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면 안 되겠니?
인자강과의 첫 만남이 2012년 10월 즈음이었고, 우리는 만남을 지속하게 되어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친구가 다음 해 1월에 인도를 같이 여행하자는 제안을 했고, 방학동안 할 일도 없는 나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용감하고 무모한 결정이었다. 신비의 나라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실상을 잘 알아보지 않았다. 친구가 가자고 하니 청춘에 못해볼 게 무엇이냐며 덜컥 가겠다고 한 것이다.
친구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숙소를 예매하며 한창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인자강에게 1월에 친구 하늘이와 한 달간 인도를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좌절하는 것이 아닌가. 예상 못한 반응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한 달 동안이나 서로 얼굴을 못 본 다는 사실에 울적해졌다는 것이다. 사귀면서도 어느 정도독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그동안 연애하느라 못 봤던 친구들을 실컷 만나거나, 매일 같이 영화를 봐도 되는데. 그에게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타지의 닭장 같은 기숙사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한창 보고 싶은 연애 상대가 갑자기 한 달 동안이나 외국에 나간다니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가족이 된 지금은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해 주자는 암묵적 합의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그를 한국에 홀로 남겨두고 유유히 인도로 향했다. 인도로 향하는 여정은 갈 때부터 쉽지 않았다. 중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는데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예상치 못하게 중국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시작이 좋지 않아서일까, 인도에 도착해서는 온갖 험난한 일을 다 겼었다. 여자 단 둘이서만 그 나라에 갔다는 사실 자체가 도전이고 모험이자 고난이었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길거리로 나갔다. 잠시 정차할 때마다 차창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부랑자들이 무수히 많다.
도로가 아수라장이다. 횡단보도는 물론이고 신호등도 거의 보지 못했다.
사기꾼을 만나 하루 온종일 강제 체험과 견학을 당하고는 마지막에 돈을 지불하도록 강요받았다.
저녁 기차에서 우리가 쓰는 단독 칸에 무단 침입하려는 남자를 간신히 막았다.
코끼리가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지나가다가 큰일을 본다.
호텔 지배인이 아무렇지 않게 내 엉덩이를 만졌다.
지하철에 여성 칸과 남성 칸이 따로 있다. 여성 칸이 미어터지는 데도 여자들은 기어코 그곳으로만 들어간다. 우리도 물론 그랬다.
지저분한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친구와 여행 막판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순수하고 귀여운 소녀를 만나 한국 쌔쌔쌔를 가르쳐 주었다.
한국 사람을 연예인 보듯이 하는 현지인들에게 같이 사진 찍자는 요청을 수십 번 받았다.
10년도 지난 이야기라 이제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다시 가 보고 싶지는 않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인도 여행 중 한국에 있는 인자강에게 썼던 엽서를 발견했다.
"카톡 안 돼서 많이 걱정하고 있지? 미안해."라는 문구가 있었다. 여자친구가 한국을 비운 동안 강하디 강한 인자강이 얼마나 울적해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는 카톡 연락이 될 때마다 한숨을 쉬고 말이 없었다. 내가 미안할 것까지는 없는데. 연락이 안 되는 게 내 잘못도 아닌데. 그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나의 필사적 노력이었다.
마침내 나와 하늘이는 한국에 무사 귀환 했고, 인자강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행복감에 한시라도 나를 빨리 보고 싶었나 보다.
그로부터 3년 후, 결혼 얘기가 오고 갈 때였다. 동생이 있는 멕시코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왜 그렇게 위험한 나라에 가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냐며 인자강이 결사반대를 했다. 결국 가지 못했다. 결혼 후 장기 휴가를 받고 같이 가자는 약속을 했지만 금세 쌍둥이를 낳고 가정을 일구느라 여태껏 못 가봤다. 언젠가는 혼자가 아닌 넷이서 인도나 멕시코 같은 모험의 나라를 미친 척하고 여행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