청바지에 빨간 스니커즈를 즐겨 신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젊을 수도, 어떠면 더 나이가 들었을 수도 있다. 대충 나의 아버지뻘 되는 것으로 추측되는 이문세를 닮은 남자는 늘 내게 ‘거북씨’라고 부르며 높임말을 쓴다. 칭찬을 잘 해준다. 나이 든 사람의 거드름을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태도가 공손하다.
“거북씨 작가라고 했죠? 그러면 간접경험도 중요하잖아요. 혹시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내가 안 해본 경험이 없어요. 그리고 나는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나와 이문세를 닮은 남자, 마르고 젊은 청년, 그리고 클럽 운영자인 언니와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갔다. 그리고 이문세를 닮은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요즘 집에 있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하나씩 내다 팔고 있다고 했다.
“외로워서요. 외로워서 안 되겠어요. 영국에 가면 딸네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서 살려고 준비 중이에요.”
“아내분이랑 함께 있으시잖아요?”
“아내가 있어도 외로워요. 우리는 오래 같이 살았어요. 이제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에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고, 그래서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영국에 가면 딸도 있고 손자도 있으니까. 그게 사람 사는 거죠.”
그건 어떤 종류의 외로움일까. 평생을 살아온 나라, 보금자리, 익숙한 환경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날아가게 만드는, 그 떨쳐내고픈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부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함께 하지만, 이제는 둘이 하나가 되어버려서 느낀다는 그 외로움은 뭘까.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가 얘기하는 내내 나는 조용히 앉아 그의 외로움을 짐작해 보고자 했다.
나는 외로울 때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결이 맞는 사람과 접촉하고 감정을 나누기를 원한다. 나의 빈 공간을 내어주고 너의 빈 공간을 받아들이며,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감정 속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그렇게 함께하고 또 함께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우리의 온기가 한 사람분의 온기가 되고, 우리의 행복이 한 사람분의 행복이 될 때쯤. 나는 이문세를 닮은 그 남자를 떠올리게 될까. 아, 이런 외로움이었구나, 둘이 한 사람이 되어버려 느낀다는 그 외로움. 이것이구나. 그렇게 깨달을 날이 올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