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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임금

by 한량돈오

헌법 제3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권리가 있다면서,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임금을 받는 대가로 제공하는 육체적․정신적 활동입니다. 노동권은 노동자가 자기 의사와 능력과 취미에 따라 노동의 종류․내용․장소 등을 선택하여 노동관계를 형성하고, 타인의 방해를 받음이 없이 노동관계를 계속 유지하며(노동의 자유),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국가에 대하여 노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도록 요구할 권리(노동기회제공청구권)입니다.


노동권은 ① 국민이 노동을 통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하게 하고, ② 노동을 통해 개성과 자주적 인간성을 제고하고 함양하게 하며, ③ 노동 기회의 제공을 통해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국가적 보호 의무를 경감하고, ④ 노동의 상품화를 허용함으로써 자본주의경제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기능을 합니다.

1886년 8월 미국 시카고 법원에서 오거스트 스피스(당시 31살)는 교수형을 선고받은 재판에서 기나긴 최후진술을 했습니다.*


“우리를 목매달아 노동운동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궁핍과 비참 속에서 고된 노동으로 살아가며 해방을 기대하는 수백만 임금 노예들을 짓누를 수 있다고 여긴다면, 우릴 처형하라! 당장 불꽃 하나는 짓밟겠지만, 당신의 앞과 뒤, 여기저기서 불길이 타오를 것이다. 당신이 밟고 선 대지의 불길은 끌 수 없을 것이다.”


논리 정연한 권리선언이자 뜨거운 격문이었습니다. 스피스는 독일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나 17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는데요. 22살 때 사회주의노동당에 가입했고, 25살엔 독일어로 발행되던 노동자 잡지 <아르바이터 차이퉁>의 편집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6년 뒤 사형수가 됐고, 이듬해 형이 집행됐습니다.


그보다 석 달 전인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 수십만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시카고에서도 8만여 명이 참여했고요. 시위 사흘째, 경찰의 발포로 4명이 숨졌습니다. 다음 날 밤 헤이마켓 앞 항의 시위가 있었는데, 누군가 사제폭탄을 던졌고 군경의 발포가 뒤따랐습니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면서 사태가 엉뚱하게 번졌습니다. 다음날 경찰은 잡지사를 덮쳐 스피스 등 4명을 체포했고, 또 다른 노동운동가 4명도 체포했습니다. 그중 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4명이 형장에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범행 증거는 없었습니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은 5월 1일을 ‘국제 노동자의 날’(메이데이)로 선포했습니다.


적정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이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임금 수준을 말합니다. 적정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임금 비중이 적정해야 합니다. ‘사회임금’은 전체 가구 운영비에서 보육비․노령연금ͺ건강보험 적용ͺ주거 수당 등 국가 부문으로부터 얻는 소득을 말합니다.


최저임금(minimum wage) 제도는 국가가 법적 강제를 가지고 임금의 최저한도를 정하여 그 이하의 임금 수준으로는 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임금이 산업구조․기업규모․경영방식에 따라 생활급에 미달할 가능성이 있어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활급을 직접 헌법의 수준에서 보장하려는 것입니다.


생활임금(living wage) 제도는 개인의 생존을 위한 임금만을 보장하는 최저임금과 달리 물가를 반영하여 한 가구의 생계가 가능한 정도의 임금을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제도인데요. 공공부문에서 도입했습니다. 성북구와 노원구에서 행정명령을 통해 2012년 처음 도입한 후, 다른 지방정부로 생활임금조례가 확산했습니다. 영국은 2016년 4월 1일 세계 최초로 생활임금제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수용했습니다. 생활임금 제도 논의는 19세기 미국에서 시작했는데, 지방정부 차원에서 현실화한 것은 1994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서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한 것이 시작입니다. 생활임금이 과연 소득양극화 완화에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공공부문에 한정하여 민간 부문 파급력이 약하다는 점, 그리고 그 액수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림> 최저임금 추이**

최저임금.png


헌법은 최저임금제 시행을 입법적 의무로 하고 있지만, 헌법이 지향하는 바는 적정 임금의 보장입니다. 사회의 다른 부분에 미치는 파급효도 고려해야 하지만, 전체적인 경제 구조에서 적정 임금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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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일준, “메이데이 순교의 들불”, <한겨레>, 2017. 5. 1.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1762&cid=43667&categoryId=43667>, 검색일: 2025.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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