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前文) 중에는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라고 하여 제헌헌법이 등장합니다. 지난 8월 15일은 ‘광복 80주년’이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국권회복운동가들은 ‘독립운동’보다 ‘광복운동’(restoration movement)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박찬승). 일본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되찾았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제헌헌법이 1945년에 제정되어야 했는데, 실제 제헌헌법은 3년 뒤에 제정되었습니다. 그게 저의 착안점이었습니다. 주권 또는 국권이 바로 회복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주권에는 대외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대내적인 면도 중요합니다. 대내적인 면에서 광복이라는 용어에서 주권 또는 국권의 회복은 군주주권입니다. 주권 개념 비판이 필요합니다. 제가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까닭입니다.
서구에서 근대 이후 헌법은 국민국가의 법적 틀인데, 국가의 핵심 요소 중 하나를 주권이라고 이해합니다. 주권(sovereignty)은 국내에서 최고의 권력, 국외에 대해 독립의 권력을 의미합니다. 주권은 일정 영역 안에서 개인이나 기관이 다른 사람 혹은 기관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속성입니다.
서구 중심의 국제법질서는 힘의 우위에 의한 불평등의 질서였습니다. 대한제국의 제국은 다른 나라와 대등한 독립국으로서 ‘주권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를 이어받지 않은 까닭은 조선이 중국에서 내린 국호였기 때문입니다. ‘대한’은 국제법이 지배하는 국제 사회에 당당한 독립국으로서 진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대한국 국제」 제1조에서는 대한제국이 세계 만국이 공인하는 자주독립의 제국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대한제국 침탈은 국제법질서의 폭력성과 국제 사회에서 승인하는 주권의 무법성(無法性)을 보여줍니다. 대한제국의 근대 주권 국가 기획이 좌절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러한 무법성 또는 불법성을 인정한 조건에서 입니다. 서구의 근대 권력은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고착하는 범위 안에서만 비서구권의 근대화를 조성하고 허용하며 조장했습니다.
법은 규범입니다. 대한제국은 힘으로서 주권은 상실했지만, 규범으로서 주권은 한반도에 살던 인민에게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불법인 까닭입니다. 헌법 개념은 정치적 공동체의 내부 관계만이 아니라 외부의 관계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주권의 속성이 대내적 최고성과 대외적 독립성에 있다면, 헌법의 대외적 독립성은 국제법 관계와 연계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식민 지배와 주권의 관계 그리고 이른바 국가의 3 요소가 이러한 범주의 문제입니다.
1945년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해입니다. 해방된 사람들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던 인민이었습니다. 인민(people)은 국민(nation)과 다른 개념입니다. 국민은 국가 질서를 전제로 한 개념이지만, 인민은 국가 질서에 대립하는 사회적 개념으로서 사회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의미합니다. 헌법을 제정한 주체는 인민이고, 헌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국민이 존재합니다.
한반도에 살던 인민은 1948년에 새로운 성문헌법을 제정했습니다. 서구 법학의 전통에서 성문헌법으로서 헌법은 인민의 합의에 따라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에서 주권의 소재와 국가형태, 그리고 기본적인 규범과 제도 등을 법적인 논리체계로 정립한 기본법입니다. 서구 맥락에서 헌법의 어원인 구조, 체제, 조직을 수용한다면, 성문헌법 이면에는 정치적 또는 사실적 헌법 관계가 규범적 관계와 밀착해 있습니다. 규범과 사실을 포괄하는 헌법 관계는 성문헌법 존재를 넘어 헌법 체제 또는 헌정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헌이라고 할 때의 성문헌법 차원에서 1945년 해방과 1948년 헌법 제정 사이에는 시차(時差)가 존재합니다. 중간에 미군정의 지배가 있었으므로 성문헌법 차원의 해방과 독립은 1948년입니다. 동시에 1948년은 전제군주제에서 인민이 해방한 해이기도 합니다. 제헌헌법의 규범적 연원은 1919년 “3․1 운동”에 있습니다. 제헌헌법에서도 그렇고 현행 헌법이 “3․1 운동”을 중시하는 까닭입니다. “3․1 운동”은 대외적으로 주권의 선언인 동시에 과거 군주국이 아니라 인민이 주권자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1945년은 “3․1 운동”이 제헌헌법으로 완성된 해가 아닙니다. 온전한 해방이 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남한 점령이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임자 없는 땅’을 점령한 것이라는 국제법적 근거를 내세웠습니다. 국제법상 주권 없는 국가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주한미군사령관이 통상적인 군사점령권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종래 주권 국가인 일본의 조선총독부 통치권을 대리로 행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헌헌법을 중심으로 한 헌법 체제의 구축에서 중요한 것은 규범적인 지향성과 원칙을 헌법 또는 정치 현실에서 구현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해방은 과거의 예속과 불법을 청산해야 하는 의미에서 이행기 정의가 필수적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이 아닙니다.
제헌헌법 부칙 제101조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국회에 입법권을 위임했습니다. 이행기 정의 개념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지만, 해방의 의미를 생각하면 민주공화국으로 이행하기 위한 정의는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헌법적 과제였습니다. 이행기 정의를 한순간에 성취할 수는 없기에, 해방 후 80년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행기 정의를 향한 역정이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이행기 정의의 실현은 불충분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확인한 일본군 위안부 청구권 관련 정부의 부작위는 헌법재판소 결정 후 14년이 되도록 해소되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의 부작위는 ‘일본국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침묵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확인했듯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헌재 2011. 8. 30. 2006 헌마 788). 이행기 정의 사안들은 해방 80년 사에서 헌법 규범과 헌법현실의 현 위치 관계를 보여주는 좌표입니다.
인민의 일반의사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과거 국가범죄를 들여다보고 현재에도 남아 있는 부정의를 바로 잡으며 미래로 이어질 변혁적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이어지는 역사적 존재로서 인민의 의사입니다. 이제 지구의 한 부분으로서 지구의 존속에 복무하는 과제가 해방 후 80년을 지나면서 대한민국 헌법과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 헌법의 과제입니다. 기후 위기에 따른 현재의 삶이 우리를 가장 크게 예속하는 폭력이자 부정의 입니다. 해방 80주년을 지나면서 근대 자유입헌주의 헌법과 현대 사회복지국가 헌법을 넘어 새로운 제헌으로서 ‘지구 헌법’의 탄생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제헌헌법 제정 80주년이 되는 2028년까지 탄소중립사회를 향한 헌법체제를 구축하는 인민이 되어야 합니다.
* 이 글은 오동석, “한국 제헌헌법에 반영된 기본권·민권·주권과 민주주의”, 「세계사의 시선으로 본 국권회복의 역사적 의미」(광복 80주년 기념 국사편찬위원회 제63회 한국사학술회의 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 서울글로벌센터빌딩 국제회의실, 2025. 8. 13., 31-44쪽에 바탕을 두고 작성했습니다.
**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엮음, 『한국정치와 헌정사』, 한울아카데미, 2001, 126쪽.
A silhouette of an individual breaking free from chains, A sense of relief or freedom is evident in their expression as they raise both arms up towards the sky, 제작자 SyedaJakeaBegum, AI로 생성됨 편집상의 사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허위여서는 안 됩니다. 치수 5632x3456 px, 파일 유형 JPEG, 범주 사람, 라이선스 유형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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