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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권

by 한량돈오

헌법 제35조는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환경권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자연․사회환경을 형성하는 권리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좁은 의미의 환경권은 ‘오염되거나 불결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건강을 훼손당하거나 훼손당할 위험에 놓인 사람이 오염되거나 불결한 환경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공권력이나 사인(私人)에게 그 원인을 예방 또는 배제하여 주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넓은 의미의 환경권은 오염되거나 불결한 환경의 배제라고 하는 소극적 성격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고 조성하여 줄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헌법 제35조의 환경권은 넓은 의미의 환경권이다. 즉 각종 공해로 인한 환경 파괴적 위험에 대항하여 깨끗한 환경 속에서 살고자 하는 권리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통상적인 환경권 개념은 충분한가요? 오늘날 인간 아닌 존재의 권리를 말하고, 지구 행성의 생태 시스템을 보호하려는 상황에서요. ‘環境’은 한자로 ‘고리 환’과 ‘곳 경’을 사용합니다. 인간을 둘러싼 배경으로 해석하는 의미에서 인간 중심주의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넓게 해석한 환경권 개념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인간이 지구라는 존재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분임을 인정하고 인류를 비롯한 모든 존재의 가치와 생명을 존중하는 법규범의 사고 체계로서 지구법학을 말하는 까닭입니다.


헌법해석을 통해 환경권의 개념을 확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은 인간 중심주의 관점에서 국민의 권리를 말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환경보전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는 법률에 따라 확장될 수 있으니까요. 한국의 전통적인 생태 사상을 배경으로 헌법을 해석하는 일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폴 코헨(Paul A. Cohen)에 따르면, 근대성 개념은 “역사가 일정한 단계를 거쳐 일정한 목적을 향해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내재한 “목표수렴형 개념(closed concept)”입니다. 이 모델에 따르는 경우 우리는 “미리 만들어진 개념적 틀에 맞추어 역사 데이터를 가공해야” 합니다. 동양사상에서 근대성 개념을 전제로 한 근대 연구는 동양사상이 근대 서구가 선취한 것들을 목표로 발전한 과정을 밝히기 위해 데이터를 가공하는 과정입니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맞선 내재적 발전론을 증명해야 했던 한국 근대철학에서는 한때 한국 사상에서 근대성․근대지향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구 중심적 근대성의 전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서구사회가 선취한 사회를 근대화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비서구 사회는 항상 서구에 뒤처져 있었으며, 근대화의 계기가 되는 서구의 침략은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인 방식이든 역사적 발전의 계기인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학 사상가 중 담헌 홍대용의 생태 사상을 원용하여 환경권의 의미를 달리 볼 수 있습니다. 담헌은 인간이 모두 '하늘이 낸 백성'이라는 전제 아래 개체로서의 인간과 이러한 인간의 집단들이 모두 동등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비와 이슬이 내리고 싹이 트는 것은 측은지심이고, 서리와 눈이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수오지심이다. 仁은 義이고 義는 곧 仁이니, 理는 하나일 뿐이다. …… 초목의 리가 곧 금수의 리이고, 금수의 리는 곧 인간의 리이며, 사람의 리는 곧 하늘의 리이니, 리는 인의일 따름이다. …… 일(事)은 선하고 악하고 할 것 없이 모두 四端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담헌은 인간과 다른 생물이 다른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우열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생물은 천하지만, 다른 생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면 인간은 오히려 천하다는 것입니다. 천의 관점에 서 보면 인간과 다른 생물은 평등합니다. 홍대용은 인간만이 오륜과 같은 도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도 그러한 도덕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중심의 생태철학은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하며, 이를 추종하는 인간생태학은 환경을 자원으로 인식하고 관리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환경자원의 관리는 생태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모색해 나가는 노력일 뿐입니다. 인간생태학은 특히 생태적 효율성, 에너지 효율성, 그리고 생태적 효과성을 고려함으로써, 생태적 합리성과 경제적 합리성을 합치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인간 중심의 생태철학은 기술 지향적인 입장을 견지합니다. 비록 인간이 개발한 과학기술이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 또한 과학기술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아닌 존재 또는 자연에 권리가 있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 중심주의 환경권 개념을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 형성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 형성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권리의 개념 역시 서구적입니다. ‘환경’을 대상화하지 않고 공존의 주체라고 인정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인간이 자기 생명의 유일무이한 터전인 지구 행성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아채야 합니다.


‘환경’은 인간 삶의 단순한 배경이거나 인간 삶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호흡하는 숨줄입니다. 그 숨줄을 살리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는 서구적이거나 전통적이거나 하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산불, 홍수, 폭염, 폭설 등은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그 원인이 인간에게 있는 인재(人災)입니다. 환경권은 지구를 파괴하는 요소를 향한 인간의 권리이면서 함께 존재하고 살아가는 비인간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환경권은 지구의 생태 환경을 회복하려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인간 아닌 존재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으므로 자연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잘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법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 이인화, “18, 19세기 자연과학적 기철학의 문화공존 윤리”, 「동서철학연구」,제97권, 2020, 82쪽.

** 김경수, “담헌 홍대용의 인간관에 나타난 실천적 특징 고찰”, 「동양철학연구」, 제107권, 2021, 88쪽.

*** 이종우, “김원행과 홍대용의 인간과 다른 생물에 대한 관점 비교”,「한국학논집」,제79권, 2020, 16쪽.

**** 김용환, “환경문제와 인간중심적 생태철학”, 「인문과학연구」, 제36권, 2013, 375쪽.


東京風景, 제작자 naka, 치수 7137 x 2540px, 파일 유형 JPEG, 범주 도시 경관, 스카이라인, 라이선스 유형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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