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용 에피소드
이전 세 편의 글을 통해 컨셉이 뚜렷한 자기소개서 작성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요약하면 날 것 그대로의 생각들이 모이고, 굵은 문장으로 표현되어, 질문에 적합한 대답으로 이어진다면 채용 담당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나만의 자소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정도의 수고로움만 해낼 수 있다면, 내 힘으로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자기소개서 한 편 정도는 거뜬히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두근거리는 망설임으로 에피소드를 골라보세요.
꺼낼 수 있는 스토리의 범위는 정해져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는 일은 원래 쉽지 않습니다. 잘 보여야 하는 독자가 명확한 상황에서 아무리 용기 있는 지원자라 해도 쉽게 아무 이야기나 하지 못해요. 이제 막 마음을 알아보고 관계를 시작하려는 ‘썸 타는’ 단계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지 못하니까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긴장하는 그 망설임이 여러분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 느끼는 어려움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자기소개서에서 써먹을 수 있는 스토리는 범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적합한 에피소드’를 골라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답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00에서의 인턴 기간 동안 프로모션 활동을 실행해서 ##했던 구매율을 ~~% 상승시켰습니다.”와 같은 성과 중심의 에피소드에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해도 성공해도 괜찮습니다. 사건이 크건 작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주인공이면서 겪어낸 구체적인 과정이 있고, 그 시간의 나의 감정이 또렷하게 남아있다면 우선은 ‘선택 가능 범위’ 안에 들어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인상적인 기억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이어도 좋고, 학부 시절 강의 팀플 사례도 좋습니다. 어렵게 얻어낸 인턴 경험에는 힘들었던 만큼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이직 준비하시는 분들한테 현직에서 수행한 업무들은 이미 자랑스러운 커리어입니다. 그 범위 안에 있는 기억들 속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글에 적합한 에피소드는 결국 내가 통과해낸 일인지가 아닌지가 선택의 기준입니다.
내가 통과해낸 이야기는 모두 선택 범위안에 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려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 에피소드 찾기입니다. 간신히 발굴한 경험들은 보통은 아르바이트, 교내 팀플레이 활동 정도입니다. 마케팅/홍보/전략 직무에 지원하려는 분들은 그나마 각종 공모전, 학회 참가 경험이 있어 조금 수월합니다. 그런데 경험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내가 어떻게 저 시간을 거쳐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밀도의 차이 때문입니다. 같은 경험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맛깔나게 써 내려갈 수 있는 분들이 있는 반면, 육하원칙도 정리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쳐온 경험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으로 무엇을 얻어내려고 했었는지 평소에 정리하고 생각해 두는 습관을 들여왔다면 에피소드는 흘러넘칩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상과 약간 다른, 조금이라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경험을 아껴두세요. 어딘가에 정리해서 적어두고 그때의 인상을 남겨두세요. 언젠가는 반드시 써먹게 됩니다.
이미 다 지나갔어도, 그래서 당장 내일 어떤 회사에 이력서를 들이밀어야 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질문 몇 가지만 던져보면 됩니다. 창의력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얘기해 달라고 하면
1) 그냥 내버려 두면 나빠질 수 있는 어떤 대상을 마주한 적이 언제였었지?
2) 만약 방치한 채로 나빠졌다면 나를 포함해서 주변인들이 어떤 안 좋은 상황에 처할 수 있었지?
3) 그 대상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했을 때 나는 어떤 상황이었고, 무슨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지?
4) 바꾸려고 했다면, 악화되지 않게 막으려고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5) 그때 나의 행동은 결국 무엇이었고, 그렇게 해서 드러난 결과는 무엇이었지?
6)’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은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지와 같은 물음들입니다.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을 나열하세요.
어차피 판단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구체적으로 다 읊어보는 겁니다. 이런 문제 정의와 해결 방안 도출 과정이 창의적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전지전능한 채용 담당자님’께 맡기고 나는 최대한 떠오르는 것들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문항에 적절한 에피소드의 서론과 본론, 결론이 모두 완성되어 있을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물어보는 문항마다 질문의 구체적인 모습이 다를 뿐,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스스로를 조사하는 과정을 거치면 내가 겪은 일을 나보다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답은 항상 안에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자기소개서에 적합한 에피소드 찾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나를 뚫고 지나간 경험들이라면, 그리고 그 경험을 밀도 있게 남겨놨다면 그 흔적들은 에피소드가 될 수 있습니다. 채용 담당자와의 “썸”을 즐기고 싶으시다면, 꺼내야 할 말들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에피소드를 발굴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들이 무엇인지 문항의 종류별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장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3.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1) - 스케치하기
4.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2) - 지우기
5.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3) - 색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