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기
지난 글에서는 컨셉이 분명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고,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은 ‘스케치’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장이 엉망이어도, 그렇게 적어 내려 간 자기소개서는 우리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글입니다. 확실한 컨셉을 가진 자기소개서를 쓰는 첫 단계입니다. 만약,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는 기업의 질문이라면 그 회사는 여러분의 길이 아닙니다. 과감하게 포기하세요. 직무, 업종, 제품, 나의 경험 등에서 단 하나라도 힌트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여차저차 서류를 통과한다 해도 이후의 전형에서 고통스럽습니다.
조금만 묵혀뒀다가 다시 읽어보세요.
첫 단추는 잘 채웠고, 그럼 주르륵 적어 내려간 글 그대로 제출하면 되나요?라고 물으시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립니다. 묵혀둬야 합니다. 제출일이 정해져 있다면 보통 마감 3-4일 전까지는 우선은 스케치를 완성해 두고 뜸을 들여야 합니다. 난을 치는 선비들처럼 일필휘지로 단번에 글을 완성하는 분들도 간혹 있으시지만, 일반적으로는 내가 쓴 자기소개서는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 다시 읽으면 살짝 민망합니다. 문장의 수준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소개서에서 써야 하는 문장은 ‘간단함’이 최우선입니다. 이건 고치면 되는 일입니다. 보통 작성된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었을 때 나를 민망하게 하는건 ‘나 자신을 대면하는 일‘입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라는 생각이 들면 그나마 다행. ‘나는 정말 쌓아온 것들이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 역시 마주하기 힘듭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면서 얼른 다른 스펙을 더 쌓아야 할 것 같고, 아무튼 뭐라도 더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들기 때문입니다. 둘 중 어떤 방향으로 부끄러움이 뻗어나간다고 해도, 침착해야 합니다.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도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이 “최선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스케치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는 ‘지우기’입니다.
굵은 문장만 남겨두세요.
색을 입히기 전에 스케치의 선을 다듬는 것처럼, 써 내려간 자기소개서도 가지를 쳐야 합니다. 크게는 1) 문장을 가다듬고, 2) 내용을 선별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드렸지만, 문장은 간단해야 합니다. 수많은 스케치 선들 중 자잘한 것들은 싹 지워놓고 굵은 선만 남겨두는 느낌입니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할 말만 딱! 하세요. 제가 문장 수정 컨설팅을 도움드릴 때 지키는 원칙은 [앞뒤 문장은 서로 다르게, 단어 선택은 가능한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 / Synonyms로]입니다.
작문 방법에 대한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자기소개서는 이 원칙을 염두에 두면 적어도 장황한 문장으로 의미 전달에 실패하는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오히려 생각이 깊어지고 문장 간의 연결이 단단해집니다. 만약 지금 작성해 두신 자기소개서에 대한 고민이 중언부언하는 문장이라면, “반복만은 피한다.”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훨씬 읽기 편한 글이 됩니다.
글자수 제한은 활용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문장이 간결해지면 내용들도 자연스럽게 잔가지가 쳐집니다. 자기소개서는 표현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범위들 중 하나는 바로 ‘글자수‘입니다. 대부분의 자기소개서에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만큼만 적으세요.”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적으면 300자, 많으면 2,000자까지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데, 이걸 저는 ‘출제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자수가 적을수록 핵심만 짚어야 하고, 많아질수록 자세하게 적어야 합니다.
쓰고자 하는 대답의 분량을 어림잡는 것은 중요합니다. 에피소드를 하나를 확장해서 표현할지 아니면 두 개를 이어서 보여줄지, 사건의 결과를 강조할지 아니면 서사를 드러낼지, 나의 캐릭터가 돋보이게 해야 할지 아니면 주변 환경이 더 표현되어야 할지 결정하는 건 제시되는 글자수에 따라 다릅니다. 500자~700자 정도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문항에서는 보통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용의 범위를 확정하고, 그것을 담는 문장이 간결하다면, ‘지우기’ 단계는 끝이 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컨셉화의 다음 단계인 ‘색칠하기’ 이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자기소개서가 다른 지원자들과 ‘한 끗 승부’를 펼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3.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1) - 스케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