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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루돌프가 끌어주는 썰매

산타가 된 기분이었어

by 아이두

밤사이 눈이 내렸다. 오늘은 눈싸움을 할 만 하지만 그제까지만 해도 쌓인 눈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얇게 쌓인 눈이라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나 보다.

"영어학원 갔다 와서 눈싸움 하자, 엄마."

눈싸움을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눈이 거의 다 녹아버렸는데? 기껏해야 화단이나 풀숲 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가장자리에 겨우 남아있었다. 우리 말고는 나와서 눈으로 노는 사람도 없었다.


야외활동을 즐겨하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이렇게 자발적으로 제안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응해주자, 하는 엄마의 사명감으로 방한용품을 꺼냈다. 아이들의 부츠, 방수 바지, 부츠, 장갑, 모자, 마스크. 나도 하의를 두 겹 껴입고 목도리를 귀까지 올렸다. 무장을 하고 나갔더니 3층 위에 사는 아주머니가 안쓰럽게 웃음 지으며

"안 추워요? 역시 젊으니 다르네. 이런 건 아빠랑 해야죠."라 하신다.


늘 느끼지만 아이들은 '이런 게 재밌을까?'싶게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듯하다. 아파트 청소해 주시는 분이 치워둔, 구석에 있는 눈을 모아 날리면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엄마가 눈 맞는 모습을 보며 깔깔댄다. 덕분에 나도 눈가루가 공중에 날리는 모습을 보며 추운 겨울의 묘미를 느낀다. 우중충한 날씨와 대비대는 하얀 눈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는 풀 숲 위로 이동하여 눈빙수도 만들었다. 갈색으로 바래진 솔잎을 맨 위에 꽂고 눈 속에 파묻힌 낙엽을 꺼내어 빙수 장식으로 얹어 주었다. 영하의 날씨를 잊은 듯 아이들은 눈놀이가 끝나고 빵가게로 달려가 눈꽃빙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못해 더웠나 보다.


서로 썰매 끌어주는 아이들

여세를 몰아 첫째가 썰매를 타자고 외쳤다. 그래, 제대로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집으로 다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현관문이 열려 있던 것이 아닌가. 슬리퍼가 문틈에 끼워져 있었다. 오랜만의 눈 놀이에 세 명 모두 흥분했나 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잘 닫아놓고 나왔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발견한 둘째가 여기에서 마음 편하게 타자고 하더라. 엄마가 한 명을 밀어주면 다른 한 명은 쫓아오고,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끌어주기도 하더니 막판에는 엄마를 썰매에 태우고 둘이서 끌어주었다. 썰매를 향해 뒤돌아보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마치 아기 루돌프 두 마리 같았다.

엄마를 끌어주며 신나하는 루돌프 두 마리



밤사이 눈이 내렸고 아침까지 잔잔하게 내리고 있었다. 날이 춥고 길이 미끄러워 "엄마가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줄까?" 했는데 싫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고 싶단다. 눈이 쌓인 흰 거리를 보고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를 듣고 신발로 눈을 밟으며 가고 싶단다. 학교 가는 길에 마주친 다른 아이들이 화단에 쌓인 눈을 굳이 한번 살짝 만지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만지면 안 될 것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것처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부동산 사장님이 문턱에 쌓인 눈을 비질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파트 청소해 주시는 분이 공동현관 계단과 경사길에 쌓인 눈을 쓰레받기로 털어내는 모습도. 문득 우리는 눈에 대한 설레는 기분을 언제 잊어버리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나에게 다짐을 단단히 받아내고 학교로 향했다. 영어학원 갔다 와서 수학 문제집 빨리 풀고 눈 놀이를 하기로. 그 사이 눈이 녹지는 않을까 걱정하길래 날이 추워서 절대 녹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오늘도 옷을 껴입고, 꽁꽁 싸매고 신명 나게 한판 놀고 와야겠다. 언제 잊어버렸는지 설레는 기분을 되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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