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by 한량돈오

재판소원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네요. 제가 한량이다 보니 2018년 4월에 재판소원을 주제로 논문을 쓰다 만 게 있네요. 그때의 관심은 대법원이 과거의 국가범죄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사를 징계하려 한 ‘사법 농단’ 사건이 계기였습니다. 저는 재판소원을 인정한다고 해서 헌법재판소가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판단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 구제받을 길은 넓게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재판소원 제도에 찬성합니다. 2018년 당시 머리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은 2010년(대법원 2010. 12. 16. 2010도5986; 2013. 4. 18.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헌법재판소는 2013년(헌재 2013. 3. 21. 2010헌바70 등) 유신헌법 체제에서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무효를 확인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서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으며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대법원 2015. 3. 26. 2012다48824).


경악할 일은 2015년 10월 법원행정처가 국가배상 청구를 인정한 재판장을 징계하려 했다는 점이다. 김기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재판장이었던 서울중앙지법 민사부는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 16명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를 인정했었다. “대법원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그냥 놔두면 앞으로 대법원 입장과 다른 판결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판결을 이유로 판사를 징계한 전례가 없다는 내부 보고가 올라오자 해외에 연수 중인 판사들에게 법관 징계 사례를 수집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라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컴퓨터 조사 과정에서 문서로 확인”된 내용이다(경향신문, 2018. 3. 22.). 법치의 본질 내용에 속하는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죄에 못지않은 헌법침해 범죄다.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판결은 대법원이 ‘재판 범죄’를 저질렀던 독재 시대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민주화 헌법 아래에서도 ‘독재의 법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에게 그 무엇보다도 헌법에 따라 심판하도록 명령함과 아울러 정치권력에 맞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법관이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에도 인권을 침해당한 국민은 재판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가서 다툴 방법이 없다.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는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헌법재판소 관장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점이다. 같은 조항 단서는 다른 법률에 구제 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제외 범위를 더 넓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헌법재판소조차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에 대해서만 예외를 둘 뿐이다(헌재 2016. 4. 28. 2016헌마33; 헌재 1997. 12. 24. 96헌마172등).


헌법재판소법 제72조 제3항 제1호는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 절차가 있는 경우 그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아니하거나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헌법소원의 심판이 청구된 경우 지정재판부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결정으로 헌법소원의 심판청구를 각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긴급조치 국가배상을 부인한 판결에 대해 당사자들이 헌법적으로 다투어보려고 해도 헌법재판소가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는 한 각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부정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헌법 제111조의 위임 한계를 넘어선 조항으로서 헌법의 기본권 보장 원칙과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 그리고 헌법소원 심판의 제도적 취지에 비추어 위헌이다. 국회가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여 위헌상태를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해석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판소원 금지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 글은 그 헌법적 논거를 정리한 것이다.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몇 가지 논거만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재판소원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입법 전이라 알 수 없습니다. 위헌 요소나 부작용은 입법을 통해 해소하면 됩니다. 어떻게 제도화할 거냐가 아니라 반대부터 한다는 건 적절한 논거는 아닙니다.


두 번째 논거는 ‘4심제는 국민 소송 지옥 우려’인데요. 헌법은 3심제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거소송이나 특허소송 등은 2심제고요. 단심제인 선거소송도 있습니다. 국민 소송 지옥을 우려한다고요? 법원이 기본권 옹호자로서 구실을 못 하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소송 지옥에서 벗어나려 기본권 관련 사건은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보자는 거 아닙니까.


세 번째 논거는 법원행정처가 말한 건데요. “우리 헌법은 1987년 헌재를 신설하면서 재판소원을 허용하지 않았다”라며 “재판소원은 우리 헌법 체제와 규정에 맞지 않아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고 하네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헌법은 헌법소원제도의 구성을 법률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헌법 운운은 외려 법원행정처가 헌법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고백한 거네요.


네 번째 논거도 법원행정처의 것인데요. “헌재는 태생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치적인 재판기관”이라며 “사법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의 통제 권한이 헌재에 집중되고, 이는 헌법의 최종 해석 권력을 분립시킨 주권자의 의사를 뒤집는 것”이라고 하네요. 헌법 자체가 정치적인 면이 있다고 모든 헌법학자가 말합니다. 관건은 헌법이 정한 규범을 얼마나 실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동안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힘썼다면 재판소원 말이 나오자마자 반대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겠지요. ‘주권자의 의사’를 함부로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그동안 법원의 호가호위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죠.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가 쓰다만 원고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모든 법관은 기본권을 존중해야 하고, 기본권을 원용하여 법률을 해석·적용해야 하며, 그 한도 내에서 국가 기능을 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헌정사와 현실은 법관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법원의 기본권 보장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 헌법소원제도다. 물론 기본권을 존중하고, 기본권을 해석·적용하는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소원은 다른 국가공권력에 대한 헌법소원과는 달리 취급해야 한다.



재판소원을 도입하지 않아 문제인 사례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데요. 제가 학교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유로 징계를 당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거쳐 법원에 가겠죠. 법원에서 저의 기본권 침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게는 더 이상 다툴 길이 없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학교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사립학교는 공권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사기업, 사영 언론, 정당 등에 모두 해당합니다.


하나만 더 생각해 볼까요. 행정청의 처분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경우인데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법원을 거쳐야 한다는 게 현재의 제도입니다. 이 사안도 법원에서 구제를 받으면 문제 될 게 없죠. 문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죠. 법원의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으니까 그걸로 끝인 거죠.


다른 나라의 예를 무턱대고 따라가는 건 경계해야 하지만요. 역사적으로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행정부의 행위를 통제하는 장치가 법원의 행정소송제도고요, 입법부의 행위를 통제하는 장치가 위헌법률심사제도고요, 마지막 법원의 행위를 통제하는 장치가 헌법소원제도입니다. 헌법소원제도의 핵심이 재판소원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누가 어떻게 심판하냐의 문제입니다. 혹시 했다가 역시나 하는 낭패를 보는 일이 적지 않을 테니까요. 여기에 심각한 고민이 있습니다.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그물망을 촘촘하게 쳐야만 국가라는 괴물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헌법 조문만 그럴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헌법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입법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회가 입법을 제대로 하도록 고삐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요.


※ 이미지 라이선스: Robot lawyer sits at desk in courtroom. AI legal professional wears wig and suit. Futuristic justice system involves mechanical expert making decisions about cases. 제작자 miss irine, AI로 생성됨, 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5376 x 3072px, 파일 유형 JPEG, 범주 그래픽 자료, 라이선스 유형 표준


#재판소원 #4심제 #3심제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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