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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Dec 07. 2023

동화 속 허구요정이라 해도 괜찮아

어린아이가 되어 봅시다.

 '12월 6일 브라이언 크리스마스 클래스 같이 가지 않을래?'

2주 전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대전에 브라이언이 온단다. MZ세대에게는 익숙지 않을, 2000년대 초반 좋아하는 이들은 꽤나 좋아했던 그룹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멤버 브라이언이다. 내 절친은 학창 시절 브라이언의 팬이었는데,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열정 가득했던 옛 추억이 떠오르나 보다.


  대전 모 백화점에서 연말마다 일일 특강을 여는 브라이언의 강좌에 2년 전에도 참여했었던 그녀였다. 올해는 사심 가득한 신청을 나와 같이 하고 싶어 했다. 반면 브라이언에 큰 관심도 없고 매년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는 데에도 미적지근한 나였다. 5분 간의 짧은 고민 끝에 친구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시기의 백화점이라니, 얼마나 포근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을 해 놓았겠는가. 옆에서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종달새 두 마리와 감성 부족한 남편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다. 어른 여자 두 명이 연말 분위기를 여유롭게 만끽하며 눈 내리는 유리병 향초를 만들어 볼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었다.


 백화점에 들어선 순간, 곳곳에 놓인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들이 잘 차려진 밥상 위 먹음직스러운 반찬 같았다. 반짝거렸다. 뻔하지만 예뻤다. 눈으로 호강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백화점은 대부분의 물건이 고가라는 부담감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꼭 무엇인가를 사지 않아도 기분이 울적할 때 한 번쯤은 나들이하듯 들리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세련된 조명을 받은 인테리어를 눈으로 훑으며 구경한다. 낮게 깔린 배경 음악을 감상하며 돌아다닌다. 백화점에서 풍겨지는 은은한 향을 맡는다. 이 단순한 행동들을 하면 오감이 호강하는 기분이 든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특히 대한민국처럼 백화점이 그 자체로 예술적인 박물관 같은 곳을 찾기 힘들다. 오늘 같은 평일, 오후 시간대는 사람도 북적대지 않고 백화점의 우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친구야, 나 오늘 만약 마트에서 하는 일일 강좌였다면 가지 않았을지도. 오해하실지도 모르니 백화점과 마트를 비교하며 마트를 평가절하할 의도는 없다. 마트는 친근하고 푸근한, 백화점이 갖지 못한 편안한 친구 같은 매력이 존재한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한 파란색 셔츠를 입은 브라이언 강사님이 눈에 띄었다.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싶었다. 조막만 한 얼굴, 오뚝한 콧날, 초롱초롱한 눈망울, 눈에 띄는 패션 감각까지 그는 과연 유명인사였다. 나의 친구는 팬심을 발휘해 대전의 명물인 성심당 빵까지 선물했다. 인증사진을 찍고,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향초를 만들었다. 만드는 방법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게 대수랴. 오늘은 오감이 호강한 날인데.


집에 와서 향초를 켜고 어둠 속에 불빛을 쳐다보고 있다. 더욱 연말이 다가온 것이 느껴진다. 크리스마스는 연말에 있어 더 빛을 발하는 듯하다. 한 해가 가는 아쉬움, 다가올 새로운 해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등에 업은 크리스마스는 확실히 '연말 특수 효과'를 발휘한다.


 영화 <캡틴 판타스틱>에서 캡틴이자 아버지는 말한다. 노엄 촘스키를 기념하는 대신 다른 평범한 가정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자는 둘째 아들의 말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자고? 인권과 지성을 고양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도주의자 대신에 동화 속 허구 요정을 찬양하자는 거야?"

라고.  


  누군가는 크리스마스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종교적 색깔을 지닌 공휴일에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떠들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런 편이었다. 결국 쓰레기가 된다며 끝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트리를 주문했고, 종달새들과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하며 꾸며볼 생각에 설레었다. 올해는 왠지 모르게 성탄절을 기다리고, 성탄절에 설레고 싶다. 뻔하고 식상해도, 이런 감정과 행위로 인해 나의 12월이 행복해진다면 말이다.

 

 어린아이가 되어보는 12월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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