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시절, 전쟁 때는 장교가 도망치는 병을 총살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고서도 한참 뒤에서야 그 기억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무리 전시라고 해도 즉결처형은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불법이죠. 그러나 여전히 즉결처형 또는 즉결처분은 전시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어 불법이라고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결처형(卽決處刑, Summary execution)은 헌법이 보장하는 적정한 재판 없이 범죄 혐의자를 처벌, 특히 사형을 집행하는 걸 말합니다. 군인인 경우 민간인 시민과 다른 특별권력관계에 있으므로 전시에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들었던 얘기의 밑바탕에 자리한 근거겠죠. 한국전쟁 관련해서는 당시 군경의 불법적인 즉결처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형까지 옹호합니다.
전쟁 중인 적국의 군인에 대해서도 포로 관련 국제인도법에 따라 처우해야 하므로 즉결처형을 금지됩니다. 군인 아닌 민간인의 경우 아무리 중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당연히 적정한 재판에 따라 처벌해야 하므로 즉결처형은 불법입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의 전 위원장 김광동은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 ‘6·25 전쟁 같은 전시하에서는 재판 등이 이뤄질 수 없으므로 적색분자와 빨갱이를 (재판 없이) 군인과 경찰이 죽일 수도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헌법 또는 현행헌법은 물론 당시 사형금지법 또는 현행 과거사정리법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언행이다. 진화위 결정에서도 ‘재판 없이 처형된 건 맞지만, 희생 경위를 확인할 근거가 부족하다’라는 판단, 또는 ‘적대 세력에 부역했을 수 있으므로 순수한 희생자로 인정하기 힘들다’라는 취지에서 희생에 대한 진실규명을 인정하지 않는 결론을 내기도 합니다(한겨레 2023. 10. 29.). 설령 부역 행위 혐의 관련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의 진실성 유무는 차치하고라도 그 기록이 학살 행위의 위헌․위법을 치유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희생 또는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언행은 당시의 위헌․위법의 불법적 학살 행위를 승계하는 것으로서 과거사정리법 취지에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즉결처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예는 일제강점기에 가벼운 죄에 대하여 행해지던 경찰서장의 즉결처분(30일 미만의 구류)이 있었습니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는 “인권이 무시되는 폐단이 많았”다고 평가하면서, 미군정에서 폐지되고 “특별심판관(치안관)의 즉결심판으로 대치되었”으며, 이 또한 법관이 아니어서 “주재판사”에 의하여 교체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1949년 10월 5일 국회 질의 답변에서 당시 법무장관 권승렬은 경찰의 즉결 처분과 관련된 조영규 의원의 질문에 대해 ‘즉결 처분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수십 명이 재판을 받지 않고 총살집행을 받았다는 것은 법의 위신상 큰 문제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들었던 얘기는 한국전쟁과 연관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육군본부는 작전훈령을 내려 분대장급 이상의 군인에게 적 앞에서 도망치는 부하군인에 대하여 즉결처분을 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50년 7월 3일 육군본부는 “부대의 후퇴는 軍 최고지휘관인 육군참모총장이 명령할 뿐이고 예하 부대장은 후퇴를 명령할 권한이 없다”는 ‘작전훈령’ 제2호를 선포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병사들을 돌려 전투에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25일 12.00 작전훈령 제12호를 발령했습니다. 그중 “2. 命令(명령) 없이 戰場離脫(전장이탈)할 時의 卽決處分權(즉결처분권)을 分隊長級以上(분대장급 이상)에게 7月 26日 零時(0시)부터 附與(부여)한다.” “戰場離脫이라 함은 直屬上官(직속상관)이 命令(명령)한 地點(지점)에서 命令없이 後退(후퇴)함과 命令한 作戰行動(작전행동)을 意識的(의식적)으로 不履行(불이행)함을 말함.”이 즉결처분권에 해당합니다.***** “戰時(전시)에서의 卽決處分이란 곧 총살을 의미했습니다.
이후 작전훈령은 취소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군으로서 엄연한 군법이 확립되어 있는 이상 이와 같은 즉결처분권을 행사할 바 없다”는 것이 취소의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즉결처분이 허용되었던 1년 동안 어떠한 희생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단편적인 얘기들이 전해올 뿐입니다. 이후 다시 유사한 내용의 훈령이 발령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전시라고 하더라도 징계나 재판 등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 없이 이렇게 사형을 집행하는 즉결처분권을 행정규칙의 일종인 훈령에 의해 인정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살인행위일 뿐입니다. 1960년에 박원서는 평시는 물론 전시에도 군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국제법규를 준수해야 함을 전제로 하여 즉결처분권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적법절차를 침해한 것으로서 위헌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는 전투 시 범한 범죄에 대하여 敵前非行(적전 비행, 국방경비법 제27조)이나 항명(같은 법 제16조) 등으로 처벌될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훈령은 그 자체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므로 이에 대하여는 복종의무가 없으며 오히려 헌법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명령인 점에서 이를 수행한 자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임은 물론 국가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요.
한국전쟁에서 훈령은 전시라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어 위헌이고 불법입니다. 문제는 즉결처형이 민간인에게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군에서 작전명령으로 발해진 즉결처분권과 민간인인 부역자나 재소자에 대한 즉결처형은 관련성이 없습니다. 다만, 당시 군의 즉결처분권이 명령되는 상황에서 군이 또는 경찰이 부역자나 재소자를 전투 중인 적으로 간주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전시라는 상황에서 군과 민간의 구별 없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탓에 불법적인 즉결처형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추정됩니다. 1951년 2월 2일 국군 제11사단장 최덕신 명의로 9 연대에 하달된 작전명령 5호는 “작전지역에서 이적행위자 발견 시에는 즉결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기 위헌적 즉결처형의 대상자는 주로 부역자였습니다. 당시 부역자 처벌 재판에서 판사 유병진은 “역도에게 협력한 행위는 과연 모두 위법성을 띤 것이며 범죄시되어야 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비상사태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 부역행위 전부를 범죄시하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인간의 생에 대한 애착심”을 감안하여 “최소한도의 순종행위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나마 ‘부역행위특별처리법’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1951년 2월 26일에 행해진 ‘나주 동박굴재 사건’만 보더라도 나주경찰서 특공대는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 혐의와 수복 이후의 빨치산 협력혐의로 27인을 집단총살로써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은 “계획적인 ‘입산자 가족 및 부역혐의자 임의처형’”이었음에도, 경찰은 이 사건 관련자들을 “작전 중에 사살된 ‘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국방경비법’, ‘국가보안법’,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계엄하 군사재판에 관한 특별조치령’ 등 위헌성 시비가 있는 법률들의 적용조차 없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적어도 즉결처분에 있어서만큼은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방학살”이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즉결처형은 재판절차 이전에 이미 예방적 조치로서 행해진 처형입니다. 아무리 전시라고 하지만 헌법이 존재하는 한 생각할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한 살인행위인 점에서 그 위헌성은 자명합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초사법적 약식 또는 자의적 처형>에 대하여 특별보고관을 임명했습니다. 특별보고관은 다음과 같이 “초사법적, 약식 또는 자의적 처형”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Extrajudicial, summary or arbitrary executions E/CN.4/1999/39 Para. 6.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형과 연결된 생명권의 침해 ⓑ 국가공무원, 정부와 협력하거나 용인되는 준군사집단, 사적 개인이나 집단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형과 연결될 수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에 의한 살해협박과 즉각적인 초사법적 처형에 대한 두려움 ⓒ 고문, 방치, 폭력행사, 생명을 위협하는 억류조건에 따른 구금 중 사망 ⓓ 법집행공무원 또는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절대적 필요성과 비례의 기준과 합치하지 않는 물리력의 행사에 기인한 사망 ⓔ 국가의 보안군이나 정부와 협력하거나 용인되는 준군사집단, 살인부대 또는 다른 사설군대에 의한 공격에 기인한 사망이나 살인 ⓕ 무력충돌 중 국제인도법에 위반하여 특히 민간인과 다른 비전투원에 대한 생명권의 침해 ⓖ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한 국가 또는 장소로의 추방, 송환 또는 귀환과 국경폐쇄를 통하여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한 국가를 떠나 망명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 ⓗ 집단살해 ⓘ 폭도에 의한 살해를 포함하여 당국자의 부작위에 기인한 죽음 ⓙ 생명권 침해가 주장된 사건에 대해 수사하고 책임자를 재판할 의무의 위반 ⓚ 생명권 침해의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배상을 하여야 할 추가적인 의무의 위반과 정부가 배상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한국전쟁기 즉결처형에 의한 민간인 살상은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설령 군법회의의 형식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즉결처형은 적법절차원칙 위반이며 재판청구권의 박탈인 점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행위입니다.
국가의 범죄행위에 의한 민간인 희생의 구제는 그 피해가 광범위한 점에서 입법적인 해결방법만이 가장 적절한 수단입니다. 임의적․행정적 처형으로서의 즉결처형은 불법 자체인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므로 시효를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재판을 통해 피해자 개인별로 해결하라는 것 자체가 법치국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고, 희생자 유족들은 재판을 통해 일희일비하는 고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행기 정의는 가해자 처벌 없는 피해자 구제 중심주의입니다. 가해자 처벌은 진실 규명에 협력하는 경우 처벌 감면을 동반합니다. 진실 규명이 취약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해자 구제마저 불충분하다면 국가범죄의 부정의(不正義)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정의(正義) 실현의 과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미지 라이선스: Military Tribunals Prosecuting War Crimes and Seeking Accountability for Justice in the Aftermath of Conflict and Violence, 제작자 Tanya, AI로 생성됨 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4486x2671 px, 파일 유형 JPEG, 범주 그래픽 자료, 라이선스 유형 표준
* 「한겨레」, 2023. 10. 29.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4023.html>; 임재성, ““전시엔 재판 없이 죽일 수도”… 무지하고 자격 없는 김광동 위원장”, 「한겨레」, 2023. 11. 1.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4435.html>; 「한겨레」, 2024. 6. 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43253.html>, 검색일: 2024. 11. 11.
** 이완규,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의 연혁과 의의”, 『형사소송의 이론과 실무』, 제9권 제1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7, 14-15쪽.
*** 「한겨레」, 2024. 4. 29.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8490.html>, 검색일: 2024. 11. 11.
**** 유진오, 『헌법해의』, 채문사, 1952, 90쪽.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제2권: 지역작전기(50.7.5-50.7.31)』,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79, <http://www.imhc.mil.kr/imhcroot/upload/resource/EE101002N.pdf>, 검색일: 2009. 9. 9, 987-988쪽.
****** 박원서, “군의 즉결처분권,” 「법률신문」, 제403호, 1960. 8. 15.
*******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거창양민학살사건자료집(Ⅲ) 재판자료 편』, 2003, 10: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2008.7.9.~2009.1.5.] 02』, 진실화해위원회 제6차 보고서, 2009, 111쪽 재인용.
******** 유병진, “비상조치령에 있어서의 몇 가지의 과제,” 신동운 편저, 『재판관의 고민: 유병진 법률논집』, 법문사, 2008, 223쪽, 225쪽, 228쪽.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2007.1.1-2007.6.30)』, 2007,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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