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역일지, 한 목숨을 떠나보내며

by 마정열

1.

빈소가 차려졌다.

영정 속의 노인은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이 향연으로 언뜻언뜻 흐려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꽃이 놓여 있다.

바람도 없는데 영정 사진 옆의 촛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노인의 입김인 듯했다.

바쁜 일상이 잠시 멈춘 듯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죽음의 향기가 배인 장례식장의 공기는 무거웠다.

사람들은 무게에 눌린 듯 느리게 움직였다.

문득 영정 속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생전의 웃음이 담겨 있었지만

더 이상 그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2.

“호상이여, 호상!”

조문객들은 노인의 나이를 묻고 호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호상이라니. 세상에 좋은 죽음이 어디 있는가?


호상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의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 포장하며 존재의 삶을 가볍게 만든다. 한 생명의 삶, 그리고 그와 함께한 순간들은 소중하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실의 무게를 덮으려는 그 가벼운 말 한마디는 따뜻한 위로보다는 잔인한 폭력처럼 느껴진다.

어떤 죽음이건 생사를 가르는 이별은 늘 가슴이 아프다.


3.

“돌아가셨어도 귀는 아직 열려 있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하세요.”

입관 준비를 마친 장례지도사가 말했다.


사내가 노인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편히 잘 가. 미안해 엄마.”

여인은 무릎을 꿇고 노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말했다.

“고마워 엄마.”


노인이 말했다.

나라고 좋은 세월이 없었을라고. 괜찮다. 다 괜찮다.

아마 스무 살 정도 되었을 게야.

바람도 불고, 그래 아마 찔레꽃이 봄바람에 흩날리던 언덕이었을 게야.

그이가 웃으며 내게 말했지.

"이 봄이 너에게 오래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때, 그 말이 왜 평생의 약속처럼 들렸는지 모르겠어.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는지.

그리고 너희들이 내게 왔단다.

그 작고 따뜻한 숨결이 내 가슴에 내려앉았을 때, 세상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고단한 밤도 많았지만, 내 팔에 안겨 잠든 너희들을 볼 때마다 나는 행복했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너희들이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지.

“엄마, 우리 곁에 오래 있어 줘.”

그 말을 듣고 내가 남긴 가장 찬란한 자국이 너희들이란 걸 알았어.

그러니, 나는 괜찮다. 다 괜찮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고마워할 필요도 없단다.

너희들이 나의 행복이었으니.

봄날은 갔지만 마음은 늘 그 봄 언덕 위에 서 있었단다.

지금 밖은 어떻니?

그때처럼,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 봄날이면 좋겠다.


4.

발인날 새벽은 왜 이리 항상 안개가 끼는 것일까?

장례식장은 고요했다. 창문 너머로 새벽안개가 깔려있고, 전등 불빛에 물든 조문객들의 얼굴은 파리했다.

관이 나왔다. 그 안의 노인은 우리가 알던 그 미소, 그 목소리를 잃었다. 그 사실이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발인 의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관을 따라 걸었다.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관이 차에 실리고, 마지막 인사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삶이란 결국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발인은 뼈아프게 일깨워주었다.

이제 노인은 지상에서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발인은 끝이면서도, 또 다른 시작이었다.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의 시작.


이제 진세를 마치시고

영원히 못 오실 길에 오르시게 되오니,

다음은 유택이옵니다.

헤어지는 애틋함과 아쉬움에

삼가 예를 올리오니

부디 하늘에서 왕생복락 하옵소서.


발인제의 축문이 귓가에 맴돌았다.




봄볕 따뜻한 날에 장모님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셨다. 그때 소회를 몇 자 적었다.

살면서 많은 이별을 하였다.

하여 이별의 아픔이 무뎌질 만도 하건만 생과 사를 가르는 이별은 영 익숙해지지 않아 언제나 가슴 아프다.

많은 이를 떠나보냈다.

그중 기억나는 몇몇 장면을 글로 남겨 놓았다.




날개옷


어머니,

날개옷을 입으신다 승천할

준비를 하신다

먼저 간 님을 만나러 가는 길

속세의 때를 씻고 예쁘게 단장하신다

머언 먼 길 배 주리지 않게

몇 모금 쌀을 머금고, 노잣돈 든든히

허리춤에 챙기고

가벼이 가벼이 잘 오르시겠구나

팔, 다리에 살이라고는 없으니..

가는 길, 부디 목마르지 않게

눈물 몇 방울

마른 나뭇가지 같은 몸 위에 떨구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가 벌써 십 년이 가까워진다.

그곳이 좋으신가 보다.

꿈에서조차 잘 보이시지 않는다.




인력(引力)


아직 교문(校門)을 나서지 못한 벗을 만나러

통일로를 가로질러 적성으로 길을 잡는다

파주로 접어들자

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용돌이에 빠진 듯 맴돌기만 한다

끊을 수 없는 인력(引力)

차를 멈추고 가을풀에 발자국을 남기며 산을 오른다

마른 잔디 이불 덮고 나른하게

가을볕에 취해 주무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오침를 깨우기 싫어 문안 인사도 생략한 채

봉분 앞에 앉아 햇살을 받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여기 웬일이냐?

부시시 잠을 깬 아버지가 물으신다

그냥 왔어요

뭐할라고...

며늘아가랑 다 잘 있냐?

네, 다 잘 있어요.

아버지, 걱정 마세요

때때로 슬그머니 황천강 넘어와 이승을 기웃기웃

죽어서도 놓지 못하는 자식 걱정

그래 다행이구나 나 이제 갈란다

네, 강 건널 때 조심하시고요.

엉덩이 털고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

바람에 떨어지는 참나무 잎 하나,

툭, 하고 내 어깨에 고이 얹힌다


아버지는 추운 겨울에 돌아가셨다. 평생을 헐벗음과 추위 속에서 보낸 아버지는 운명(殞命)의 날마저 추운 날을 택했다. 양지 바른 곳에 모셨다. 이제는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벽제행

1. 부음

마흔 살의 죽음은 암담하다


마누라는 넋을 놓고 영정만 바라보고

딸아이는 한 구석에서 소리 죽여 훌쩍이고

우리는 술잔 속에 말을 감추고

빈 가슴을 술로 채우고 있었다

... 이 노무 자슥이...

멀건 육개장 국물을 휘저으며

물살에 떠는 노인의 뒷말을 상상했다

둥둥 떠다니는 내 육신의 살덩이


아무도 조상하는 자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2. 조상

무엇이 그를 아프게 했을까?

어떤 이는 실업의 대낮을 걸을 때의 낯설음을 말했고

어떤 이는 허기진 배에 대해

어떤 이는 삶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의 아픔이 만들어졌다

술잔에 그의 아픔을 채웠다

문득 낯선 슬픔 하나가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3. 소멸

우리네 삶, 안개주의보

떠나는 날까지 오리무중

안개에 갇힌 벽제

승천하는 영혼 길 잃고

헤메이는 곳 이별에 서투른 사람들

안갯속에 얼굴 파묻고

살아 있음의 죄스러움을 자위하는 곳

친구 녀석 무거운 육신 털고 승천을 할 때

우리는 허기진 내장을 선지 해장국으로 채웠다


4. 회동

오후

안개는 걷혔다

40년 세월의 흔적을 지우듯

우리는 아직 남아있는

몇 가닥의 추억을 반추하려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갔다

몇 순배 술이 돌자

떠난 것은 그가 아니라

우리 젊은 날의 푸르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만나자는 허망한 약속을 하고

종로 뒷골목에서

모든 기억을 쏟아내듯 위장을 비웠다

여전히 서울의 밤거리는 찬란했으며

계집아이들은 발랄함을 뽐내며

불빛 속을 휘젓고 다녔다


5. 귀가

그날

나는 복권을 샀다

비릿한 밤공기의 냄새를

긍정하기로 다짐을 하고

호기롭게 가슴을 쳤다

내 삶에 동승한

존재들을 기억하며

휘청이는 걸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을 헤치며 나아갔다


마흔 살 무렵에 친구의 자살은 충격이었다. 그가 왜 그 한창나이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의 미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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