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도하가(公安渡河歌), 상사화의 노래

by 마정열

북의 찬 공기와 남의 따뜻한 공기. 어울릴 수 없는 두 것이 만나 긴 울음을 울었다. 함께 할 수 없다는 슬픔이 하도 억울해 가슴이 터질 듯한 통곡을 동반하기도 하였고, 울다 울다 지쳐 울음은 이슬 같은 신음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강변역은 울음이 빚어낸 물안개에 포위되어 있었다. 강을 점령한 안개는 겹겹이 층을 이루어 마치 진군하는 군대처럼 역 안으로 스멀스멀 밀려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의 발이 안개에 잠겨 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남자와 여자는 개찰구를 지나 서로 다른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남자는 시내로 들어가는 쪽으로, 여자는 강을 건너는 쪽으로.

철길을 사이에 두고 남자와 여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있었고, 여자는 눈길을 아래로 돌려 발끝을 보고 있었다.


시내로 향하는 기차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남자와 여자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멈췄던 기차가 참았던 숨을 토하듯 발을 굴러 플랫폼을 벗어났다. 여자가 눈을 들어 건너편을 보았다. 남자는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자신을 응시하는 남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여자가 다시 발끝으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강을 건너는 기차가 들어왔다. 강 건너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기차에서 내려 안갯속으로 사라졌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은 기차에 몸을 맡겼다. 숨 고르기를 마친 기차가 플랫폼을 박차고 강을 향해 달려갔다.


기차가 떠난 플랫폼을 남자가 바라보았다. 여자는 없었다.

여자가 있던 자리에 어떤 향기가 남았을까?

잠시 궁금해졌다. 그 향기마저 남기지 않으려는 듯 안개가 여자의 자리를 지웠다.


시내로 향하는 기차가 왔으나 남자는 타지 않았다. 남자는 발길을 되돌려 역사 밖으로 나왔다. 안개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 안개를 헤치고 여자는 무사히 강을 건넜을까?

남자는 우리가 왜 헤어졌을까, 하는 생각보다 강을 건너는 여자 걱정이 앞섰다.


님은 무사히 강을 건넜을까? (公安渡河乎 공안도하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路不見寸前 노불견촌전)

안개를 헤치고 무사히 강을 건너야 (披霧安渡河 피로안도하)

훗날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 텐데 (後日歸於我 후일귀어아)


역사 앞 화단에 가을비에 젖은 상사화가 피어있었다.

그 붉고 길쭉한 꽃대가 길게 뻗어 하늘을 향해 잎 하나 없이 맨몸으로 서 있었다. 외로워 보였다. 비에 젖은 그 모습이 마치 님을 보내고 홀로 있는 자신 같았다.


끝내 이룰 수 없는 만남을 기약하는 상사화.

남자는 부질없는 기약을 하는 자신이 서러웠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마른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상사화의 푸른 싹을 보았다. 그리고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잎 하나 없이 꽃대 위에 덩그마니 피어있는 상사화를 보았다. 아름답기도 하였고 처연해 보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꽃은 오래 기다림 끝에 만난 환희를 상징한다. 봄꽃에서는 겨울을 이겨낸 기쁨을, 여름꽃에서는 장마와 폭염에도 굴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상사화는 그와는 반대편 어디쯤에 있다. 상사화는 그리움과 끝내 이룰 수 없는 만남을 이야기하는 꽃이다.


상사화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꽃이다. 잎이 무성하던 여름날, 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붉고 고운 꽃이 피는 가을이면 잎은 이미 사라진다. 그리하여 잎은 꽃을 보고 싶어 하고, 꽃은 잎을 찾는다. 그 그리움은 언제나 시차를 두고 어긋난다.


상사화는 그런 꽃이다. 아름다움보다는 애틋함으로, 만남보다는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꽃. 피는 순간부터 이별을 품은 꽃. 그래서일까. 상사화는 언제 보아도 가슴 어딘가를 저릿하게 한다. 마치 잊고 살던 누군가의 얼굴을 문득 떠올리게 하듯이.


우리의 삶도 종종 상사화와 닮아있다. 사랑했지만 함께하지 못했던 기억, 이해했지만 끝내 용서하지 못했던 사이,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그 누구. 인생은 그런 상사화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정함은 있었지만 타이밍이 엇갈렸던 관계, 진심이었지만 전해지지 못한 말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그런 상사화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지금, 당신 마음속에도 한 송이 상사화가 피어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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