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밖에서 커피를 사마시지 않았다. 창밖에 부는 겨울바람처럼 요즘 통장 잔고에도 찬바람이 불었던 탓이다. 추운 날 외출하다 돌아오는 길, 따끈한 라떼 한 잔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가도 그냥 집에 가서 믹스커피 마시라는 마음의 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온다. 그런데 2월 중순의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내 마음에 먼저 얼음비를 뿌렸나 보다. 오늘만큼은 핑계를 대고 싶었다. 따뜻한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주며 괜찮다고, 이거 마신다고 큰일 안 난다고 쿨하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런 날이 있다. 월요일 저녁 6시 반 퇴근길처럼 앞뒤가 꽉 막힌 날, 혹은 전날 밤 잠을 설쳐서 하루종일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한 날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려 발을 크게 내밀어봐도 사막 위를 걷듯 제자리에서 허우적대는 날 말이다. 그런 날에는 약간의 호사를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다른 누구보다 나에게 기대고 싶은 날도 있으니깐.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줘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도 너른 마음 한 켠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기댈 수 있는 어깨, 아무리 조잘거려도 싫은 내색 없이 들어줄 귀, 다정하게 꼭 껴안아줄 품을 나에게도 허락하고 싶다. 라떼 한 잔보다 더 따끈하고 든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