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라로 가면 잘 살 것’?

by 한량돈오

한국은 1950년대부터 약 70년간 20만 명 이상을 해외로 입양 보낸 세계 최대의 ‘아동 수출국’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시작이었으며,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이른바 ‘혼혈 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는 명목으로 해외 입양을 추진했습니다(경향신문, 2025. 12. 28., “73년 만의 해외 입양 중단”,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281847001>, 검색일: 2026. 2. 18.).

1953년 아동 4명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이듬해 ‘한국아동양호회’(대한사회복지회 전신)라는 입양기관이 만들어졌고, 미국 농부였던 해리 홀트가 1956년 ‘홀트양자회’를 설립해 해외 입양을 주도했습니다.


한국은 1985년 한 해에만 8,837명을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그 밑바탕에는 ‘대리 입양’ 제도가 있었습니다. 입양 부모가 한국에 오지 않고도 대리인을 통해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아동의 부모나 많은 사람들은 ‘부자 나라로 가면 잘 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많은 입양 아동들은 차별과 학대를 당했습니다. 국가는 입양 보내기 전에 부모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입양을 보내는 과정에서는 서류 조작과 바꿔치기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2022년 미국,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 11개국 367명의 한국 해외입양인은 과거 자신들의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를 출생국인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신청했습니다. 위원회는 2025년 3월 25일 국제 입양 과정에서 정부의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결론 냈습니다. 그러나 일부인 56명에 대해서만 인정했습니다. 311명은 2년 반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진실 규명으로 결정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었습니다. 42명은 아예 진실 규명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당시 위원이었던 저와 당시 야당(민주당) 추천 위원들은 전부 인정을 주장했지만, 다수결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매우 참담했습니다. 다음 날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 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언론에서 ―악어에게 미안하지만―‘악어의 눈물’ 사진을 봤습니다. 선별 인정을 이끌었던 자의 가증스러운 눈물이었습니다.


위원회는 입양알선기관들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적법한 입양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국가는 모든 입양 과정을 민간 입양알선기관에 일임함으로써 입양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방기 하였음이 밝혀졌다. 입양 후 인권침해 이전에 한국 정부는 아동 보호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있을 만큼 아동들을 ‘추방’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권리를 잃은 자들이 제일 먼저 겪는 일이 고향의 상실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권리를 잃은 사람들이 두 번째로 겪는 것은 정부 차원의 보호 상실이고, 이것은 자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법적 지위를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Hannah Arendt, 이진우․박미애 옮김, 『전체주의의 기원』, 한길사, 2008, 528-529쪽).


1948년 제헌헌법 제28조 제1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써 경시되지는 아니한다.”라고 규정합니다. 1962년 개정 헌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합니다. 헌법의 표현상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는 민주공화국 헌법에서 당연합니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를 충족해야만 그 국가는 민주공화국이 되는 거죠. 과거 청산은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요건입니다.


그런데도 입양 서류 위조 피해를 주장하며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해외입양인이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뉴시스, 2026. 2. 7., “해외 입양 국가 책임 인정에도… 개별 배상은 ‘높은 벽’”,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206_0003505931>, 검색일: 2026. 2. 18.).

한국에서 과거 청산의 이행기 정의는 늘 이 모양입니다. 진실 규명에도 높은 장벽이 있는데, 진실 규명을 통해 화해하자고 설치한 국가기구가 국가의 인권침해를 인정한 이후에도 개인의 사법적 구제는 쉽지 않습니다.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적정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의 국가가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겁니다. 과거 청산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국가의 문제이므로, 이러한 국가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 또한 해외입양인을 비롯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 또는 생존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행기 정의의 구현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 책무이자 권리입니다.


※ 이미지 라이선스: Family figurine with hearts next to a gavel symbolizes legal family matters. A visual metaphor for family law, adoption or legal guardianship. 제작자 photo for everything, AI로 생성됨, 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7280 x 4080px, 파일 유형 JPEG, 범주 사회 문제, 라이선스 유형 표준


#해외입양인 #민주공화국 #인권보장의무 #진실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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