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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교토에 가야 하는 이유 1

축적한 시간으로 존중받는 도시

by 아이돌리

일본행의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 무엇을 사고, 먹고, 마셔도 15프로 자동할인을 해주던 엔화는 이제 여행 예산을 어림잡아 계산하는 마지노선인 1,000원 위아래로 널뛴다. 엔화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그 수준으로 돌아와 있다. 5프로 정도 할인받고 가기엔 일본 국내 물가는 그다지 싸지 않다. "한국보다 싸서" 갔다 왔다는 말을 꺼내기가 이제는 조금 부끄러워진다. 재난설도 한몫한다. 큰 불행을 여러 번 맞췄다는 만화가의 예측이라지만, 일본 정부는 난카이 대지진에 진지하다. 이 모든 걸 모두 덮어놓고 습관처럼 일본을 가기엔, 상황이 변했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교토가 그래서 놀라웠다. 지금 여기 교토에 바글바글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단지 '기세'로 찾아온 사람들일까? 여전히 강한 달러와 유로를 등에 업고 먼 길을 건너온 서양인들과 애국심이 흘러넘치는 중국인, 인도인 관광객들은 말 그대로 교토에 미쳐있다. 중세 도시를 보며 유럽을 느끼는 우리처럼, 그들은 교토에서 살아남은 목조 건물을 보며 동양을 배운다. 작년 한 해 다녀간 5천만 명의 교토 관광객 중에 외국인 관광객은 천만 명이다. "싸니까", "한 번 가볼까?" 하고 왔다기엔 너무 많다. 교토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여행지다.


교토가 살아남은 건 스스로 쌓아온 시간 덕분이다. 그곳의 시간은 존중받는다. 일본을 패망시킨 핵폭탄 투하 리스트에도 올랐던 교토지만, 그곳이 가진 상징성이 두려워 제외됐다. 하마터면 자신들이 없애려고 했던 공간으로 날아와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미국인들은 과거의 결정에 만족할까. 내가 교토를 찾은 이유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무로 만든 집이 여전히 빽빽한 도시에 더 늦지 않게 가보고 싶었다.


교토는 보통 오사카와 묶어서 다녀온다. 당장 교토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다. 간사이 공항과 연결된 JR West 하루카 열차로 곧장 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래서 오사카를 가려다가 교토도 찍어보고, 교토만 다녀오려다가 오사카도 들려본다. 나는 간사이 공항에서 바로 교토로 향했다. 토요일에 출발해서 화요일에 돌아오는 짧은 일정에 마음이 급했다. 다녀오고서야 알았지만 3박이 가장 적당하다. 2박은 짧고 4박은 길다. 교토는 좋은 도시지만, 반복이 많은 여행지이다. 처음 교토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3박으로 먼저 다녀오고, 아쉬우면 다시 가도 된다.

일본은 여름이 여행 비수기다. 많이 걸어야 하는 교토는 특히 악명높다. 그래도 6월 초까지는 선선하다. 2025년에는 한국도 더위가 조금 늦게 찾아왔고,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교토에는 유난히 어색한 번역 안내문이 많다. 그리고 일본인만 가려낼 수 있는 안내문으로도 유명하다. 여행객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기는 허술함과 수상함일까.
Sakura Terrace The Gallery hotel
39 Higashi Kujo Kamitonoda cho, Minami-ku

짧은 일정에 오후 출발 비행기라 첫날 호텔은 교토역과 가까워야 했다. 여행 대도시답게 역 근처 호텔 선택지는 충분하다. 그중 Sakura Terrace를 고른 이유는 힙해서다. 마나 힙하냐면 지붕이 없다. 기다랗고 높은 ㅁ자 형태인 호텔 건물 가운데에는 중정 같은 공간이 있는데, 모닥불과 테이블, 카우치로 채워놨다. 체크인을 하면 웰컴드링크도 주는데, 선택지에 주류가 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면 곧장 나마비루 주문이 가능하다. 운이 좋으면 날짜별로 마련된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동일한 공간이 아침에는 조식 식당으로 바뀐다. 야외 테이블에서 가짓수가 충분한 아침을 즐길 수 있다.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실 수 있도록 커피콩과 그라인더, 뜨거운 물, 그리고 필터도 준비되어 있다. 별관 같은 건물에 대욕탕도 마련되어 있다. 서늘한 밤공기와 께 여행 첫날을 즐길 수 있는 호텔이다.

사쿠라 테라스 호텔은 모든 공간이 개방되어 있다.
호텔 로비와 식당이 사이에는 모닥불과 함께 불멍할 수 있는 소파가 마련되어 있다.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인테리어다.
드립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실 수 있다.
Kurozakura Hachijoguchi 야끼니꾸 식당
10-1 Higashikujo Higashisannocho, Minami Ward, Kyoto, 601-8004 일본

호텔만큼이나 식당도 차고 넘쳐서, 구글맵을 줄였다 키웠다 하며 맛집 찾기도 어렵지 않다. 나고야의 히다규에 반해 일본 소고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첫날 저녁도 야끼니꾸로 정했다. 평점이 높은 식당은 많았지만 이곳은 흑우를 파는 곳이라고 해서 찾아갔다. 흑우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막상 메뉴를 시켜놓고 보면 붉은색 고기인 건 똑같다. 그런데 여기, 안창살이 미쳤다. 치이익 구워서 입에 넣으면 녹아 없어진다. 솜사탕을 구운 걸까. 모든 세트 메뉴에는 우설이 포함되어 있어, 거부감이 있다면 개별 부위로 시켜도 된다. 한국식을 표방하여 김치, 냉면 같은 반찬과 후식 메뉴도 있는데, 일본화되어 상에 내어주니 참고하자. '흑우'라는 사케도 판다. 곁들이면 좋지만, 특별하지는 않다. 둘이서 배불리 먹으면 10만 원 정도 쓴다.

부위별로 스테이크, 갈비, 안창, 우설 등을 시킬 수 있다.
안창살과 얇게 나오는 등심을 추천한다.
안창살이다.
교토는 관광 자원이 넘쳐난다. 호텔과 식당이 모여있고, 늦은 시간에도 길이 밝다. 노련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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