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계획
앞선 글에서는 [지원 동기] 유형 문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 빈칸은 스스로 채워보세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술적인 유려함보다는 마음의 울림이 더 커야 하는 문항입니다. 답변하기 가장 고통스럽다는 건, 결국 고민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어려움을 회피하고 급하게 작성된 자소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지는 '덜 매력적인' 글이 됩니다. 해야 할 고민은 해냅시다. 만약 어떤 실마리도 잡히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도 됩니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직무와 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회사를 붙들고 있지 마세요. 그래도 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물어볼게 더 남아있나 싶으시겠지만, [지원 동기] 문항의 단짝 [향후 계획]이 남아있습니다. [입사 후 포부]라고도 불리는 이 문항은 지원하는 회사에서의 미래를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너는 내가 왜 좋니”에도 간신히 대답했건만, 이제 "그래서 나랑 사귀면 앞으로 결혼은 언제쯤 할 건지 지금 말해주면 좋겠어"까지 물어보는 느낌이랄까. 지독한 질문입니다. 당장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도 모르겠는 게 우리 인생 아니겠습니까. 계획대로 살아온 적이 있나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와 함께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는 [향후 계획] 역시 단골 질문입니다.
[향후 계획]은 보통 이런 문항들입니다.
Q. 우리 회사에 입사후 하고 싶은 업무와 그로 인해 달성하려는 목표를 말씀해 주세요.
Q. 우리 회사에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지원자는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세요.
Q. 지원 분야의 주요 사업 중 지원자 본인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기술해 주세요.
Q.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단기, 중기, 장기로 단계를 나누어 기술해 주세요.
Q.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 회사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기술해 주십시오.
우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향후 계획] 문항이 사실 결혼 계획을 물어보는 질문이 아닌 것처럼, 기업도 여러분에게 회사를 이끌 비전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는 오히려 단계를 훌쩍 뛰어넘으려는 비상非常적인 인재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위험합니다. 헤드헌팅을 통해 리더급 자리를 제안받으신 분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갓 입사할 신입사원과 일터를 막 옮긴 경력사원에게 회사의 미래를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00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찾아내겠습니다.”라던가 “ㅁㅁ이 시장 내 리더가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써내면 안 됩니다. 거 참, 어떡하려고 이런 노예계약서를 자발적으로 쓰려고 하십니까. 내가 지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미래를 그려보세요. 그 바깥은 위험합니다.
위험한 [향후 계획]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 짊어지려는 책임의 무게가 벌써부터 아찔합니다.
000은 혁신적인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업입니다. 저는 이러한 기업 문화와 비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000에서 함께 일하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000은 에너지 분야에서 주력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사하여 이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도입하여 더욱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또한, 000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업이 지역 사회와 함께 협력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 역시 000에서 일하는 동안 기업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기업과 지역 사회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일에도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000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제가 가진 역량과 열정을 바탕으로 더 큰 도전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기업과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에 기여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000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벌써부터 회사를 책임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 무게는 우리에겐 버겁습니다.
답변에 힘겨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말 그대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함께 일하는 직원의 수는 많아집니다. 그럴수록 일은 쪼개지고 세분화되어 한 사람이 맡는 책임의 크기는 작아집니다. 그래서 대기업, 중견기업 같이 인기가 많은 일터에 도전장을 내미는 지원자일수록 냉정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위의 예시처럼 입사 직후 누구도 여러분에게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도입한 제품'을 만들어내라고 하지 않아요. '기업과 지역 사회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방법'을 급하게 찾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보다 앞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일을 나눠서 할 뿐입니다. 김이 샜나요?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회사도 분명 스스로의 역량 범위를 아는 지원자를 찾으려고 합니다. "당장 결혼은 힘들어도, 너는 결국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단단함을 더 좋아합니다.
바로 지원자 당신이 회사라는 범위 안에서 어떻게 성장할 건지 알려달라는 문항입니다. 이건 좀 해볼 만 승부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어진 조건을 수용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일에 익숙합니다.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잘 쓰기 위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떡잎이 다른 시작이에요. 취업이라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룰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의 단계를 나눠서 행동하는 거니까요. [향후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의 성장도 단계를 나누면 됩니다. 내 계획이 틀려도 됩니다. 포부가 작아 보여도 상관없어요. 성장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앞으로 보여줄 나의 모습은 어떤 과정을 거쳐 뚜렷해질지 보여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 과정 사이사이에 비약이 없는 답변만 해낸다면 이미 훌륭한 지원자입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틀리고 싶지 않아서 내뱉는 무리수보다, 짜임새 있는 담백함이 더 환영받는 무대입니다.
일터에서의 성장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일하는 방식의 구분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이 모여서 조직을 만들고, 함께 일을 할 때 보이는 '업무 스타일'은 보통 3가지 유형입니다. 업종이나 직무를 구분하는 기준하고는 다릅니다. 단지 누군가와 협업을 해야 할 때 사람마다 주로 '어떤 방향으로 일을 바라보는지'를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크게는 1)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사람(밖으로), 2) 이미 있는 갖고 있는 것을 더 잘 운영하는 사람 (안으로), 그리고 3) 그 두 유형 사이에서 잘 조율하는 사람(가운데에서)입니다. 팀을 이루고 일을 한다면 '업무'를 바라보는 관점은 세 가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선 본인이 어떤 유형의 방향으로 주로 나아가려는 사람인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이게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려는 직무와 가려는 회사에서 내가 주로 어떤 방향으로 일하는 사람인지 알아냈다면, 그다음엔 내가 속한 유형에서 1) 더 깊게 파고 들어가고 싶은지(위아래로) 아니면 2) 유형을 바꾸고 역량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지를 (옆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이게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면 '조직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단, “회사”에 지원하는 “자기소개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성법입니다. 그 밖의 인생 계획을 세울 때는 잘 적용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우선 당장 급한 불부터 끕시다.
성장의 시작과 끝지점을 어떤 단계로 연결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세요.
다음은 자신의 업무 스타일(안으로)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성장 계획(위아래로)을 세우신 지원자께서 작성하신 [향후 계획] 예시입니다. 앞으로 어떤 역량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지 않나요?
체계를 만들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맡겨진 업무는 무거웠습니다. 회계 및 경영지원부 업무를 맡았지만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했고,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빈틈을 메우며 채워왔습니다. 결국 회사 업무의 전반적인 흐름과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고 공부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제 저의 안정적인 실력으로 000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000의 해외 진출 확대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확장하는 해외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법인 설립 및 본사와의 재무 시스템 연결은 000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 생산지-판매법인-본사와의 재무 관계는 더욱 긴밀해져야 합니다. 재고와 법인 간 이전 가격을 관리하고, 이를 통한 수익성 구조를 구체화 및 국제 기준에 부합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업무는 해외 매출 확대로 성장 기반을 다져가는 회사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입니다. 깊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 수행을 위해선 다년간 현장에서 일을 해본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90%의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동시에 선진 시장인 미국에서 YoY 104.6%의 매출 성장을 이루어낸 000에는 아쉽게도 대리점을 통한 직접 판매로 매출 관리의 효율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000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그간 쌓아온 ‘시스템 도입’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입니다.
해외 지사에 본사의 시스템을 뿌리내려 왔습니다. 현 근무지의 베트남지사에서 국내 기반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보니, 해당 지사에 적합한 회계 프로그램 사용이 어려워 세금계산서 발행 등을 위해 수기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등 업무상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ERP 프로그램의 세금계산서 발행을 위한 데이터 산출이 엑셀로 대응되도록 기능을 개발하여 통해 해당 지사의 직원들이 조금 더 편리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주요 협업 부서인 미주지사에서도 역시 회계 체계를 수립하고 현지에 맞는 시스템 사용방법을 개발하며 업무 효율성을 꾸준히 개선해 왔습니다.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000의 ERP시스템과 기존 회계 체계를 먼저 배우겠습니다. 더불어 확대된 업무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지식 제고를 위해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겠습니다. 000의 해외지사 회계 시스템의 안정화에는 제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향후 계획] 문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같이 일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주세요. 나의 지금 시작점이 어디이고 바라보는 끝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끝지점까지 가기 위한 단계는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으면 정말로 그렇게 성장하실 거예요.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3.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1) - 스케치하기
4.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2) - 지우기
5. 자기소개서는 컨셉이 분명해야 합니다 (3) - 색칠하기
6.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 - 자소서용 에피소드
7.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2) - 문제 해결 경험
8.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3) - 장점 및 역량
9.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4) - 성장 과정
10. 자기소개서는 에피소드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5) - 지원 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