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法方浪] 인간의 존엄과 가치

by 한량돈오
제노사이드_AdobeStock_620817006_Editorial_Use_Only.jpeg


제가 미술관 도슨트, 무용, 연극, 영화 등에 관심을 가진 건 제가 공부하는 헌법학의 방법론 때문입니다. 법학은 주로 해석학이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법조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어떤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 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결정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헌법해석은 성문의 헌법 규범을 논리적․체계적으로 해석하여 헌법 규범의 원리․원칙과 그 내용을 풀어내는 일이죠.


헌법재판소는 헌법해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헌법의 해석은 헌법이 담고 추구하는 이상과 이념에 따른 역사적, 사회적 요구를 올바르게 수용하여 헌법적 방향을 제시하는 헌법의 창조적 기능을 수행하여 국민적 욕구와 의식에 알맞은 실질적 국민주권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의 해석과 헌법의 적용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때는, 헌법 적용의 방향 제시와 헌법적 지도로써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막는 가치관을 설정하여야 한다." (헌재 1989. 9. 8. 88헌가6)


그러니까 (헌)법의 해석은 문자의 의미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역사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는 얘기죠. 한국 헌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항 중 하나는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조항입니다. 존엄이라는 단어는 잘 쓰는 용어는 아니죠. 네이버 사전에서 존엄이라는 단어를 찾아볼까요? 두 가지 뜻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전에 임금의 지위를 이르던 말, 다른 하나는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이라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의 존엄 개념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헌법은 사람이기만 하면 존엄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근대 헌법이 등장하기 전까지 서구의 역사에서도 존엄의 의미는 영웅처럼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만 사용했습니다. 다만 고대 로마 시대에도 노예도 평등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생각은 있었다고 해요. 테렌티우스(기원전 185-159)의 희곡 작품에서 노예 크레메스는 “나도 한 인간이다. 인간인 한, 인간사 그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는 주인에게 신분상 노예이지만 평등한 인간으로 대할 것을 요구한 것이죠.


존엄을 보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존엄은 적극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부정의 부정으로 정의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존엄이 제기하는 요청은 시대 또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그 사회의 문명적이고 문화적인 전체상황이 존엄의 관념과 현실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인간 존엄권에 대한 침해를, ‘굴욕, 낙인, 박해, 추방’과 ‘잔혹하거나 가혹한 결정’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른바 ‘대상(對象) 공식’을 제시합니다. 즉, 인간의 존엄권을 침해하는 것은 국가가 인간을 순전히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불확정적인 면이 남아 있습니다.


아동노동_AdobeStock_977186207.jpeg


인간의 존엄이 법 문서에 등장한 가장 가까운 역사적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대한 반성입니다. 대표적인 일이 나치스의 유대인 집단살해(Genocide)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자본주의 착취와 인간의 자기 소외에 대한 반성입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1833년 공장법은 아동의 노동을 금지했으나 9살 미만의 어린이에게만 해당되어 9살 이상의 어린이들은 공장에서 노동했습니다. 아동 노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죠.

더 멀리 간다면, 기독교와 계몽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등에 의해 형성된 휴머니즘(Humanität)에 정신사적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마녀재판’이라는 이름의 ‘마녀사냥’이었죠. 이러한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사건들은 한국의 헌정사에서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노동자를 비롯해 일터에서 일하다가 재해로 숨지는 사람들이 하루 7명이라고 합니다. 노동자, 군인,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어선원, 농․어업인을 포함한 수치입니다. ‘2019~2023년 노동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5년간 재해 인정받은 사람은 1년 평균 18만 8,725명입니다(한겨레 2025. 4. 27.).


마녀사냥_AdobeStock_909202746.jpeg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범은 이런 상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전제로 합니다. 헌법은 단순히 과거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규율합니다. 헌법 제10조의 두 번째 문장은 이렇습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누구나 다 알 듯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고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고 있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국가에 그 책임이 있고, 대한민국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권자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지니는 헌법적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지식과 정보 또는 법적인 전문 역량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굳이 헌법을 끌어대지 않아도 불법과 부정의를 알아채고 비판하고 저항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 주권자의 일이죠. 헌법 위에 주권자가 있기 때문이죠. 문자에 매몰되지 않고 헌법 조문을 물신화(物神化) 하지 않으려는 모색이 ‘헌법방랑’입니다.


* 헌법방랑(憲法方浪)은 헌법 방법론을 탐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랑’의 한자는 ‘放浪’이죠. ‘方’ 자는 방법론을 말합니다.


#헌법방랑 #오동석 #한량돈오 #인간존엄 #헌법해석




keyword
작가의 이전글[閑良舞浪] 죽서루한량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